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신랑 애칭은 범생이입니다.
워낙 바른생활 사나이라 붙은 별칭이죠.
지난 여름. 범생이와 전 8주년 기념으로 제주도 나들이를 했답니다.
공항에 도착한 정오쯤, 제주도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주도는 비가 잦은 곳이지만 그러다가도 언제그랬냐는듯이 활짝 개이곤 해서
별로 개의치 않고 여행을 시작했죠.
일단 렌트한 차를 타고 곧바로 용두암부터 도깨비도로를 거쳐 서귀포쪽으로 한 바퀴 돈 다음
협재 해수욕장 근처에 잡은 숙소로 이동하기로 첫날 일정을 잡고 말예요.
하지만 계획성 없는 일정이란 경우에 따라 많은 차질을 빚어내기도 해서 우리는 결국 엉뚱하게 성산까지 갔다가 협재쪽으로 이동하고 말았죠. 무려 반나절동안 제주도 전체를 일주한 거예요.^^* 그래도 중간중간 사진도 많이 찍고 구경도 실컷 했답니다.
운전초보인 범생이는 주차표를 뽑는 기계에 손이 닿지 않게 차를 대는 바람에 결국 내려서 뽑아오는 해프닝을 두번이나 연출해가며 저를 지루하게 않게 해주었죠.^^*
게다가 중문에서 협재쪽으로 도는 해변도로의 저녁놀은 서울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게 예뻐서 우리의 발목을 또한번 붙잡았는데, 유치하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게 있잖아요?
"나잡아봐라~~"하며 해변가 모래밭에 발도장도 열심히 찍었답니다. ^^*
그런데 역시 섬이라 그런지 해가 떨어지자마자 날이 금새 저물더군요. 아주 까만밤이 되서야 겨우겨우 숙소를 찾아가게 되었죠.
제주도의 도로는 참 편하게 포장을 해 놔서 길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초행길에 어두컴컴한 도로를 그것도 숙소의 체크인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놓은 우리커플은 초조해진 마음에 저녁도 먹지 않고 일단 달렸답니다. 또 한바탕 신나게 구경하고 놀아서 그런지 피곤하긴 했지만 여행의 만족감에 포만감마저 들어서 사실 시장기도 못 느끼겠더라구요. 사랑으로 배부른 부부가 틀림없죠?^^;
아뭏든 그런데 숙소를 보는 순간 피곤도 싹 날아가버렸습니다.
외관도 예쁘고 운치가 있었지만 우리가 머물 방의 창 너머로 바다가 바로 펼쳐져 있는 것이 너무나 그림같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거든요. 비릿한 내음과 철썩이는 파도. 바위에 부서지는 포말까지.
식상한 표현이지만 인위적이지도 않고 자연적인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 했죠. 재빨리 창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속의 닫혔던 창까지 절로 열리는 느낌이더라구요.
^^
더더욱 화려한 장관은 그날 자정무렵에 있었습니다.
역시 밤에도 어김없이 비가 오는데 번개까지 동반한 폭우였습니다.
그런데 번개가 치고 찰나찰나 저 멀리 수평선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칠흙같이 깜감한 밤에, 등대조차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가 번개의 빛에 의해 대낮처럼 환해지면서 수평선을 보여주더군요. 처음에는 창을 때리는 빗물이, 그리고 파도가 바로 눈앞에서 덮칠듯이 달려드는 것이 너무나 무서웟지만 이내 범생이와 저는 번개가 치기를 기다리며 숫자를 세게 되었답니다.
번개가 치고 "하나, 두울, 세엣~~"하면 아주 찰나의 순간동안 번개의 빛은 바다의 알몸을 남김없이 보여주며 이 세상이 아닌듯한 몽환적인 장관을 선사했죠.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바다와 수평선, 바위에 부서지던 알알의 포말까지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을 했답니다.
우리의 앞날에 깜감하고 어두운 밤이 찾아와도, 심지어는 폭풍우가 몰아쳐 별조차 보이지 않고 길마저 찾을 수 없을지라도, 번개가 치듯 혹독한 시련앞에서 그날의 우리가 보았던 바다와 수평선을 잊지 말자고.
번개가 치고 나면 빛이 바다를, 수평선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우리에게 멋진 미래를 보여줄 테니 시간이 우리마음에 바다를 열어줄 때까지 지금처럼 하나, 두울, 세엣..세어가며 오롯이 참고 기다리자고. 함께 기다리며 지금처럼 영원하자고 말이죠. ^^*
그날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본것 같습니다.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