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안녕하세요..
갑작스런 편지 보내는 거 용서하세요.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건강에 너무 해로울 것 같아 이렇게 컴 앞에 앉아 대통령님께 드리는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우선 안부부터 여쭙지 않을 수 없군요.전번 탄핵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대통령의 적들이 원래 그러하다는 것 쯤은 대통령님도 알고 지지자들도 아는 것이니 뭐 어쩔 수 없었지요..어쨌든 돌아오시게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당시에 청와대에 유폐된 기분은 어떠셨는지요? 아마 갇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포로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경험하셨으리라 믿습니다.움직이지 못한다는 것,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다는 것,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분명하게 경험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에겐 희망이라도 있었지요. 열혈지지자들의 열화 같은 성원이 있었고 대통령님이 국민들에게 가지는 기본적인 희망 같은 것들이 있었을 테고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같은 것들을 믿으셨을 겁니다.게다가 결정적으로 얼마 안 남은 총선이 있어서 역전의 기회가 있었구요..
하지만 대통령님,오늘 새벽에 비참하게 살해당한 고 김선일님에겐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요? 살려달라는 그의 절규를 들으셨겠지요? 낯선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위협을 받으며 총구 앞에 맨손으로 방치된 그에게 실낱 같은 구원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우리 국민과 그의 나라,그리고 바로 대통령님이 아니었을까요..출구 조차 안 보이는 절망적인 어두움 속에서 그가 떠올릴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우리들이아니었을까요? 그런 그의 간절한 외침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했나요?우리 모두는, 이 편지를 쓰는 저와 대통령님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그의 가없는 절규에 발만 동동거리던 우리 모두는,과연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지금 와서 분기탱천해서 이라크에 전투병을 아니 특전사를 파견해서 쓸어버리네 뭐네 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심리는 바로 이런 죄의식인 것입니다..
저는 외과계열의 의사입니다.실로 비참한 상황의 육체들을,그리고 수없는 죽음들을 보아왔습니다.총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온 사람들의 으깨어진 두개골들을 몰인정하게 바라보면서 응급처치를 하던 의사입니다.왠만한 상황엔 눈도 꿈쩍 하지 않습니다.그러나 하나의 영상이 오늘 새벽부터 지금 대통령님께 편지를 쓰는 이 시간 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 김선일님의 시신입니다.머리와 육체가 분리된 채 무슨 버려진 짐승의 그것처럼 황무지에 뒹굴고 있는 그의 시신의 모습이 무슨 잔혹한 영상처럼 눈 앞을 떠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는 정말 노력하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열심히공부해서 성공을 꿈꾸는 평범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그의 고향이 대통령님과 동향이라는 데에서 오는 착각일런지도 모르지만,전 자꾸 대통령님의 젊은 시
절과 고 김선일님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대통령님의 젊은 시절이 그러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거든요.대통령님,만약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않으셨고 지금 시기에 젊은 날을 보내시고 계시다면 고 김선일님의 자리에 대통령님이 서 계시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고 김선일님의 자리에 서 있다고 가정한다면 ,고국에 대한 무한한 증오 가운데에서 죽어갔을 것 같습니다.누군가 제게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 정도는 희생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면,전 바로 그 자리에서 테러리스트의 총을 빌려서그를 쏴 죽여버렸을 것 같군요.
좀 흥분했나요?.누구나 고 김선일님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얘길 전 하고 싶은 겁니다.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생명은 소중히 여길 권리가 있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구요.그리고 누구나 그의 나라에 의해서 생명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구요..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대통령님,6월입니다.17년 전 6월을 기억하십니까? 그 해 유월은 참으로 뜨거웠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전두환과 민정당을 증오하고 우롱했었습니다.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가령 저의 아버지는 4.19 혁명 때에 이기붕 부통령의 집 앞에서 경찰의 탄환을 피하시던 기억을 얘기하시곤 합니다.저 역시 골목골목 쫓겨다니며 최루탄을 뒤집어쓰던 기억을 앞으로 태어날 저의 아이에게 뻥 좀 섞어서 얘기하게 되겠지요..
