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礎律(초율) 10화

피바다 |2004.09.23 12:12
조회 450 |추천 0

 " 이제 오셨습니까 ? 태자 전하"

마르고 키가 큰 남자가 막 제황성에 들어오는 관지에게 다가서며 인사를 건넸다.

 " 아...후강 형님"

 관지는 이 사람 좋게 생긴 사내의  인사를  반갑게 받았다. 후강(厚剛)은 정실이었던 제 1 황비에게서 난 비류천의 장자이자 제 2 황비에게서 난 관지의 하나 있는 형님이었다. 원래였으면 태자에 오를 사람은 후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로 계승권을 포기했고 결국 관지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어색한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이었지만 오래 전부터 두터웠던 둘의 우애는 한치도 변함도 없는 듯 보였다.  관지의 태자 책봉식날 기꺼이 와서 가장 기뻐해준 사람도 바로 큰 형, 후강과 그의 아내 만(滿)이었던 것이다.

 둘은 그 간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제황성의 큰 홀로 들어섰는데 둘다 홀에 모인 사람들을 확인하고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홀은 비류천의 15 아들들과 7 공주들이 빠짐없이 다 모여있는 것이었다.

 "형님, 저기 지우 누님이....."

 관지는 주위를 둘러보다 더 놀란 눈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호리한 몸매에 서둘러 온 듯 전투복을 그대로 갖춰입은 금발의 공주였다. 같은 귀한 혈통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도 유난히 빛나고 그 품위가 높아보이는 아름다운 공주-천제의 장녀인 제 1황녀 지우였다. 지우 황녀는 허리 밖에 오지 않는 작은 남자 아이와 장난을 치며 그녀의 표정에서 보기 드문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우가 문간을 바라보다 후강과 관지를 발견한 순간 지우의 허리춤에 매달려 장난을 치던 남자 아이도 그 둘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햇다.

 " 형님들 오셨습니까? 현강이 인사드리옵니다"

 후강은 귀여운 동생 현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많이 의젓해졌구나, 현강"

 현강은 아이다운 밝은 웃음으로,

 " 지난 번에 보내 주신 과자는 맛있게 먹었어요. 역시 만 형수님의 솜씨는 알아줘야한다니깐요. 또.."

그러자, 지우는 차갑게 현강의 말을 자르며,

 " 성의는 감사하지만 현강이 그 과자를 먹고 체해서 많이 아팠습니다. 다음부터는 보내지 마십시오"

 후강은 여동생의 쌀쌀한 말에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대답했고 현강은 입을 삐죽이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누나 때문에 이젠 글렀어."

 얼음장같은 지우 황녀가 죽고 못 사는 유일한 두 사람이 있다면 증장천왕 제공과 동생 현강이었다. 현강은 지금은 죽고 없는 예전의 제4황비가 남겨 놓은 유일한 그녀의 혈육이었다. 외롭고 쓸쓸한 이 황가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보물이 친동생 현강이엇던 것이다. 현강이 아프다면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넋나간 듯 당장 달려 나오는 게 지우의 정이고 사랑이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자전하"

 이어서 지우가 관지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고, 관지도

 "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지우 누님"

 태연하게 인사를 나누는 넷이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현강을 빼고는 다들 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각자 천제의 부름을 받고 천황성에 모였지만 천제가 모든 자녀들을 다 호출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관지는 지우황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주 놀라웠다. 천계의 몇 안되는 여장군 중에서도 광목천왕의 딸인 소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단한 장군인 지우는 전장(戰場)이 그녀의 거처나 다름없었다. 왠만한 연회나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심지어 관지의 태자 즉위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그녀가 나타날 정도의 일이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곳에 모인 누구도 천제의 엄명으로 참석했을 뿐, 천제가 불러들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 거의 다 모였군요. 이런 적은 선대 천제의 붕우 이후 처음입니다. 아버님께서 무슨 말씀 없으셨습니까?"

 후강이 관지에게 물었지만 관지도 아는 바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 우리가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우가 현강의 장난을 계속 받아주면서 표정없이 말했다. 관지와 후강은 지우를 쳐다보았지만 지우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언제나 천제는 많은 말 없이 자녀들에게도 명령이 전부였다. 아마 불러들이기 힘든 고집 센 큰 딸에게만은 조금 더 성의를 보인 셈이라 지우가 그 정도라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 뚜렷한 대답을 못 찾고 있는 그 때, 천제 비류천이 제 2황비를 대동하고 나타나 황좌에 앉았다. 관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는데 왠지 그의 심기가 아주 불편해 보였다.

 관지는 더욱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왠만해서는 얼굴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었는데 오늘의 그는 유난히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다들 아버지의 태도에서 느끼는 바가 같은지 황자와 황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조아려 예의를 올린 후 엄숙해졌다.

 천제는 아주 한참을 말 없이 앉아있었다. 그의 자녀들은 계속 신중하게 그의 태도를 살폈지만 천제는 고민에 빠진 얼굴로 눈을 감고 차분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 쿵....쿵.....쿵...."

 홀의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둔음이 들려온 것은 그 때였다. 무거운 것이 대리석 바닥을 규칙적으로 찧으면서 그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 때까지 눈을 감고 앉아있던 천제가 눈을 번쩍 떴다.

 관지는 이 소리가 모든 궁금증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긴장한 표정으로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뭐야?"

 "헉?"

 황자와 공주들은 입구에 나타난 형체에 놀라 동요하기 시작했다. 관지도 절로 입이 벌어졌다.

다만 큰 형 후강만이 뭔가를 안다는 투로, 

" 이..이럴 수가"

 하고 단말마의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관지가 후강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올려다보자, 후강은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와,

 " 나중에 제 방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그 때 말씀 드리지요"

 그는 입구에 나타난 불청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햇다.

 아주 기이한 차림이었다.

 눈과 입이 과장되게 파인 울긋불긋한 가면을 쓰고 완벽하게 몸을 가린 붉은 갑옷이 거대하게 버티어 서 있었다. 그리고 비류천은 분도한 눈빛으로 그 붉은 이방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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