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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0. 내선딸린 전화기와 강도

무늬만여우... |2004.09.18 01:40
조회 2,680 |추천 0

우리가게 옆 거리에 있던 그 맛있게 하는 빵가게는 날마다 번창했다.
역시 맛있게 하니깐 잘되는거다. 사람들 입맛은 한국인이나 아르헨티나인이나 같은가부다. 먹는 장사는 맛에서 승부를 해야한다는게 맞는 말이다.

그 집에서 이제 따르따를 사먹으려면 먼저 주문을 해놓고 한 십분있다가 찾으러 가는게 상책이다. 그 긴 줄 끝에 사야하기에 일단 주문을 해놓고 가면 내가 먹을 분량이 잘라져서 포장이 되어있다. 가서 돈만내면 된다. 이젠 하루라도 안먹으면 입이 헛헛할 정도로 매일 그 빵을 먹어댔는데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아무래도 뭔 마약을 탔나부다 했다.

예전에 어떤 커피 숍에서 아주 소량의 마약을 커피에 타서 팔아서 그 가게 손님들이 북적거렸다는 이야기는 줏어 들었는데 설마 빵에 넣을리는 없겠지? ㅋㅋ

그 가게가 날마다 북적이니 자연 현찰이 많이 돌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비온 뒤의 날씨와 비오기 전의 날씨가 너무 차이가 난다. 비온 뒤엔 한 여름에도 겨울 날씨처럼 쌀쌀해서 아르헨티나 인들은 늘 어깨나 허리에 쉐타를 매고 다니는데 익숙하다. 영화나 외국인들 사진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매고 다니는걸 많이 봤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살다보면 그게 폼이 아니라 날씨가 변덕스러운데 사는 사람들이 당연히 챙겨야할 경험에서 우러나온 버릇인거란걸 알게 된다.

암튼 그 날도 아침엔 후덥지근하다 비온 뒤 넘 추운 날이었다.

그 빵가게에 권총 강도가 들어 아줌마가 총을 맞았댄다.

헉~

그넘에 빵 팔은게 얼마나 된다고...그걸 훔쳐가느라 총을 쏘냐.
무서웠다. 우리 가게에서 이십미터도 안되는 거리다. 다행히 아줌마가 살아났다는데 나를 포함한 동네 사람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다음 날은 코너에 있는 레스토랑에 한산한 시간에 혼자 있는 틈을 타 강도가 들었댄다. 그러면서 주위 가게 하나씩 털려갔다. 흐미 도대체 경찰들은 뭐하는건지...원.

너무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집에서 인터폰이 되는 전화기를 가져갔다. 가게엔 이층 열린 창고가 있는데 거긴 손님들이 모르는 장소였다. 거기에 전화기를 한대 놓고 카운터에 연결해 놓았다. 내가 전화기를 꾹 누르면 이층에서 소리가 나는 내선 전화였다. 물론 이층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 들어올 때 내가 그걸 누르면 이층의 누군가에게 손님이 왔다는 신호를 내가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전화기는 아직 아르헨티나엔 없던 한국제여서 우리 한국인들이야 그걸 다 알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은 그런 전화기가 있는지 모를 때였다.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늦은 저녁이 되면 가게 앞은 너무나 깜깜하게 된다. 아무도 안지나가게 되고, 저 안쪽의 정육점 성규씨와 나만 남게 된다. 알바생은 공부하러 학원에 가기 때문에 그렇게 둘만 남게 되는데 그건 강도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난 우리 가게의 모든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는데 그 땐 유난히 모르는 얼굴들이 다녀갔다. 처음보는 젊은 아르헨티나 남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는데 과자 하나, 우유하나, 요구르트하나, 이런 식으로 들락거렸다. 난 그 때마다 전화기를 수시로 올렸고, 그렇게 사가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울리는 그 소리에 신경쓰는듯했다. 그리고 오는 손님들에게 뻥을 쳤다. 우리 가게 전화기랑 경찰서랑 연결을 해놔서 단추만 누르면 오게끔 해놨다고 했다. 그들은 그 말을 믿는듯했다. 어쨌든 난 꺼져있는 전화기를 잡고 수다를 떠는 척했고, 밖에선 날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그건 일종의 인내심 게임같았다.
주위 거의 모든 가게들이 강도를 맞았는데 우리 가게만 멀쩡한게 영 불안하고 찜찜하고 그랬다.
그래도 난 즐거운척, 오지도 않은 전화기를 들고 수다를 떨어대는 척했고, 가끔 지나가는 지켜보는 눈동자들은 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얼굴이 들어오면 무조건 경보음을 울려대니 그들은 괜히 허둥댔고, 나도 두려운 맘이지만 일단 표정은 즐겁거나 무표정을 지어야했다.

암튼 그때부터 굳어진 내 표정은 그야말로 포카페이스가 되어서 이젠 내 기분이 어떤지 잘 표현을 안하는 버릇이 생긴거같다. 내 표정이 그렇다는걸 모르고 지냈는데 얼마 전 한국에 갔더니 거기 친구가 그랬다. 내 표정을 보면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기분이 어떤지 읽을 수가 없다고...아마도 오랜 이민 생활에서 굳어진 표정이라 그런가부다.

그렇게 한달을 견뎌내고 있다가 그 강도단이 잡혔단 이야기가 들렸다. 몇 명이 조를 짜서 다녔는데 다른 가게를 또 털다가 잡혔다는 것이다.
그 뒤로 날 지켜보는 눈동자들도 없어진거 보니 아무래도 내가 목표였던건 분명하다.
전기제품이 한국보다 훨씬 덜 발달됐던 88년 아르헨티나라 그 방법이 먹혀들어간거같다.

지금같으면 걍 낮에만 문열고 밤엔 일찍 닫고 들어갔을텐데...왜그리 무식하게 장사를 해댔는지 모르겠다. 겁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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