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체통 보기도 힘들고 이동전화나 인터넷이 대세이지만 내가 군복무 하던 시절인 70년대 중반은 전화조차 드물어 빨간 가방 멘 우체부아저씨가 유일한 사랑의 가교였었다.
힘든 일과를 끝낸 후 취침시간에 나눠주는 군사우편에 희비가 엇갈리고 주간지, 월간지의 펜팔란을 온통 군부대 주소가 도배질 하던 시절, 첫 휴가 때 만난 집사람에게의 구애도 엄청난 물량의 편지공세였다.
문학께나 아는 졸병이나 국문과 출신들은 아예 모범편지를 작성 게시판에 붙여놓고 전 중대원이 표절하여 상대방의 심금을 울리고 주말이면 면회소가 북적이게 했다.
그러나 거의가 성공적인 전과를 올릴 때 이상스레 내 편지만은 시원찮은 반응이었다.
완벽한 시나리오에 의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주도면밀함으로 대다수의 여린 심성의 여인들은 동정심과 연민과 동포애 등으로 인해 무장해제 되기 마련이었는데 유독 집사람만이 열통에 한 두통의 답장을 보내는 무성의로 일관하였다.
급기야 내무반에서 대책회의가 열렸고 양다리를 걸치다 편지 알맹이가 서로 바뀌어 곤혹을 치른 한 중대원의 얘기를 모티브로 질투심 유발을 위해 가짜로 바뀐 편지를 보내보기로 했다.
요즘의 드라마같은 배경을 깔고 현란스런 문구와 있음직한 줄거리를 만든 세상 최고의 연서를 만들어 가상의 이름을 붙인 채 보내자마자 즉시 박격포가 날아왔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무시 하냐?
알고 보니 순 바람둥이 아닌가!
죽자고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서 내게 왜 편지질을 하느냐?
내무반에선 쾌재를 불렀고 즉시 다음 작전에 돌입했다.
날 지겹도록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과거의 일이고 난 그 여자가 싫다.
지금 난 당신이 미치도록 좋다, 당신만이 필요하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다소 신파조의 아부성 일관으로 탱크처럼 밀어 부쳤다.
결국 집사람은 백기를 들었고 이제 3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집사람은 그때의 편지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이따금 꺼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일말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진실을 밝힐 순 없다.
그 추억 속에서만 난 멋있는 남자로 존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