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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1. 그래도 네가 제일 이쁘다

무늬만여우... |2004.09.21 00:56
조회 2,875 |추천 0

돈 번다고 한국으로 출장 갔던 랑이 4개월만에 집에 온댄다.

자본금이 충분치 못했던 랑은 준성씨와 동업으로 열었던 부동산은 금방 집어치우고 뭔 보석 공부를 해서 보석 취급한다고 전세계로 돌아댕겼다. 아 정말 바람같은 남정네다.

그래도 4개월만에 랑이 온다니 가게문을 좀 일찍 닫고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온 랑은 인물이 훤했다. 워낙 인물하난 훤한 랑이다. 결혼하기 전에 친정엄마가 내게 그랬다. 네 남편은 잘생겨서 여자들이 따를꺼니깐 그건 네가 감수해야한다. 참네 뭘 감수하란건진 모르지만 걍 웃어넘겼다. 엄만 걱정도 팔자야. 그런거 없을꺼야.

난 랑하고 고1때 만났다. 내 보디가드를 자처하고 나선 랑이 남자친구에서 애인이 된건 대학에 들어가서였지만, 오랜 기간동안 랑은 오로지 나하나 바라보고 산 해바라기같은 순정파 남자였다. 거의 7년동안 나한테 갖은 구박을 다 받고 내 변덕스런 승질을 다 받아주며 날 아껴줬길래 난 결혼해도 그렇게 해줄줄 알았다. 후훗~

이론 결혼하자 꿈은 깨졌다.
아무래도 이 남자 나에게 그동안 받았던 수모며 구박을 복수할 양으로 결혼한 남자같았다. 아님 첨부터 날 잡을 요량으로 그랬는진 모르지만 꼼짝도 안하고 날 부려먹으려고 들었다. 근데 그게 어디 그런가...나도 원래 시켜먹는 사람인걸...그래도 랑이 됐으니 속으로 내가 구박했던 7년만 참아주자 그런 맘이 생겼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참아주는데 버릇이 되어갔다.

4개월만에 온 랑은 공항으로 마중나온 날 껴안으며

"그래도 네가 제일 이쁘다."

싱긋 웃으며 그렇게 칭찬하는데 괜히 기분이 묘했다. 언젠 안이뻤나 참네. 쩝.

남편도 오랜만에 보면 서먹하다. 난 결혼하자마자 6개월 떨어져 있다가 만났고 그 뒤로도 밖으로 돌았기에 떨어져 있는게 오히려 익숙했다. 오니 귀찮은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때 어머님은 한국에 일이 있어 나가 계셨던 상황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랑 짐을 풀어서 빨래감을 빼서 빨래를 하고 나머지 정리를 하는데 카메라도 종류도 많지 이거저거 꺼내다보니 사진은 없는데 필름만 한뭉텅이 나왔다. 도대체 뭔 사진을 이렇게 찍고 다닌겨.

필름을 불빛에 대고 봤더니 이국적인 풍경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어느 나라를 돌아댕긴겨. 바닷가도 나오고 산도 나오고 남자들도 나오고 여자들도 나오고....비키니의 아름다운 곡선이 있는 여자들이 해수욕장에서 누워있는게 보이기도했다.

근데 긴 생머리의 여자가 자주 등장하는게 아닌가. 흠....

필름만 보는데도 뭔가 감이 왔다. 뉘기여.

그렇게 넘어가다보니 그 긴 생머리의 여자와 바닷가에서 안고 찍고, 침대를 배경으로도 찍고, 여기저기 찍힌게 많았다. 어휴.....기가 막혔다.

'뭐야, 얼마나 바람을 피고 돌아댕겼으면 ....그래도 네가 제일 이쁘다?'

띠바.

화가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필름을 자고 있던 랑 얼굴에 집어던지고 난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엔 오래된 낡은 장롱이 있는데 그건 이 집을 살 때부터 있던 장롱이랜다. 암튼 그 장롱이 밤에 보면 무서워서 난 밤엔 옥상에 안올라갔더랬는데 그 날은 정말 갈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친정은 너무 멀리 있었고, 친구하나 없는 아르헨티나가 절박하게 날 외롭게 만들었다.

아들넘이 깨서 젖달라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젖이 핑돌면서 부는데....눈물이 쏟아져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데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철없는 랑이 너무 미웠고 야속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날 찾으러 다녔지만 난 옥상에서 꼼짝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그렇게 밤을 지샜다.
아침에 아무일 없다는듯 밥을 해먹고 그래도 가게는 나가야하니깐 주섬주섬 장부책을 들고 가게를 갔다. 멍했다.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이 아르헨티나에서 이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을 그렇게 말없이 지냈다.

랑은 눈치만 보고 내게 말도 못붙였다. 내 성질을 아니깐 내가 무슨짓을 할지모르니깐, 어쩔줄 몰라했다. 일단 그 사진에 찍힌 옷을 다 가위로 발기발기 찢어서 거실로 내다놓았다.
밖에서 들어온 랑이 그걸 보더니 기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한국행 비행기표를 요구했다.

"이제 살기 싫으니 나 한국 가게 비행기표나 해줘."

그 날 저녁 랑은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엉엉 통곡을 해댔다.
잘못했댄다.
그렇게 삼일을 울어댔다. 시파.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아들도 젖달라울고...랑은 헤어지재서 울고...난 맘이 아파서 울었다.

한 번만 용서해달랜다. 미치겠다.

난 울엄마가 혼자살기 때문에 여자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엄청나게 크다. 내가 정말 되고싶지 않은것이 과부나 이혼녀가 되는거다.

병신. 바람피려면 완벽하게나 피지. 왜 들키냐.
담부터 피려면 안들키게 펴라 이 붕신 바보 쪼다야!!

그렇게 그 일은 내 가슴에 커다란 멍을 입히고 넘어갔다.

나중에 이 일을 안 시어머님은 첨엔 아들넘 욕을 막 하시다 나보고 술 너무 마시지않게 너무 닥달하지 말랜다. 역시 며느리보다는 아들을 위하는 엄마 맘인가부다. 나도 내 아들에게 내 며느리에게 그럴려나? 그래도 너무 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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