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진, 돌아오다
유진은 어두운 우주의 가운데를 헤엄치는 우주선을 답답한 듯 바라보며
그 동안의 시간들을 지긋지긋하게 회상했다.
지구를 떠나온 지도 벌써 1년하고도 두 달이 지나간다.
'윤이는... 아직도 울고 있을까? 미안하다. 두 달이라고 거짓말하고...
하지만 그때는 정말 돌아가면 죽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유진은 윤과 하나씩 나누어 가진 목걸이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이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구나.
너의 얼굴도, 너와의 시간들도, 지구에서의 생활들도...
어느 것 하나 지워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 선명해져 간다.'
소리도 빛도 없는 컴컴한 우주를 비행하는 일은 지루하고도 조바심나는 일이었다.
이러다가 어느 한 순간 운석이나 빠르게 운동하는 소행성 무리들을 만나
위험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화성에서의 시간들처럼.
- 유진님, 꼭 지구로 돌아가셔야 하는 겁니까?
"나에게는 지구가 모성이나 다름없다.
내 생의 대부분을 보낸 것도 지구이고,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도 그 곳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 화성에서는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흥, 그들에게는 내가 지도자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지구에서는 나를 나 자신으로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가치를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다.
지도자야 다른 사람을 세우면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유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오직 지구밖에 없다."
- 하지만 그들도 유진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필요하겠지.
지도자의 혈통을 물려받은 것이 나뿐이기 때문에 그들이 집착하는 것이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것들. 모든 걸 한 사람의 어깨에 맡기고
자신의 삶에조차 관심없는 것들이 살아서 뭘 하겠다고.
나는 오히려 그들이 군부에 저항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그렇게 신경쓰기 싫으면 군부의 통치라도 받으며 살아갈 것이지."
- 메쉬 장로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유감스러워 하실 것입니다.
"그 늙은이한테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화성으로 돌아갔을 때 길목에서 나를 빼돌리지 않았다면
내가 살 길은 영영 없었을 것이다. 그와 라탄의 도움으로 화성을 정상화시켰다.
그것으로도 나는 내 모성에 낳아준 감사는 다 했다고 본다."
- 라탄의 왕녀께서도 가만히는 계시지 않을 텐데요?
라탄의 왕녀, 라니를 생각한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콩알만한 게 얼마나 사람을 들들 볶는지 아주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그런 소악마와 결혼해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낫다는 게
유진의 변함없는 생각이었다.
예상 외로 빨리 화성에서 도망치게 된 데는 그 이유도 컸다.
게다가 유진에게는 오매불망 그리고 그리는 윤이 있지 않은가!
"사랑에 관한 연구자료는 다 넘겨주었다.
나름대로 깊이 이해하는 것 같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화성에도 자연출산아가 생겨날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화성은 스스로의 성장과 소멸을 조절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제 나도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장로들께서는 라니님과 유진님의 결혼으로 라탄과의 연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늙은이들이 미쳤다는 거야! 이제는 결혼까지 시킨다고?
그렇게 하고 싶으면 자기들이나 하라지.
에이피,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좌표 계산 좀 해 봐. 이제 얼마나 남았지?"
- 거리를 시간으로 변환합니다.
현재 남은 시간은 지표면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를 빼고 우주 평균 시간 583시간이 남았습니다.
"흠, 그럼 사흘 안에 지구에 도착한다는 소리군."
- 그렇습니다.
"벌써 일년이 넘었는데... 윤이는 얼마나 변했을까. 또 지구는 얼마나 변했을까.
너무도 궁금하구나."
유진은 가만히 우주의 저 너머 아직은 보이지 않는 지구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푸른 색 선명한 아름다운 별. 마음의 고향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숨쉬는 땅.
'이제야 겨우 돌아가게 되었구나.
보고 싶다... 너도, 너의 품에서 살고 있는 나의 그 사람도...
이번에야말로 윤이와 함께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에이피, 지구의 최신 자료를 수신하라."
- 수신합니다. 한국의 자료를 보시겠습니까?
"드라마와 뉴스,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수신하도록 해.
이번에는 윤이 앞에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유진은 히죽 웃었다.
자신을 보고 한눈에 반할 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영상으로 전달되는 서울의 거리에 진한 그리움을 느끼면서
유진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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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때로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한 몸에 나타낸 인물이 있었으니...
긴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팔랑거리는 흰 스커트 위로
열심히 십자수를 놓고 있는 한 여학생.
그야말로 청순의 대명사요, 조신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늘을 놀리는 모습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생전 처음 들어와 보는 강의실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다가 여자를 발견하고는 뛰어왔다.
분홍색 편지, 일명 러브레터를 내미는 남학생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냅다 외쳤다.
"누님,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누님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진정 누님은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신사임당이십니다. 저의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편지를 받아든 여학생은 부드럽게 생긋 웃어주었다.
"고마워, 하지만 어쩌지?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남학생은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흩뿌리며 뛰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미진이 혀를 끌끌 찼다.
"대체 일년 사이 그렇게 변신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
"아이, 젠장. 줄 거면 먹을 걸 끼워 주던가..."
투덜거리는 여학생은 윤이었던 것이다.
변화를 곁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는 미진이었다.
그 단순과격한 이윤이 청순조신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는 가증스런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그럼 그렇지. 사랑이 무섭긴 무섭다.
단순과격하던 네가 이런 가증스런 연기를 하게 되다니...
그나저나 일년 동안 붙잡고 있는 십자수는 뭐냐?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한번 보자!"
미진은 윤이 열심히 수놓고 있는 십자수천을 획 나꿔챘다가
그대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굳은 미진의 손에서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세진오빠♡내꼬!].
