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의 제사를 다녀온 후...
그이와 나는 편안한 잠을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서로 말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도 살아 갈 아무 런 결론도
못 내리는 고통의 밤을 몇 날인가를 보냈다.
그이는 지금 폐결핵 중증 3기말의 삶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
운영하던 출판사는 너무 오래이어지는 불황을 못 견디고
끝내 부도처리되었고...
혼혈의 힘을 쏟아 써낸 글들도 모조리 실패하거나
책을 펴내지도 못하는 불운 속에 빠져있다.
몇 번인가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번번이 건강이 이유가 되어
고배를 마셔야했고 그 나마의 삶의 의지가 되었던 전처와의
원만한 재결합도 끝내는 수포로 돌아갔다.
비록 그를 잃는다해도 그가 행복해지기만을 그렇게 빌었었는데
끝내 그는 불행해져서 결국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내가 간절히 원해서 그리 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눈만 감으면 내가 기도하는 건 그이와 함께 있게만 해 달라는 것...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돈 때문에 헤어져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내가 그토록 행복하지는 않아도 좋으니까 함께 있게만 해달라고 빌었던
그이와 돈 때문에 헤어져야 할 처지...
이대로 돈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가?
결국 나는 그이에게 가슴을 찢는 제안을 해야 했다.
단지 살기 위해서...그이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
강동혁...
그는 나의 생명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근본이다.
그가 다시 일하면서 돈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다.
"자기야. 나 말아..."
"응...뭐...?"
"내가 나가서 돈 벌어올게...그러니까 자기는 안심하고 다시 글 써...!"
"뭐? 뭘 해서 돈을 벌겠다고...?"
"뭘 하든...찾아볼게...도둑질만 안 하면 되지..."
"시끄러! 나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런 말하려거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거든 해! 콜록! 콜록! 콜록!"
당연히 처음에 그이는 내가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난 이미 그때 그이를 위해 뭐든지...
아니 같이 살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죽기보다 고통스런 기침에 시뻘건 피를 쏟는 각혈을 하면서도
나를 지키려는 그이가 고맙지만 매일매일 닥쳐올 돈 때문에 겪는
서글픔이 가슴을 찢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스가 끊겨 음식을 끓일 불도 난방도 되지 않는 썰렁한 방...
삼월의 겨울 끝 추위가 기승인데 폐를 앓는 그이와 어린 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 뭔가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 제사에 집에 내려갔을 때...
솔직히 형제들에게 조금이나마 무엇인가를 도움 받을 수 있
을 까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형제들도 다들 자기 살기도 힘든 것 같았다.
그이는 작은 방에서 깊은 고독과 상실로 하얗게 밤을 새우는
날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딸이 잠들어 있는 침대 위에서 조용히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에
목이 메여 우는 날이 많았다.
그 작은방에서 틀어박혀 무엇을 생각해내었을까?
아침이 될 무렵 그이는 나에게 어렵게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내가 다시 글을 쓰고 재기 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겠다고했지?
해봐! 뭐든지..."
"그래, 뭐든지...자기하고 같이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나는 그이의 품에 달려들어 안기며 말했다.
"다만..당신이 뭘 하든 날 속이지만 마! 노래방 도우미를 하든
술집을 나가든 몸을 팔든 나를 속이지만 마...!"
나는 그만 숨이 막혔다. 정말 나는 노래방을 나갈 생각이었다.
요즘 신종 주부부업으로 뜨고있다는 그 노래방 도우미를...
"은정이 넌 알 거야! 내가 소라 엄마랑 왜 헤어졌는지..."
"안 속일게...뭘 하든 다 동혁씨 알게 할게!"
나는 그의 그 말에 그의 등을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소라엄마랑 헤어진 건 나를 속이고 딴 남자를 만난 거야...
그러지 만 마! 노래방 도우미를 하든 몸을 팔든 난 나와 살기 위해
선택한 너의 결정을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않고
너를 지킬 거니까..."
"아냐, 몸을 팔다니..그건 말도 안 돼! 아무리 살기 위해서 라지만
그건 동혁씨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고..."
그 말에 그는 포옹을 풀고 피식 웃으며 담배에 불을 댕겼다.
"괜찮아! 자기 좋아서 남편 눈 속이고 양심 속이고 딴 남자들 만나서 즐기는
여자들도 있는데 은정이 넌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니까..."
그는 담배 한 모금을 폐부 깊숙이 빨아들여 내쉬며 마치 세상을 포기라도
한 듯한 미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무슨 소리야. 동혁씨! 내가 동혁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그런 소리하지마! 싫어!"
슬퍼졌다.
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고
또 내가 그 말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
"나야말로 은정이 널 너무도 사랑하니까 하는 말이야!
밖에 나가서 일하는 여자...더구나 밤에 일하는 여자...
노래방 도우미든 술집이든 자신을 지킨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아!
그래서 미리 포기 하려는 거야! 만약 몸을 파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것 때문에 헤어지기는 너무 싫어서 미리 그러는 거라구!
콜록! 콜록! 콜록! 욱~"
기침을 참느라 빠르게 말을 마친 그가 크게 기침을 토하며
선홍 같은 피를 쏟아냈다.
그것은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사랑 때문에 영혼을 팔아 버려야하는 가슴 찢는 영혼의 지독한
각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한 곳을 응시했다.
좁은 거실 벽에 나붙은 예수의 십자가였다.
그것을 보는 그가 히죽이 웃는 게 보였다.
의인을 위해서가아닌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예수를 향해
뭔가 할말이 많은 눈으로 쏘아보며 입가에 피를 머금은 채
허탈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내 마음까지도 이미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밤의 세계에서 내가나를 지킬 수 있을지
나도 두려웠으니까....
그 날 저녁 6시...
은정은 출근을 하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았다.
그 어떤 어려움도 참으리라...그 어떤 수모도 참으리라...
단지 동혁씨와 헤어지지 않고 살아만 갈 수 있다면...
그렇게 다짐하며 화장을했다.
첫 번째 은정의 일은 가요클럽의 1대1 독대였다.
홀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언니는 매상에 신경 좀 써달라고
당부부터 먼저했다.
술을 못하는 은정으로 선 처음 일부터 너무 무거운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클럽 방의 어둡고도 약간은 화려한 조명들이 몸과 마음과 눈을
어지럽게 했다.
은정은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자신에게 몇 번인가 최면을 걸곤 했다.
이를 악 물었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옆에 와서 앉지 뭘 하나?"
떨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50대의 대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
자의 두툼한 손이 은정을 잡아끌며 옆으로 앉으라고 했다.
"네...저...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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