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잊기 위한 노력
새벽녘에야 강릉에 도착했다. 어스름 늦 저녁 상점들도 문닫은 그 거리에 술집만이 환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근처 24시간 편의점으로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점원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간 곳에서 난 쓰디쓴 소주 3병을 집어들었다. 삼각김밥하며, 안주거리, 과자, 빵등 닥치는대로 생각없이 집어 들었다.
팔안가득 다 집어들고도 모잘라 나는 노란색 쇼핑바구니안에 미친 듯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점원은 의아한 듯 그녀의 눈빛은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애써 모르는척 속이 풀릴때 까지 집어넣은 다음에야 무거워져 한손으로 들기 힘든 바구니를 두손으로 들고는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날 힐끔대며 바코드를 찍어대는 점원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어두워진 거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3만원이 좀 넘게 나온 돈을 지불하고 봉투에 가득 담긴 음식물을 들고는 근처 반짝이는 모텔로 들어갔다.
“방 있어요?!”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의 아주머니는 날 아래위로 힐끔거리며 말했다.
“혼자유?!”
지방 사람인 것 같았다. 지방 사투리가 완연한 그녀는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자살할거 아니니깐 방이나 주세요!”
나에게 이런 매서운 면이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딱딱한 하고 감정없는 말이 쏟아나왔다. 내 말에 아주머니는 두말 없이 방 키를 넘겨주며 3만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갑에 수표와 만원짜리 2장을 섞어 아줌마에게 내밀었다.
“4일정도 묶을꺼예요.... 괜찮죠?!”
“그럼 10만원만 줘유.... ”
라며 그 아주머니는 충청도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말하며 나에게 2만원을 건내주었다. 그돈을 받아들고 주머니에 아무렇지도 않게 쑤셔 넣고는 키 넘버를 확인했다. 404호...
앨리베이터를 찾아 가면서 나는 중얼댔다.
“왜 하필 44야..... 404호....”
빨간색 카펫을 따라 나는 내 방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키를 꽃아 불을 켰다. 지방 모텔이 이렇게 좋았던가??!
하얀색 원형 침대에 깔끔하게 정돈된 방은 내가 상상했던 시골의 허름한 여인숙이 아니였다. 텔레비전을 트니 무슨 쇼프로그램인지, 진행자가 잔뜩 오바된 모습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고, 방청객의 웃음소리가 자지러 지듯 들려왔다.
난 아무말 없이 탁자에 앉아 소주와 안주거리 몇 개를 꺼내 놓고는 찰랑거리게 술잔을 채웠다. 알싸한 알콜냄새가 콧끝가득 밀려왔다. 쓴 맛을 잊으려 안주를 하나 집어 넣고, 또 술잔을 채웠다.
마치 술에 중독된 사람마냥 쉴새 없이 마셔댔다. 한병을 너끈하게 비웠을 때 즈음, 구토가 밀려왔다. 미친 듯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한껏 토한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 보았다.
퀭한 눈동자, 생기없는 피부.... 불과 몇일 사이에 내가 이렇게 아파했던가??!
병원 신세를지지 않았고, 특별히 아픈곳이 없었지만....난 분명 환자였다. 마음이 아픈 환자......
난 대충 입을 헹궈내고는 다시 방에 들어와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그리고는 또 미친 듯이 마셨다. 낮인지 밤인지 모를정도로, 나는 술을 마셔댔다. 마시다 지쳐 잠들고 일어나 또 마셔대고....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굳게 닫아버린 커튼처럼 내 마음도 닫혀져 버렸다. 그렇게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 나는 어제 갔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소주를 아예 10병을 사버렸다. 다른 안주거리도 같이...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왔을때, 방은 깔끔히 치워져 있었다. 탁자에는 메모와 함께, 오색 식탁보가 덮여져 있었다. 식탁보를 들어올리니, 하얀 쌀밥에 국과 반찬 몇가지가 쟁반에 담겨져 있었다.
메모를 보니 아주머니였다. 삐뚤 비뚤한 글씨로 .....
-빈속에 술마시면 속버려.... 밥이라도 좀 들어요.... 먹고 그냥 그대로 문앞에 내놓기만 해요...
아주머니의 정성이 고마웠지만, 지금은 그 어느 누구의 관심도 거부할 만큼 난 지쳐있었다. 난 조용히 그 쟁반을 들고 문앞에 내려놓고는 철컥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닫아버렸다. 그 모습이 꼭 닫혀진 내 마음과 같았다.
또다시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의 말들을 떠올렸다.
-흠..... 너 담배 피니?!
그의 그 말 하나는 나에게 커다란 의미였다. 그걸 물어본다는건 그의 아버지가 한 말들을 그가 어느정도 믿고 있는것에 염두를 둔 물음이였기 때문이다. 그역시 세현의 농간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중 하나였을 뿐이다.
나는??.......
나는 들러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연극을 좀더 완벽하게 만들어줄 ....들러리.....
솔직히 세현에 관한 미움이 없는 것이 아니였다. 사실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살인 욕구가 일어날 정도로....난 이미 그녀를 마음속 깊이 미워하고 있었다. 한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면, 한없이 미워하는 내 성격상....이미 그녀에대한 호의는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그 미움보다 날 더 못견디게 하는 것은 그였다.
그렇게 1년여 동안 나를 곁에서 봐주던 그 사람....
그사람이 그렇게 쉽게 나를 못믿는데에 대한 불신감이였다. 그렇게 내 곁에 제일 오래있던 사람이였는데...그렇게 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였는데...어떻게 한순간 그렇게 변해버릴수가 있을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난 그를 너무 믿었던 것이다. 그래..... 항상 헤어짐을 가지면서, 남자는 믿지말자라고 울며 불며 다짐했던 나의 실수였다. 그도 남자였다. 다른사람과 조금이나마 다를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실수였다.
어느새 눈물은 흘러내려 가고 있었고, 눈물만큼이나 내 마음도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