
경북 청도군, 경남 함양군 `반건시` 미국·일본에 수출 큰 호응, 추가주문 쏟아져
올 설에는 차례 상에 놓였던 곶감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자. “얘들아. 우리 곶감이 이젠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단다.”
한국의 곶감이 세계시장에 나섰다. 경북 청도군과 경남 함양군은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미국과 일본으로 곶감을 수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청도군은 “미국 LA에 소포장 곶감 1만4000개를 처음 수출했는데 두 달 만에 24만개(1억원)의 추가주문이 들어왔다”고 밝혔고, 함양군은 “함양군 서하면에서 생산된 지리산 곶감 200상자가 일본에 수출돼 호평을 받았다. 2월에 2차 수출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전통 간식 곶감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조짐이다.
애초에 곶감 수출은 한국인 동포를 타깃으로 잡았다. 그래서 청도·함양군은 일본인과 미국인의 높은 관심이 “솔직히 기대 이상”이라며 놀라고 있다. 함양군청 유통계의 이노태(44)씨는 “일본인은 젤리처럼 부드러운 한국산 반건시(半乾枾:70% 말린 곶감)의 맛에 반한 눈치다. 일본에도 ‘호시카키’란 이름의 곶감이 있지만 반건시는 없다”고 말했다. 청도군청의 변명환 유통계장은 “곶감 특유의 하얀 분이 곰팡이로 오인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 없는 곶감을 진공포장하고, 작은 포장으로 고급화 전략을 편 것이 적중했다”며 즐거워했다.
우리나라 곶감이 수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 소량의 곶감이 수출된 적은 간혹 있었다. 그러나 반건시란 새 모델을 고급 상품으로 가다듬어서 내보낸 최근의 반응은 예전과 달라도 크게 다르다.
지난 1월 18일, 안개 낀 지리산록의 함양군 서하면 오현마을. 설 명절을 불과 열흘 앞두고 마을 주민들은 막바지 곶감 포장에 여념이 없었다. “일본에 수출할 물량을 남겨둬야 하는데, 국내시장에서 주문이 폭주해 곶감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이 마을 김남희(46)씨의 덕장에 모인 주민들은 곶감을 손질하며 엄살을 부린다. 김남희씨는 “매년 20동씩(곶감 100개가 1접이고, 100접이 1동이다) 생산했는데 내년에는 25동은 해야 수요를 맞출 것 같다”고 했다. 20동이면 매출액이 1억5000만원, 순수익이 8000만원쯤 된다. 3~4동씩 생산하는 농가도 있지만 이 마을의 30가구가 모두 곶감으로 연간 1000만원 이상씩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서하면은 조선 왕실의 진상곶감을 만들어온 전통적인 곶감마을. 브랜드로는 상주곶감이 가장 유명하지만 함양, 산청, 장수군 등의 지리산 곶감도 명품으로 분류된다. 지리산 기슭은 해발 400m 이상의 추운 고지에 감나무밭이 조성돼 곶감 건조에 천혜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곶감은 한번만 비를 맞아도 외피가 물러진다. 건조기인 10월 이후엔 습하지도 햇볕이 강하지도 않아야 하며,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게 벌어져야 감이 무르다 말랐다를 되풀이하며 속은 젤리처럼 투명해지고 겉은 흰 가루가 적당히 피어나 좋은 곶감이 된다. 오현마을의 심서정 이장은 “감의 품종보다 기후가 곶감 맛을 결정한다”고 했다.
함양군은 2002년부터 곶감을 주요 소득작목으로 지정, 장려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서하ㆍ백전ㆍ수동ㆍ마천면의 곶감 재배농가가 10배 이상 늘었다. 2002년에 4만5000접, 13억원어치를 생산하던 것이 작년에는 20만접을 생산해 9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전국 곶감 생산량의 10%에 달하는 양이다. 함양군은 최근 4년간 곶감 저장고, 건조 덕장 등의 설비 확충에 9억6700만원을 지원했고, 올해는 마케팅 예산만 3억원을 책정했다. “60만접 생산으로 전국 곶감 생산량의 25%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함양군의 목표다.

함양곶감의 일본 수출 계기는 지난해 11월 경상남도가 주최한 일본 오사카 농식품 수출 설명회에서 일본 바이어들이 함양곶감에 관심을 보이면서 마련됐다. 그러나 곶감 농가에선 수출에 대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에 팔기도 모자라는데 뭘 귀찮게 수출까지 하느냐.” 일본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은 조건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수출가격은 1.5㎏ 한 상자에 2만3500원으로 상자당 3만원 넘게 받는 내수가격보다 낮았다.