그런데요,대통령님.바로 그 해 6월이 대통령님의 현재를 만든 겁니다.대통령님의 능력이 특출나서 그 자리에 앉아계신 것이 아닙니다.그 해 6월 부터 시작된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스타일의 대통령인 노무현을 만든 것입니다.그 해 6월이 무엇으로 촉발되었었나요? 박종철이라는 대학생의 고문치사와 이한열이라는 대학생의 최루탄 사망으로 시작된 것입니다.그 두 사람의 죽음에 대통령님과 우리 세대는 무한한 빚을 지니고 있습니다.대통령님,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때문에만 거리로 몰려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정권의 살인적인 야만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거리로 밀려나온 것입니다.대통령님을 포함한 열린우리당의 모든 국회의원들,아니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정치인들이 그 당시의 거리에 몰려나왔던 시민들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전 그 6월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뭔가 달라야 한다고 믿습니다.다행히 그간 대통령님께서 보여주신 행보는 그 해 6월의 그 무엇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습니다.대통령님은 지역감정을 깨부수겠다며 계속 영남지방의 강철 같은 벽에 도전하며 상처 투성이가 되었습니다.이 나라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겠다며 여론 조작을 일삼는 거짓된 언론들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정식으로 도전한 최초의 정치인이었습니다.대통령님의 이미지는 진실하고 도전적이며 진취적입니다.영리하고 강력하며 굴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대통령님,님의 그와 같은 캐릭터가 6월에 거리로 밀려나왔던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어필한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입니다.또 우리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뭔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자존심 있는 대통령,굴하지 않는 대통령,할 말은 하되 김영삼처럼 멍청하게 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대통령님의 지지자들은 대통령님께 표를 던졌던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캐릭터는 이런 것입니다.무고한 사람이 죽었을 때,그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단기필마로 달려들며 머리를 들이미는,,그런 캐릭터입니다.그것이 대통령님이 3당합당 때 민자당으로 합류하지 않은 이유이며,청문회의 스타가 된 이유이며 '노사모'라는 극렬한 팬클럽(?)을 거느리게 된 이유입니다.그리고 사람들이 대통령님을 대통령님으로 만든 이유는 그런 캐릭터가 대통령으로서의 캐릭터로 표현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아마 대통령님도 아시겠지만요..
그런 얘기 하셨지요..<미국에게도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구요..물론 정치적인 레토릭일 수도 있고,머,,정치인들 무슨 소리라도 할 수 있는 거지요.이해합니다.선거의 와중에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러나 언젠가는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백 번 미국에게 머리를 조아리다가도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타이밍을 잡으신다면 우린 대통령님이 정말로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이라고 믿겠습니다.지금은 아니시라고 말씀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북핵문제가 있고 주한미군 문제가 있고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고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이유들 위에 무고한 죽음이 있습니다.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테러가 있습니다.이라크인들에게도 할 말이 있을 겁니다.대통령님,우리가 아무리 우리 군이 재건과 회복을 위해서 투입된다고 말하더라고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라크인들의 무고한 죽음들일 것입니다.우리 군이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강변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죽음의 행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테러리즘에 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그러나 굴하지 않아야 할 명분이 넘 약하군요..우리의 전쟁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해서,이 전쟁이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미스터 부시 빼고요..게다가 민주주의라고요? 이라크인들에게 있어서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란,미국의 자본과 군사력을 포장하는 허울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아,아닙니다.논쟁의 여지가 다분한 이야기는 예서 멈추기로 합니다..
대통령님,다시 한 번 말합니다.이 모든 이유들 위에 무고한 죽음이 있습니다.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죽음이 있습니다.우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미국의 손짓에서 떨어져 나온 연후에 그들에게 당할 불편을,또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가장 사랑스런 캐릭터입니다.그리고 6월의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바랬던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이고요..
말이 길었습니다.인터넷은 당분간 불에 달구어진 듯 난리가 나겠지요..입 달린 사람들은 죄다 한 마디씩 할 겁니다.별 말 다 나올 거구요..
대통령님,전 대통령님이 파병을 결정하시든 철회하시든 관계치 않겠습니다.
다만 '말'해 주십시오.대통령님이 현재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게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원으로서의 에너지를 끄집어내어 '말'해 주십시오.그것이 비명에 횡사한 한 젊은 청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씁쓸해지는 오후입니다.대통령님의 건강과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아 참,전 정확히 10 년 전 교보 빌딩 앞에서 우연히 대통령님 바로 옆에 서 있었답니다.대통령님이랑 전 희한하게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지요..전 그랬지요..속으로요.
- 아,이 사람이 바로 화제의 노무현이구나,,그런데 참 서민적으로 생겼네..그리고
미소 한 번 따뜻하네..
아마 그 때부터 대통령님의 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지금 이 시간 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10 년 전 내가 보았던 그 노무현이 지금의 노무현인지를..그리고 대통령님을 타임머신에 태워서 10 년 전으로 모셔가고 싶다는 희망을..
너무 주절거렸나봅니다...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