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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봉선화를 따고 나는 쑥을 베고 / 90

김명수 |2004.09.18 14:10
조회 179 |추천 0

 

 

아내는 봉선화를 따고 나는 쑥을 베고


 

봄에 빈터마다 흩뿌린 봉선화가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겹꽃과 홑꽃이 주종인데 분홍색 자주색, 붉은빛 꽃이 흐드러졌습니다. 아내는 봉선화  잎을 바지런히 따 모으고 있습니다. 겨울,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물들인다며 냉동실에 곱게 랲으로 싸서 저장합니다. 작년 겨울에 때늦은 봉선화 물들이는 재미를 본 후 금년에는 좀 일찍 준비하고 있습니다.

 

봉선화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려 때의 한 여자가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아 봉선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봉선이는 곱게 커 천부적인 거문고 연주솜씨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결국에는 임금님 앞에까지 나아가 연주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지요. 그러나 궁궐로부터 집으로 돌아온 봉선이는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은 봉선이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거문고를 연주하였답니다.


임금님은 이 소리를 알아듣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임금님은 봉선이의 손에서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매우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동여매 주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뒤 봉선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에서는 이상스런 붉은빛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붉은 꽃으로 손톱을 물들인 데서 봉선이의 넋이 화한 꽃이라고 하여 봉선화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남편에 대한 항거와 결백의 표시로 자결을 하고 만 여자의 넋이 봉선화로 피어났는데, 그 씨를 조금만 건드려도 톡 튀어나가는 것은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뒤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나도 쑥을 벱니다. 햇살 좋은 오늘 잘 말려서 밤이면 모깃불을 피우기 위해서입니다. 모깃불을 피워보면 연기가 미치는 범위 내에서 날벌레들은 근접을 하지 않습니다. 살충제로 날벌레를 쫓기보다 쑥 타는 향이 향기롭기도 하지만 여름밤 한 때를 모깃불로 인하여 운치를 더 하기 때문입니다.


쑥은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그 이용의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는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지요. 그러자 환웅은 쑥 한 웅큼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라고 했지요. 곰은 환웅의 말대로 하여 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그렇게 하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쑥은 곰을 사람으로 만들만큼 신통한 약재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사를 갔을 때는 이사한집의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약쑥을 태웠으며, 여름날에는 더위를 이기기 위해 쑥대를 창포 비녀처럼 머리에 꽂기도 했습니다. 먹어도 탈이 없고 맛이 좋아 즐겨 식용하는 친근한 풀이지요. 쌀과 함께 절구에 찧어 만든 쑥개떡, 쌀가루와 섞어 찐 쑥범벅, 찹쌀가루에 쑥을 이겨 넣어 반죽해 만든 쑥경단도 나름대로 만들어 먹은 아련한 향수가 내 입에 군침을 돌게 만듭니다.


그러나 대단한 번식력 때문에 조금만 게을러지면 마당이 쑥대밭이 되기도 하지요. 쑥은 장마와 가뭄으로 식량이 떨어졌을 때 구황식량으로 긴요하게 이용하기도 한 고마운 식물이기도 합니다. 정약용은 그의 시 “채호”에서 보이는 들마다 백성들이 쑥을 모조리 캐어 끼니를 때우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케네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양 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 넘어가네

푸른 치마 붉은 머리 허리 굽혀 쑥을 캐네

다북쑥 캐어 무얼하나 눈물만이 쏟아지네

쌀독에 쌀 한 톨 없고 들엔 벼싹 다 말랐네

다북쑥 캐어다가 둥글게 넓적하게 말리고 또 말려서

데치고 소금 절여 죽 쑤어 먹을밖엔 달리 또 무얼 하리

 

 

김 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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