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일로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결론은 내가 심술부리고 있을 동안 두 사람은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온 시간들이 나로 인해 아쉽게 흘러갔다.
"밥 먹어"
"싫어"
"그럼 오빠가 애기처럼 먹어줄까?"
"그래도 싫어"
재준이 다가와 정말 애기처럼 안아 주었다.
"나 혼자 있을때 내 동생 하정이 생각했어. 내가 누굴 생각하겠니?"
"정말이지"
"진짜 애기다. 애기를 키우는 것 같아 지금. 철 없는 내 동생"
"치~~오빠는 행운인 줄 알아.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 오빠를 도둑놈이라고하지. 도둑놈이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어"
"그래 알았다 .오빠는 도둑놈이다. 그러니까 밥 먹어"
그제서야 하정은 밥을 먹었다. 늘 이렇게 행복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혼이라도 팔수 있을 것 같다. 내 영혼이라서 팔아서 이렇게 재준오빠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두 사람은 방에 누워 서로의 손을 잡고 천장만 쳐다 보았다. 아직 이런 일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삼일 밤이지만 그 밤도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짧다.
"우리 처음 만났을때 생각나"
"응 생각나"
"오빠 나한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
"나도 모르겠어. 그때는 모든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 아마 너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막 살고 있었을거야. 깡패나 조폭이 되어겠지"
"싸움 잘 했어"
"학교에서 알아 줄만큼 좀 했지"
"날라리 깡패에다가 나이도 많고, 내가 확실히 손해보는 느낌이야"
"난 애기를 키우는 느낌인데... 언제 철 들어서 데리고 살까 앞날이 캄캄해"
"걱정마"
"널 처음 보았을때 내 눈에는 꼬마가 아니었어. 정말 예쁜 천사였지. 내 눈에는 너 천사였어. 그렇게 보였어. 그런 예쁜 천사가 내 동생이라고 생각하니 잠도 잘 오지 않더라. 늘 네가 보고 싶었어. 부모님과 살고 싶지 않고, 너랑 할머니랑 같이 살고 싶더라"
"지금 이렇게 우리 두 사람만 살고 있잖아."
"가끔 이게 꿈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그때 하정은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오빠의 손을 사정없이 때렸다.
"뭐하는거야."
"꿈은 아니지"
"헉"
하정은 웃으면 다시 재준의 손을 잡았다.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면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
"조금만 더 자자"
"안돼 일어나. 서방님이 일어났는데 마누라는 여자는 아직도 잠을 자. 너무한것 아니야"
"귀찮아"
하정은 짜증을 내면 이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일어나서 동네 한바퀴라도 뛰어. 요즘 너무 백조 생활하는 것 아니야"
하정은 할 수 없이 일어나 재준의 목을 감고 묘한 눈으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재준의 볼에 뽀뽀를 했다
"뭐하는 짓이야"
"뇌물 쓰고 있는거야. 이것도 안 통하면 입술에 할거야"
"일어나"
"눈 감아"
재준이 순순히 눈을 감았다. 입술에 살짝 하정의 입술이 닿았다.
"이래도 나 일어나야해"
"아니 더 자도 돼"
"다음에도 이 뇌물 써야지. 효과가 만빵이네"
"아침 밥 오빠가 할게"
"밥 먹을 때 깨워"
"알았어"
재준이 나갔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하정은 환한 미소는 지었다. 너무나 귀여운 오빠다. 누가 재준오빠보고 차갑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 시절도 있지만... 그래서 사람은 다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정말 행복하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가고 있었다. 여기에 온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그 시간동안 너무 많은 행복이 지나갔다.
늘 우리는 함께 다녔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우릴 보고 바늘과 실이라고 했다. 언제나 함께 다니는 바늘과 실이 따로 없다고 부러워 했다.
