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아침을 대충 먹고 시댁으로 향할 짐을 챙겼다.
그이는 원래대로라면 지난달 31일부터 휴가에 들어갔지만,
큰 녀석이 학원을 빠지면 보충이 많아져서 힘들다는 말과 함께
그이도 마침 회사에서 부탁한 일이 있어 휴가를 거의 반납하고 휴일도 없이
31일부터 4일까지 쉬지도 않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
혼자 몸이였던 총각 때는 분명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한다는 게
꿈도 못 꿨을 일이지만,
이 더위에도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 그이한테 고마움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7일 날이 어머님의 일흔 두 번째 생신이기에
여느 때보다 짐이 많다.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주문해서 채우고 미리 담가서 냉장고에 넣어 둔
포기김치와 열무 물김치, 까다로워서 손은 많이 갔지만
들인 정성만큼이나 쌉싸름하게
맛나게 잘 담가진 고들빼기김치.....
어제 저녁 그이와 대형 할인마트에 들러 장을 본
잡채거리며, 미역국거리, 고기 몇 근과 생선, 꼬치 전 재료와 동그랑땡 재료...
음료수, 맥주, 소주, 조미료 등등...
어머님 생신 상 차려들일 이것저것 재료들을 싣고
두 녀석들이 혹시 할머니 생신 때문에 피서를 못 갔다고 서운해 할까봐
아빠와 함께 강에 가서 놀 수 있도록 수영복과 구명조끼도 챙겨 넣었다.
시댁에 도착하니 늘 그랬듯이 어머님과 나이어린 형님, 그리고 일곱 살과
네 살 박이 조카들이 반겨 맞아준다.
우리 집 두 녀석들에게 할머니께 절해야지....라고 말하곤
어머님을 모셔다가 앉히고 셋이 나란히 서서는 남편도 오라고 불러보지만 매번 그랬듯이
괜한 쑥스러움에 머슥해져서 나중에 한다며 뒤로 미룬다.
같이 하면 참 더 보기 좋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늘 들지만 남편은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께 절을 올린다는 것이 막내로 자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총각때부터 해오지 않았던
일이라서 어색한 걸까....사랑하는 엄마인데... 엄마한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일 같지만,
결코 작은일이 아니건만....
작은 아들 가족이 모두 모여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면
엄마가 더 흐뭇해하시고 좋아하실텐데.....그이가 이제는
그런 어머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그이를 뒤로 하고 두 녀석과 함께 그간 잘 지내셨느냐며 어머님께 절을 올렸다.
절은 무슨....그냥 앉아라.. 됐다. 하시면서도 신혼초부터 뵐때마다 절을 올리면
늘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접하면서 녀석들이 어렸을때부터
두 녀석들을 데려다가 놓고 제일 먼저 꼭 할머니께 절을 올리게 가르쳤다.
뵐 때마다 수척해 지셔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어머님...
어머님 왜 이렇게 마르셨어요? 하는 나의 물음에
어머님은 여름이라서 땡볕에 타서 그렇고 날이 더워서 그렇다고 하지만,
세월이라고 내 어머님을 비켜 가겠는지.....
도착한 그날은 그렇게 짐만 내려두고 두 녀석들과 일곱 살 박이
조카를 데리고 그곳에서 가까운 금강에 물놀이를 다녀왔다.
6일 날은 옥천 장에 나가서 필요한 몇몇 재료들을 더 사서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불고기도 양념을 준비해서 재워서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일은 진전이 없는듯한데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분주하게 바빴고,
날은 왜 그리 더운지...
무더위에 뜨거운 프라이팬을 끼고 두어 시간에 걸쳐 전을 지져낸 얼굴은
민감한 피부탓에 이내 벌겋게 달아오르고 부어서 한동안 후끈거리며 날 괴롭힌다.
두 녀석들은 어제 물놀이에서 수영을 배운 탓인지 수영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해거름 즈음해서 아빠와 함께 금강으로 가서는
실컷 물놀이를 하다가 돌아왔다.
7일 생신날 아침...
휴대폰 알람에 맞춰 4시 반에 눈을 떴다.
날이 워낙 더운지라 음식도 미리 못 해두고
동네 분들을 초대해서 아침을 함께 하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어머님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먼저 마루로 나오신다.