막 수놓기 시작한 느낌표에 기가 막힌 미진은 그저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이거 하는데 일년이 걸린단 말이냐?'
"아이 참. 더러워졌잖아. 죽을래?"
"이미 네 손때로 꽤나 더럽다만..."
"그거야 나의 애정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는 윤의 행각에 절로 이마를 짚는 미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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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이 주변에서 얼쩡거려 봐. 그때는 아주 죽여줄 테다."
탈탈 손을 털며 온은 허리를 쭉 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온을 노려보던 몇 명의 남자들은
온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부상당한 친구를 끼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온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혀를 찼다.
"요즘 녀석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불량배쯤 되면 연장도 꺼내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아아, 빨리 깡패검사가 돼서 좀 더 고수와 맞짱뜨고 싶다.
형이 사망진단서는 얼마든지 조작해 준다고 그랬는데..."
실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자아, 이제 밤길도 청소했고 우리 윤이가 다칠 일은 없겠지.
아아, 좀 움직였더니 배고프네. 얼른 집에 가자."
골목을 돌아 집으로 향하던 온은 집 앞에서 얼쩡거리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크크 웃었다.
"아직 한 놈이 남아 있었군."
팔을 걷어부치고 수상한 녀석의 뒤로 가만히 다가간 온은 일단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봐."
순간 그림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을 역광으로 받은 어두운 얼굴에서 하얀 이가 빛났다.
"너, 너?"
"오랜만이야, 온이형."
그의 움직임에 따라 얼굴이 완전하게 드러났을 때
온은 자신이 귀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유진?!"
씨익 웃는 유진의 얼굴을 보고 창백하게 질린 온에게 다정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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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부탁입니다! 화성으로 송환시켜 주세요!"
세진은 통신기를 붙들고 울먹였다.
식탁 밑 구석에 처박혀 애절하게 부르짖었지만 저 쪽에서는 묵묵부답.
"소형 우주선 한대만 보내달라니까요! 여기 있으면 저는 살해될 지도 몰라요!"
- 지금 그럴 여유 없다. 그보다 유진님이 사라졌다.
아마도 지구로 가신 듯하니 너는 그 곳에서 유진님을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오도록 해라.
잔인한 명령과 함께 일방적으로 끊기는 통신.
세진은 절망에 엎드려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유진님이 문제란 말입니다! 분명히 전 유진님 손에 죽을 거라구요!'
"나 돌아갈래! 돌려보내 달란 말야!"
늑대가 달을 보고 울부짖듯 세진은 대답없는 화성을 향해 하염없이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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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리리님, 드디어 유진이 왔습니다. 두둥~
과연 윤이가 정신을 차리게 될지... 세진이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ㅋㅋㅋㅋ 다음 편에서 확인해 주세요~!
라엘님, 어쩌나, 애늙은이말투 유진이가 확 변해 버렸답니다.
그저 윤이한테 잘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모두들 원하시는 말투까지 버렸으니... 쯧쯔.
그러다가 인기 떨어져서 세진이로 갈아치워버리면? ㅎㅎㅎㅎ
비야님, 호오, 그래요? *_* 얼마나 철이 없으셨을까나? 무쟈~게 궁금하네요. ^^
유진이의 전화는 복선! 입니다. -_-(설마 믿으시지는;;;)
유진이를 다들 너무 기다리시길래 서비스로... ^^
희동이마을님, 헉, 윤이가 예쁘다구요?
세진이가 윤이가 만든 음식 들고 님께 찾아갈지도... ^^;;
기다리시던 유진이가 등장은 했는데 어째 아직 윤이랑은 못 만났네요. ^^
보노보노님, 원래 윤이가 이런 녀석이랍니다. 한숨.
기분이 좋아지셨다니 기쁘네요. ^^
유진이 드뎌 왔습니다. 추카해 주세용~ ^^
시온님, 네, 알고 있지요. ^^ 설마 시온님이 헷갈렸다고 생각할까요. ^^
윤이로서는 속이 많이 상하겠죠.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다 괴롭히는 게 되니...
하지만 자신은 모르니까 그나마 다행인 거죠. ^^
윤호사랑해님, 그러게요.
세진이 이뻐라 하는데 대체 왜 이 녀석은 이렇게 망가지기만 하는 건지... 에휴.
세진이한테도 빨리 좋은 짝을 골라 줄까봐요. ^^
(그러나 괴롭히기 좋아하는 작가의 특성상 제대로 된 짝을 만날 수 있을지..-_-)
수정맘님, 스, 슬마... 쥐약이 맛날까요? *_*
아직 경험이 없어서리... (진짜 그런가? 갸우뚱.)
음식이 쓰레기로 변하는 건 한순간입니다.
바로 윤이 손이 닿는 순간! 이지요. ㅋㅋㅋㅋ
봄꽃님, 세진인 고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니까요. ^^
윤이가 안 된 건지, 세진이가 안 된 건지는 모르지만요. ㅎㅎㅎ
풍전등화의 세진이가 과연 살아날 수 있을런지. ^^
밥풀님, 자, 유진이 대령이오~
ㅎㅎㅎ 님 믿고 제가 협박해 줬지요. ^^
자꾸 그러면 확 세진이랑 엮어버린다라고 했더니 조용해 지는군요.
아, 진작 이럴 걸. ^^ 상쾌한 기분~
이점님, 웃어 주셨다니 몹시도 기쁘답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잖아요.
많이들 웃으시고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
자, 로또! 로또! 얍!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문은 얍!이라더군요. ^^)
근데 저 요즘 너무 성실한 거 아닌가요? ^^*
여러분들의 리플이 많은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