"내일은 오빠 우리도 외식하자"
"밖에 나가서 먹고 싶어"
"그 보다는 오빠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제 알았어"
"내일부터는 나도 할게. 그러니까 오늘은 나가서 먹자"
"일찍도 오빠 생각해주네"
"히히히"
"웃지마 너무 사랑스러워"
"그럼 울어"
"울어도 예뻐"
"몰라"
그 날 우리는 밖에서 밥을 먹었다. 가까운 곳에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아마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휴일이면 야외로 이런 곳으로 오는 것 같다. 연인들, 가족, 친구들끼리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분위기 좋다"
밤에는 데이블마다 촛불이 밝히고 있었다. 아로만 향이 있는 초인것 같다.
"이런 통나무 집 짓고 살까?"
"나야 좋지만"
"할머니 걱정안돼"
"전화했어"
"그래"
"잘 지내고 있었어. 할머니는 무조건 내 편이잖아 많이 보고 싶어."
"할머니와 같이 여기서 살까?"
"나야 좋지만"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촛불을 사이에 두고 우린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 보았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행복하고 좋았다. 너무나.... 나에게는 소중했다. 하늘이 이런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해줘서 난 너무나 행복했다. 이렇게 오빠를 나에게 줘서 너무나 기뻤다.
다음 날 아침. 재준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다른 날 보다 이상하게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옆에서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자는 하정의 얼굴이 보였다.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뛰었다. 눈만 뜨면 자신의 옆에 하정이 누워 자고 있는게 꿈만 같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나에게 주는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
"천사 같다"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었다. 이렇게 같이 있어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너와 헤어지면 이젠 정말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다."
재준은 하정이를 위해서 뭐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고 있는 하정이만 남겨두고 급히 어디로 떠났다.
하정은 뭔가 허전한 느낌에 일어났다. 옆에 재준오빠가 없었다. 그제서야 벌떡 일어난 하정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오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재준오빠를 불려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멈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정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렀다.
"오빠 장난치지 말고 나와 어디간거야'
갑자기 울컥 눈물까지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옆집 아줌마가 남편이 읍내에 간다고 아침에 나갔다고 했다. 그 말에 하정은 울음을 그쳤다.
자신의 철 없는 행동에 또 다시 후회를 했다. 오빠는 날 두고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는데.... 바보같이 그걸 믿지 못했다. 이젠 오빠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오빠가 올 시간에 맞춰 하정은 아침 밥을 했다. 된장찌개에 도전을 했다. 쉽게 되는 음식이 아닌것 같다. 어렵게 어렵게 하정은 재준을 위해 아침 상을 차렸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마루에 앉아 하정은 오빠만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12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하정은 큰 길까지 나가 보았다.
"오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거야"
"나타나기만해라. 모든 걸 다 용서할게"
"좋아.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더 늦게 오지마"
"무사히 집에 오기만해"
큰 길에서 한시간을 기다린 하정은 할 수 없이 다시 집으로 갔다. 대문 앞에 선 하정은 망연자실 했다.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었고, 마당에는 덩치 큰 사람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엉망이 된 재준이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재준오빠"
하정은 앞뒤 생각도 없이 재준에게 달려갔다. 온 몸에 상처 투성인 오빠를 잡고 하정은 막 울었다.
도저히 이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잘 있었어"
그 목소리를 알아본 하정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유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오빠가 이런거야"
"아니. 네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 이런거야"
"그럼 이 사람들은"
"그래 네 아버지가 보냈어. 난 너를 데리려 왔고, 네 오빠는 아버지한테 짤렸어"
하정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럼 아빠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빠가 알았으니 재준오빠는 이제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을 것이다.
"오빠가 말한거야"
"오늘이 보름이야. 내가 말한 보름이라고...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왔어"
"재준오빠 건들리지마"
"난 네 오빠한테 볼일 없어. 너만 가면 끝나는 일이야"
"난 안가. 재준오빠 없으면 나도 안가"
"가게 될거야"
피 투성이가 된 재준오빠의 얼굴을 찬찬히 만졌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재준오빠가 나를 슬프게 쳐다보았다.
"많이 아파"
"괜찮아 오빠 걱정은 하지마"
그 말에 하정은 울었다. 자신이 더 아플건데 그 순간까지도 날 걱정하는 바보 같은 재준오빠 때문에 울었다.
"유환오빠 부탁이야. 그냥 우릴 놓아줘 난 앞으로 오빠에게 상처만 될 사람이야."