사실 낮은 수출가격 때문에 지금껏 곶감의 수출시장이 크게 열리지 않고 있다. 한때 미국과 캐나다로 수출하다가 중단한 상주곶감도, 농림부가 FTA 대응상품으로까지 선정하며 수출을 부추겼지만 큰 관심이 없는 함안군 파수곶감도, 활황인 내수시장을 두고 굳이 수출에 매달릴 맘이 없다.
그러나 함양군의 생각은 달랐다. 함양군은 “지금 당장은 이익이 적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안정된 수출시장이 필요하다. 또 곶감에 대한 외국인의 인기가 높아지면 가격도 높아진다. 내수시장에만 매달리면 과잉 생산으로 언제든지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고 주민을 설득했다. 함양군청의 이동술 홍보계장은 “다행히 주민들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수출길이 열렸다”며 “함양곶감의 품질을 인정 받아 더 좋은 가격으로 수출할 날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 수출한 청도곶감은 벌써 가격이 올랐다. 청도군은 지난해 1차 수출분에서 10개들이 한 상자에 3500원을 받았으나 2차 수출분은 3800원으로 책정됐다. 인기가 가격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도군의 주력 과수는 원래 복숭아였다. 그것을 곶감으로 바꾼 지 3년. 30톤에 불과하던 청도곶감 생산량은 작년에 300톤으로 늘어, 43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청도군은 원래 씨 없는 ‘청도반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청도반시를 홍시로 만들어 팔 때는 큰 소득이 안됐다. “홍시로 팔 땐 100개에 1만원을 받았지만, 곶감으로 만들어 20개에 1만5000~2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청도군은 부가가치가 높은 곶감에 ‘올인’하기로 하고 작년에 50억원을 곶감 증산에 투입했다. 청도군은 2007년까지 143억원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곶감의 60%를 차지하는 곶감의 대표 브랜드 상주곶감도 2005년 생산량이 전년 대비 20% 늘어난 5600톤을 기록했다. 상주시는 곶감으로 작년에 64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곶감산업이 이토록 발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곶감이 한국 농업의 대표적인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흔히 블루오션 작물이라면 파프리카 같은 외국 작물을 연상하지만 곶감은 전통 과일이면서도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곶감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 극히 제한돼 공급과잉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경북·충북 이남에서만 주로 생산된다. 그래서 6·25전쟁 때 북한군이 감을 멋모르고 따먹고는 떫어서 혼비백산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곶감 건조작업은 거꾸로 추운 날씨가 필요하다. 가령 제주도에도 감이 있지만 곶감을 만들 수는 없다. 즉 재배 적지와 건조 적지가 일치하지 않는 묘한 과일이란 점이 곶감산지를 경북 이남의 산간내륙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또 곶감은 중국산의 수입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중국 곶감의 맛이 한국산에 비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 곶감은 2005년에 3400톤이나 수입됐지만 국내산 곶감 판매량은 위축되지 않았다. 상주시 산림과 곶감계는 “오히려 중국산 곶감이 수입되면서 곶감 소비층이 늘어나고 품질의 비교우위에 의해 국내산의 가격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국산 중 일부 하등급 곶감은 중국산에 대체되며 타격을 받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곶감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곶감산업은 2002년을 기점으로 도약했다. 그 계기는 ‘소프트 곶감’ 반건시다. 말랑말랑한 새 곶감이 주력상품이 되면서 곶감의 인기는 급증했다. 반건시는 이가 아플 만큼 딱딱한 전통 곶감을 싫어하던 젊은층에까지 빠르게 보급됐다. 또한 외국인의 입맛에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곶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단감 재배농가가 곶감 재배농가로 전환하고 있다. 1997년과 2002년의 감 재배농가 수를 비교해보면, 단감 농가는 5만6177가구에서 5만669가구로 줄어든 대신 곶감의 재료가 되는 떫은 감 농가는 2만66가구에서 2만3818가구로 늘었다. 떫은 감의 60%를 재배하는 경북의 농가 수입은 단감의 50%를 재배하는 경남의 농가수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고 있다. 경남에서도 최근 단감 대신 곶감으로 전환하는 농가가 나타나고 있지만 그곳의 따뜻한 기후 때문에 여의치 않다. 단감으로는 곶감을 만들 수 없다. 1927년 경남 진영에서 일본인에 의해 최초의 단감 농장이 조성된 후 ‘땡감’이라 불리며 푸대접 받던 한국의 토종 감이 오히려 귀한 몸이 된 것이다.
곶감의 인기에 힘입어 이제 감은 사과를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로 발돋움했다. 1997년까지만 해도 과수 재배율에서 사과가 25.4%로 1위였으나 2002년에 사과는 18.2%로 떨어지고 감(단감 13.9%+떫은 감 5.1%)이 19%로 성장하면서 순위가 바뀌었다. 3~5위는 배(16.2%), 감귤(15%), 포도(13.1%)다.
함양=허만갑 주간조선 기자(mgh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