들어가셔서 더 주무시라 해도 며느리 혼자서 시간 안에
못 한다는 걸 다 아시고는... 괜찮다 많이 잤다. 미역이나 빨아서
건져 놓을란다. 하시며 동네 사람들 초대해 놓고 행여나
아침시간 늦을까 걱정하시는 마음에서 같이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마음은 바쁘고 할일은 많은데 어린 형님은 6시가 넘어서야
일어나서는 시계가 없어서 늦었다며 미안해한다.
많이 부족한 형님이기에 모든 건 내가 다 이해해야 할 일...
노총각이셨던 아주버님과 결혼해서 두 조카들을 낳고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고마운 철부지 어린 형님...
어린시절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가족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남의 손에서 자란 형님...
나이는 비록 나보다 여섯 살이나 아래라고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나이는 아니리라...
나보다 적은지 혹은 많은지도...
어머님은 그래서 김치 담그는 일과 반찬을
며느리를 두고도 아직도 손수 하신다.
그러니 생신에 내가 김치를 안 담가가면
어머님께서 당신 생일에 드실려고 김치를 담그셔야 하겠지요.
잡채, 불고기, 미역국, 생선도 굽고...
바쁘게 움직여 마당에 자리를 깔고 상을 차리는데
7시도 채 안되어서 벌써 동네 분들이 오신다.
작은 동네라서 열명 남짓한 분들이 어머님과 아침을 함께 드셨고
그 후 느지막하게 어머님은 어머님과 연세가 같은 동갑네 분들을
몇 분 초대하셔서는 약주를 대접하신다.
며느리가 김치까지 몽땅 다 준비 해가지고 내려왔다며
아무것도 준비할게 없었다 하시며 자랑을 하시는 어머님..
해마다 그래왔지만 올 생신은 유난히 날도 덥고 해서
남편과 아주버님도 동네의 가든에서 하자고 제의를 했었다.
하지만 일흔 둘의 연세이신 어머님은 집에서 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생신날 아침 조반을 동네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고 느긋하게 약주도 한 잔
할 수 있기에 그러신가 보다.
집에서 해 드리는 것이 가든에서 하는 것 보다 분명 돈도 많이 들고
몸도 고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좋아하시기에 난 그렇게 해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야만 어머님의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이 편안할 테니까..
남편이 다달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빚은 안지고 살지만,
네 가족이 한달 살아가기 빠듯하다.
그래서 늘 어머님께 용돈을 많이 드리지 못하고
마음먹은 것과는 다르게 보약도 못 해드린다.
사는 게 참 뭔지.....
점심엔 국수를 삶아서 새콤하게 익은 시원한 열무 물김치 부어 말아 드리고
어머님과 생신이 삼일 늦은 친정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친정 가족들이 두 세 시쯤 동학사 계곡에 모여서 놀고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던지라. 서둘러 짐을 챙겨야 했다.
어머님께서는 매달아 둔 마늘 몇 접 부피가 많아서 혹여 버리는 쓰레기 많아질까 염려하시는 마음에
일일이 가위로 머리만 잘라서 담으시고 풋고추, 가지, 호박, 대파,
그리고 남편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박잎을 부지런히 뜯어 오셔서
챙겨 넣으시며 더운데 와서 고생만 하고 간다며
올라가서 몸치나 나서 눕지나 않을까 며느리인 내 걱정을 해 주신다.
고추를 몇 근 사서 빻아서 김치를 담갔다는 내 말이 걸리셨는지
에미야~ 고춧가루 빻아 놓은 게 없으니 그냥 말린 고추도 가져가서
꼭지 떼고 다듬어서 방앗간 가서 빻아서 먹어라...하시는 어머님 말씀에
난 어머님 어머님이 저희와 같이 올라가시면 가져갈래요.
그렇지 않으면 꼭지 다듬을 사람이 없어서 안 가져갈래요.
그러니 어머님께서 우리와 함께 안 올라 가실려면
그냥 천천히 빻아 놓으시면 아범이 다음에 벌초하러 내려오면
그때 보내주세요. 라고 어리광도 한번 부려 본다.
늘 빈손으로 찾아가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반가이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어머님...
그런 어머님께 저는 올해도 생신 선물 하나 준비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여름에 사서 한번도 안 썼던
양산을 어머님께 드리며 어머님 장에 가실 때나
놀러 가실 때 쓰세요..하면서 난 겸연쩍게 어머님께 내밀었다.