유환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데리고 가"
유환의 그 한마디에 덩치 큰 남자들이 하정을 붙잡고 강제로 끌고 갔다.
"이거 놔. 저 사람없으면 나 죽어. 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야. 날 보내줘"
재준이 일어나 끌러가는 하정이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덩치 큰 사람한테 저지 당하고 말았다.
"내가 말했지. 더 이상은 참지 않는다고 난 분명 보름이라는 시간을 줬어. 더 이상은 안돼"
"당신은 비겁해"
"아니, 당신 아버지가 비겁한 분이셔. 이런 일을 시킨 당신 아버지를 원망하라고"
처참하게 밟힌 재준을 남겨두고 유환은 차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하정이에게 반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아직도 바지 주머니에 그녀의 반지가 들어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재준은 그 자리에 힘 없이 주저 앉았다.
유환이 운전하고 그 옆자리에 하정이 앉았다. 하정은 보내 달라고 애원하고 또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환은 그럴때마다 속력을 높일 뿐이었다.
"오빠를 사랑하지 않아. 제발 재준오빠에게 보내줘. 나에게 이러지마 부탁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사는 나와 결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지금 날 보내주지 않으면 오빠를 평생 원망하고 미워할거야. 용서하지 않을거야"
"천벌을 받는다고 해도 널 보내지 않아.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네가 아니면 안돼. 네 사랑은 너뿐이야"
"이건 사랑이 아니야. 오빠는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니야."
"널 위해 죽을 수도 있어"
"그럼 죽어. 난 재준오빠와 같이 있을거야"
하정은 문을 열기 위해 발악을 했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고,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정은 그래도 가야했다. 이대로 집으로 끌러가면 다시는 재준오빠를 볼 수 없다. 그걸 알기때문에 하정은 지금 가야했다.
"그래도 소용없어. 그만 나에게로 와"
"아니, 절대로 안가. 내가 말했지. 오빠만 상처 받을거라고..."
그 말과 함께 하정은 유환오빠가 잡고 있는 핸들을 마구 흔들었다. 운전을 할 수 없게 그래서 차를 세우게 만들 작정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죽고 싶은거야"
"그래 죽고 싶어. 재준오빠가 아니라면 살 자신이 없어"
그 말과 함께 유환이 하정을 힘으로 밀었다. 하정은 문짝에 부딪치면서 머리를 다쳤다. 순간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유환은 운전에는 관심이 없고, 다친 하정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괜찮아."
"이렇게 오빠를 만난 것도 어쩜 운명이겠지. 그러나 오빠와의 만남은 악연이야. 내 운명에서 오빠는 악연이야. 우리 그만 여기서 헤어지자"
그 말과 함께 하정은 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렸다. 유환의 몸싸움에서 하정은 자동차 문의 잠금 장치를 풀었고, 유환이 밀면서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안돼"
하정이 자동차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유환은 절규했다. 하늘이 자신을 두번 죽이고 있었다. 첫번째는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일이고, 두번째는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그 여자는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차를 세운 유환은 정신없이 하정에게 달려갔다. 도로에 떨어진 하정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온 몸은 엉망이 되었고,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정을 잡고 유환은 사람의 소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절망의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시간을 흘렀다. 재준은 지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려가고 있다. 그 여자를 위해 선물도 준비했다.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그녀를 위해 재준은 선물을 준비했다.
"안녕하세요"
이젠 이 병원에서 재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만큼 자주 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재준에게는 이 병원이 아주 익숙한 집처럼 느껴졌다.
하얀 침대에 자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 날 이후로 한번도 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재준은 익숙한 의자에 앉아 그녀를 위해 준비한 후레지아 꽃을 꽃병에 꽂았다.
"오늘도 잘 지냈어. 오빠 많이 기다렸지. 널 위해 선물도 준비했어. 날씨가 너무 좋아. 이젠 완전한 봄이야 너와 나의 완전한 봄이야"
재준은 오늘도 이런 저런 얘기로 그녀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책도 읽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시간 유환은 병실 문밖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늘 그렇게 두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