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결혼에 대한 압박감
연우와 나의 관계의 진척은 꽤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도 어느 연인들처럼 손잡고 길거리를 걸어다닌다던지, 영화를 보며 연우의 팔에 매달려 행복해 하기도 하는 우리는 천상 연인사이였다.
그동안 남들과는 많이 해 봤던 것을 왜 연우와는 해 보지 못했었는지....
그리고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영화보고 그랬던 일들이 연우와 함께 라는 이유로 이렇게 행복할수 있는지 ... 새삼 느끼고 있는 나였다.
여느때와 같이 연우와 퇴근후 간단한 맥주한잔으로 피곤을 풀고는 집으로 향한 발걸음이였다. 연우와 함께 했다는 그 잠시의 시간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이렇게 좋아질수 있다니... 역시 연우와 나는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 옥상으로 향한 나는 문앞에 서있는 은영이를 보았다. 왠일이냐고 묻는 나보다 앞서 은영이는 하얀 비닐 봉투에 담겨있는 맥주캔을 흔들어 보였다.
집에 들어와서 맥주한캔을 다 비울때 까지 은영이는 말이 없었다. 속상하면 말이 많아지는 나와는 달리 은영이는 속상하면 말이 없다. 난 그런 은영이가 먼저 마음을 열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리고 있는중이였다. 비어버린 맥주캔을 만지작 대던 은영이는 이윽코 입을 열었다.
“ 너 연우씨랑 결혼 안해?!”
“나도 하고는 싶지만... 우리 잠시 시간을 갖기로 했어...근데 그건 왜?!”
“난 너가 빨리 연우씨와 결혼을 했음 좋겠어.... 그래야만 하고....”
분명 은영이는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다는 말투였다.
“그래야만...한다고?!”
“응...”
‘응’이라고 말하는 은영이의 단호한 표정에 난 할말을 잃었다. 그냥 막연히 내가 짐작하는일이 아니였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도 알지?! 하균씨가 .... 한번 사람을 믿으면 좀 오래 믿어... 가끔 우리가 싸우는데 그 이유가 너야... 그렇다고 해서 니가 잘못했다는건 아니야.. 나도 널 알고, 너도 날 알다시피 말야...하지만 난 가끔 하균씨가 너에 대한 집착을 못버리는 이유가 아직 너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어... 그래서 그래...”
난 대답 대신 맥주를 한모금 넘겼다. 은영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균의 성격상 쉽사리 포기 한다는것은...어려운 일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끝난 사이인데 은영이가 저렇게 까지 신경쓴다는게 솔직히 듣기에는 아주 씁쓰름한 대화였다.
“이해는 하지만... 아직 연우씨가 결혼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아마 그일때문인가?!”
은영이의 지나가듯 읊조리는 말을 듣고 내가 되물었을때 은영이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무언가 알면서도 숨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애써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연우씨의 말처럼 난 조금더 기다려 보기로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믿어보기로 했다.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난 30이였다. 30살.....
여자나이를 크리스마스에 비유한 어떤 사람이 그랬다.
여자도 크리스 마스 케잌과 같은 거라고....
24일때 가장 잘 팔리고 25일때 그나마 잘팔리고 26이 지나면 세일에... 새해가 넘어가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
그럼 30인 나는 ... 12월의 마지막일까?!
찬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집에서의 압박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 글쎄... 사귀는 사람 있대두!”
-있긴 뭘 있어?! 너 내가 이런다고 거짓말 까지 하는가 본데!!! 나 이번엔 절대 그냥 안넘어 간다!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알아서 한다는 년이 지금 나이가 몇갠데 아직도 시집을 안가! 시집을!!!!
“닥달좀 그만해... 내가 물건이야?! 왜 그렇게 보내지 못해서 안달이야....
-남들 보기 창피해서 그런다 ..창피해서....제발좀!!
엄마의 다음말이 들리기전에 난 수화기를 내려놓아 버렸다. 내가 나이가 점점 먹어갈수록 엄마와 저런 문제로 다투는일이 많아졌다. 아니 많아진게 아니라 엄마의 전화는 항상 저런식이였다.