어머님께서는 난 이런 거 필요 없다 너나 가져가 써라..하시기에
어머님 저는 집에 있어요. 이건 어머님 드릴려고 산거예요. 하고 난
얼버무리며 거짓말을 해 버렸고...
선물을 해도 괜 한 곳에 돈 쓴다며 걱정하시기에
회사에서 휴가비로 나 온 50만원으로 생신 상 차려 드리고
떠나오는 길에 남은 돈 몇 푼 쥐어 드리는 것 밖에 못 했습니다.
음식 준비 하느라 돈 많이 들었는데 무슨 돈을 주느냐며
몇 번이나 받지 않으시려는 어머님..
마지못해 받으시며 미안한 마음에 덧 부치는 말씀... “얘 에미야~자주와라..
용돈 좀 더 많이 받게” 라며 겸연쩍게 농담을 한마디 던지신다.
그 말씀속에는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난 느낄 수가 있다.
어머님..
우리를 생각하셔서 한 푼이라도 덜 쓰게 하시려는
어머님의 그 마음 제가 왜 모르겠는지요.
하지만 어머님 늘 그래왔듯이 빠듯한 살림살이라서
비록 어머님께 많은 돈은 쓰지 못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깝지 않은 돈이 어머님을 위해서 쓰는 돈입니다.
그것도 어머님께서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시기에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입니다.
친정의 새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양쪽의 형제들과 동학사 계곡에서
놀고 하룻밤을 유성에서 묵고 일요일에 남편이 운전하는 옆의 조수석에 앉아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던 차 안....
카 오디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데
괜스레 달리는 차창 너머로 어머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온다.
예전보다 눈에 띄게 수적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아파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어머님 생각에 잠겼다.
세월이 어머님만은 피해갈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어머님을 뵈면서 깨달았다.
늘 우리 곁에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계실 것 같던 어머님.
어머님은 내 가슴이 아프도록 예전보다 많이 야위어 지셨다.
그 모습을 뵈면서 언젠가...아니 어쩌면 내 생각보다도 더 빨리
어머님과 이별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얼른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어머님...
늘 여름휴가철에 당신 생신이 닿아도 괜찮습니다.
그리해서 우리 가족이 여름마다 휴가를 못가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휴가철이라서 넉넉한 시간으로 인해 결혼해서 매 해마다
정성을 다해 어머님의 생신 상을 준비해 드릴 수 있어서 제겐 참 다행이였고,
몸은 비록 힘들고 고됐지만 흐뭇해하시고 만족스러우셔서
동네 분들과 동갑네 친구 분들께 목소리 높여 자랑하시는 어머님의 모습 뵈면서
제 마음만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많이 행복했습니다.
어머님 부디 건강하신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함께 하셔서
매 해 여름마다 오래 오래도록 어머님의 생신을 해 드릴 수 있는
행복한 며느리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욕심을 부려보고 싶습니다.
어머님 이젠 제발 여기서 더는 늙지 마세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항상 그 자리에 계셔주세요.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 후회 하는 일 만들지 않도록 살아 계시는 동안 잘 모시려 하지만,
한달 벌어 한달 지출이 매 달마다 맑은 물속을 들여다 보듯 훤히 들여다 보이는
월급쟁이 봉급으로 두 녀석들 뒷바라지와 한달 살아가기 빠듯하다는 핑계로
늘 당신께는 마음 먹은 것과는 다르게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건 핑계에 불과한 것일뿐 저의 욕심이 지나쳐서 그런건지도,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게 곧 어머님에 대한 효도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한테 흐르듯이 세월은 당신께도 똑같이 흘러
당신께서 기다려주시지 않으신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조금만 더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우리 집 녀석들이
조금만 더 클 때까지..... 기다려 주시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이젠 제발 여기서 더는 늙지 마세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항상 그 자리에 계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감히 진정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ps :
해마다 그래왔듯이 저는 올 여름 휴가를 이렇게 보내고 왔습니다.
고운님들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기억에 남을만한 좋은 휴가 보내셨는지요.
그렇게 지칠 줄 모르고 무섭게 치솟기만 하던 폭염도
내리는 비에 한풀 꺾이고 이젠 아침저녁으로 가을 내음이
묻어나는 듯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느껴 보셨는지요.
물이 쉼 없이 흐르듯이 세월도 흐르고 계절은 이렇게 또
어김없이 농부님들이 봄과 여름내 흘린 땀방울의 댓가인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고운님들 새벽녘의 선선한 기온에 감기조심 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들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