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우리 집에?
나는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도대체 무슨 일로 엄마가 진짜 가출을 하려고 하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대강의 위치를 알려주고 큰 길까지 마중나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싶어 현아에게 전화를 했다.
"현아야?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있겠대..."
"무슨 일이래?"
"몰라...그냥 전화와서 그런 말 하길래 그러라고 했지 뭐."
"엄마도 아빠한테 반란을?"
"그러게 말이다.."
"이쯤되니까 아빠가 불쌍해진다..."
"그래도 우혁이가 있잖아."
"걔가 뭐 아빠랑 친한가?"
"가끔 아빠랑 목욕탕 가는 거 보면 뭔 남자들끼리의 연대감이 있겠지.."
우리집은 왠지 남자와 여자가 편이 갈린 분위기였다.
엄마와 나 현아는 늘 만나기만 하면 수다를 떨었고 아버지와 우혁은 묵묵히 텔레비전을 보거나 우리의 얘기를 듣는 역할만 해왔다.
지금까지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우혁이 아버지와 얘기를 하는 것도 자주 보지는 못했다.
가끔 일요일이면 아버지가 우혁에게 목욕탕에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같이 목욕을 다녀오는 정도였다. 그것만으로 아버지와 우혁이 연대감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우혁은 자신만이 아버지와 함께 목욕할 수 있는 동성이란 생각과 또 부모님에 대한 예의로 따라가는 정도로 보였다.
이렇게 되면 집엔 달랑 우혁과 아버지만 남게 된다. 상상만으로도 암울한 그림이 그려졌다.
나는 현아의 뱃속의 아기가 얼마나 컸는지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대충 엄마가 큰 길가에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가르쳐 준 큰 길가에 큰 가방을 하나 들고 서 있었다.
"나이 드니까 길 찾는 것도 어렵다. 네가 말해준 데를 찾는데 다 거기가 거기 같아서..."
엄마는 좀 피곤해보였지만 표정은 밝아보였다.
"야유회인지 엠티인지는 잘 다녀왔어? 재밌었어?"
"그냥 젊은 애들 얘기 듣고 좋았다."
엄마의 대답을 들으며 젊은 사람들만 마음 속에 반항심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날고 싶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엄마 나이가 된다면 그냥 집안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며 여유를 만끽할 것 같은데 피아노를 하겠다고 아버지와 싸우며 엠티까지 다녀온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나와 같은 나이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그거 아니?"
"뭐?"
"엄마도 수도 없이 가출하고 싶었다. 정말로 가출한 적이 있었어 너 데리고...."
"그래?"
엄마의 가출은 그러면 지금이 두번째란 말인가?
"응. 너 낳고 백일쯤 되었을까, 그냥 아빠 아침상 차리고 또 늦게 일어나는 할머니 아침상 차리고 났는데 왜 그렇게 서럽던지, 널 들춰업고 나왔는데 갈 데가 있어야지..무조건 네 외할머니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데리러 오더라...뭐 방법이 있나, 다시 갔지...나올 때는 너 데리고 둘이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엄마의 사연은 처음 들어봤다. 내가 엄마를 집의 가구쯤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제 당분간 엄마와 동거하게 되는 건가?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진우, 현수...그리고 엄마...세상의 진정한 독립은 없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30년전 그 때 생각이 이제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너랑 둘이 살게 되었잖아."
엄마의 그 말로는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엄마는 집에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둘러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야, 난 네가 아주 초라한 원룸을 하나 얻은 줄 알았는데 좋다...나도 이런 집에 혼자 살아보는 거 쭉 꿈꿔왔는데..."
엄마는 나보다 더 어린 소녀같기만 했다.
친구와 독립에 들뜬 이십대 가출 소녀처럼 흥분해서 말했다.
"일단 씻어야겠다. 집에 안들어가고 바로 왔다."
그렇다면?
"아빠는?"
"네 전화 받고 마음을 굳혔어. 이왕 가출로 낙인찍힌 거 아예 해버리자...하는"
엄마한테 이렇게 과격한 면이 있었나 싶었다.
아니면 열정일까?
열정이라면 엄마는 몇 십년 동안 그 열정을 어디다 숨기고 살았던 걸까?
엄마가 샤워를 하는 동안 엄마를 위한 저녁을 대충차렸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언제나 밥은 엄마가 차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집에 엄마가 왔다고 생각하니 내가 밥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나는 엄마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다.
"싫다..입맛도 없고..."
"그래도 먹어..."
그런 대화를 하고 있자니 무언가 바뀐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엄마가 차린 밥상에서 그런 대화를 했었다.
밥먹어라, 입맛 없다...
"엄마! 내가 밥 안먹으면 속상해했지? 그러니까 엄마도 먹어..."
나는 엄마처럼 약간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알았다."
엄마와 밥을 먹고 있는데 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도대체 누굴까?
인터폰으로 보이는 사람은, 현수였다.
엄마가 있는 이 상황에 현수가 나타나다니...도대체 무슨 일일까?
"저 부탁드릴게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엄마는 누군지 아주 궁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집주인인데 뭔가 할 얘기가 있데.."
"그래?"
나는 문을 열었다.
"민아씨..."
현수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현수의 품에 안겨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레종으로 착각될 만큼 똑같은 고양이였다.
"왜요?"
"누가 있어요?"
현수가 그렇게 물었는데 엄마와 현수를 소개시키는 것도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주인과 내 엄마로 서로 소개를 시켜주면 자연스러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요."
"아...안녕하세요?"
현수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저, 민아씨...실은 이 고양이 좀 부탁하려고요..."
무슨 일인지 난 아주 잘 알 것만 같았다.
현수는 레종을 잊지 못하고 어디선가 고양이를 구해와서는 나에게 키워달라고 할 참인 모양이었다.
혼자라면 몰라도..엄마가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 안맞는 일만 일어나는 걸까....
"제 집에선 못 키워요. 어머니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현수는 간절하게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