어느새 부턴가 난 엄마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만 왔다. 연우에게선 아직도 결혼에 대한 말이 없었다.
연우에게 결재를 받으러 연우의 방에 갔을때 연우는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나에게 블라인드좀 쳐달라고 말했다. 그가 블라인드를 쳐달라고 할때는 무언가 긴히 할말이 있거나... 날 원한다는 뜻이였다. 항상 그래왔으니깐....
조심스럽게 블라인드를 쳐 내려오면서 난 가슴이 쿵쾅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불길한 예감..안좋은 예감이 가슴속부터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블라인드가 쳐지고 그와 나만의 공간이 남겨졌을때 그는 그제야 콧끝에 매달려 있는 안경을 벗고는 관자놀이를 지끈거리게 눌렀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할수 없게 되어버렸어.....”
“...........”
“나 완전히 지쳐 버렸어.... 이런식의 생활에 말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심상치 않은 말투였다. 예전 나에게 이별을 고했던 사람들과 같은 향기가 나는 듯 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그만해요....알아들었으니깐...말하지 말아요!”
“뭘 알아들었다는거지?!”
“지금 헤어지자는 말 하고 있는거잖아.....”
나도 모르게 주책없는 눈물이 조로록 흘러 내렸다. 감정이 순식간에 격앙되어버렸다. 울컥 가슴에서 밀려온 눈물은 눈을 통해 흘러 멈출줄을 몰랐고, 그런 나를 그는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말 아니였어...”
“.....”
“사실은 나도 너랑 결혼 하고 싶어... 그래서 오랫동안 준비해 왔었고...그런데 나 너한테 말 못한게 있어... 사실 집안에서 반대가 좀 있어...”
“나에대해 이야기 한거예요?!”
“그래...그런데....아버지가 워낙에 세현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세현이 걔...아직도 우리집에 들락 달락 거려...그래서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엄두에 두고 계시지를 않아..그런 상태에서 덜컥 당신을 우리집에 소개시켰다가는..당신이 상처받을까봐 겁이 나버렸다구....”
그의 말에 난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흥분되었던 감정들이 사라락 거리며 몸에 오돌도돌하게 나있는 닭살 사이로 빠지고 있는 기분이였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까지 나에게 결혼이야기를 안꺼낸거였어요?!”
“그래....”
“난 또 뭐라고....”
“뭐?!!”
“당신 어머님은 적어도 내 편이니깐 괜찮아요....”
“그게 무슨?!....”
“우리 선봤을때 우리 엄마랑 당신네 엄마랑 동창이여서 본거라고 들었는데...기억 안나요?!”
“그랬었나?!”
“우리 엄마말로는 그랬어요! 얼핏 들어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뭐 그래도 당신 엄마가 세현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깐 당신을 선자리에 덜컥 내보낸것일테고...”
“그거야 그렇지...”
“난 자신 있다구요!”
아마 누군가 내 얼굴을 보라고 거울을 들이밀어 줬으면 쿡하고 웃어버렸을 것이다. 눈물 그렁 그렁 맺힌눈에 자신있게 주먹을 불끈 지며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란.....
그때 연우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엉거주춤하게 그에게 안겨 난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고맙고...미안...이렇게 프로포즈 해버려서 ...미안....”
“괜찮아요....대신 나 30살 이전엔 결혼 승낙 받게 해줘요! 나 꼭 그전엔 웨딩드레스 입어볼꺼라구요!”
내 말에 그는 나를 더 힘껏 안아주었고... 그의 품안에서 나는 편안했다. 그동안 엄마에게 받은 결혼에 대한 압박갑도, 그리고 세현씨가 말했던 그에 관해서도 이제 슬슬 하나하나씩 벗기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저희 부서 사람들도 반이상이 휴가를 가버려서 아주 조용한 가운데 글을 쓰고 있는.....
쿡쿡 물론 농땡이지요~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어요! 더위 조심하시구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