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히는 핀 조명 불빛이
안개 같은 담배 연기를 부수면서 묘한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다만 왠지 너무 슬퍼 보이는 모습...
나이에 비해 세상에 너무 지쳐 버린 듯한 모습이
무척 우울한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은정은 동혁의 흔들리는 시선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은정의 나이 고작 스물 하나 설익은 나이이긴 하지만
나이 차 많은 동혁이 왠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마치 아버지 같다는 푸근한 생각...
처음 보는데도 어색하거나 경계심이 없고
이 남자...이 사람이라면...하는 조급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혁이 내미는 꽃 장식이 귀여운 작은 사탕 바구니를
받아 들면서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중학교 다니는 조카 년 지은이가
"난 오늘 사탕 한 보따리 받아 올 건데 고모는 한 개라도
받아 올 자신 있어?" 하고 놀리던 생각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푼수같이 좋아라하는 모습을
동혁에게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내숭을 떨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가 성미인 탓도 있지만 기쁨도, 슬픔도, 성냄도...
절대 얼굴에서 감출 수가 없다는 걸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아! 넘 신나요!
난 오늘 사탕 한 개도 못 받음 조카한테 사람 취급도
못 받을 뻔했는데!!" 하고
초등학생 어린이처럼 좋아라 날뛰었다.
그보다 더 감동 먹은 것은 꽃 장식 안에서 나온
엽서의 글 내용이었다.
어쩜 그렇게 족집게처럼 은정의 마음을 콕 찝어 썼는지
읽어 내려가는 동안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첨 보는 순간 이 사람 놓치고 싶지 않았었는데...
이 사람이 먼저 마음 문을 열어 보이는 글을 써서 보여주니
정말 구름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동혁은 찬찬히 은정을 뜯어보는 눈치였다.
그의 눈이 참 맑다고 느껴졌다.
그가 은정의 손을 꽉 잡았다.
"엽서에 쓴 글대로 오늘 은정씨 하고 같이 있고 싶습니다."
동혁의 눈이 완강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날카로워 보이고
어찌 보면 순한 양 같은 눈이었지만
분명한 건 그의 눈이 호수처럼 맑다는 것이었다.
"하지만..저 오늘..."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하지만 전...오늘...."
동혁은 은정의 입을 검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말을 막았다.
"운명을 믿지는 않아요. 하지만 왠지...
은정씨 만 싫지 않다면..."
"................!"
은정은 이미 호흡이 거칠어진 동혁을 느꼈다.
또 자신도 이미 몸도 마음도 열리고 있음도 느꼈다.
둘은 순간 뜨겁게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가 무척 작고 쇠약하다고 느껴졌다.
나이도 어린 게 어른인 그를 보호하고 지켜 주고 싶다는
객기까지도 생겨나는 묘한 순간이었다.
동혁의 나이는 삼십을 훨씬 넘긴 서른 여섯 이었다.
은정은 나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에 빠졌다.
무엇이 처음 본 그에게 이렇게까지 빠져들게 했는지
자신도 의문이지만
뭔가 거역하지 못할 어떤 힘에 떠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둘은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침대로 옮겨진 은정이 동혁의 품에서 떨면서 말했다.
"저..사실은 오늘...그 날 이라서...어떡하죠?"
"그 날이라면...빨간 날..? 생리...?"
동혁이 가슴에서 은정을 풀면서 난처한 눈빛으로 말했다.
"네, 끝나가긴 하지만 아직..."
은정이 몸을 움츠리면서 말했다.
"괜찮다면 난 그래도 상관없는데..."
동혁은 한시바삐 정주희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뭔가를 꼭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녀가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리느라 단 한번 여자를
가까이 해본 적이 없었기에 욕정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이제는 그녀의 포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게
몹시 급했다.
"동혁 오빠만 괜찮다면 저도 원해요. 하지만 그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은정의 시선이 흔들리면서 푸른빛의 우울함이 더욱 선명해졌다.
"사실 저...고백할게 있어요. 저 처녀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랑 오래 전에 이미..."
은정은 의외로 순진했다.
요즘 세상에 처녀 따지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처녀 아니라는 고백부터 하는 엉뚱함을 보였다.
그리고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한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동혁 오빠가 오늘 저를 안으시고 버리지만 않는다고
약속을 해주세요. 그럼 저는 동혁 오빠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게요.."
하면서 주루룩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다.
도대체 어린 나이에 무엇을 얼마나 아프게 겪었길 래 하는 생각에
동혁은 울컥 눈물이 솟아오르는 걸 눌러 참았다.
"첫사랑 남자 친구랑 헤어진 뒤로 매일 죽는다는 생각 밖에는
한 게 없어요. 정말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었는데..
그 자식이 떠나 버렸어요."
은정은 남의 얘기하듯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으면서
이따금씩 동혁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몹시 불안해하는 눈빛이어서 동혁은 가슴이 아려왔다.
찬찬히 보면 볼수록 예쁜 얼굴에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드리워진
신비로운 얼굴이었다.
간간이 내뱉는 진한 한숨이 도대체 스물 한 살의
그것이 아니었다.
(계속)cafe.daum.net/jnd7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