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3. 쵸리소의 초? 쵸콜라떼의 초?

무늬만여우... |2004.09.24 08:17
조회 16,984 |추천 0


처음에 아르헨티나 가서 얼마 안되었을 때다.

전화가 왔는데 아...정말이지 뭔말인지 잘 못알아듣겠는거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어디 아픈 사람이 전화하는거 같구...참 안타까웠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던 단어는 딱 하나였는데, '깔리엔떼'라는거다.
그게 한국말로 번역하면....뜨겁다..인데 한국말이야. 뜨겁다는 표현이 을매나 많은가 말이다.

따뜻하다, 따스하다, 뜨뜻미지근하다. 뜨끈뜨끈, 따끈따끈, 뜨겁다, 따시다. 뜨시다.

도대체 이걸 어케 알아먹지?

왜 뭐가 뜨겁단걸까? 집에 불났나? 몸이 아파서 열난다는건가?
말도 못하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난리지. 병원이나 소방소나 경찰에 전화하지.

암튼 그래도 환자같으니 친절하게 대답했다.

"난 스페인어 잘 모른다. 그러니 다른데 전화해라."

그래도 그 목 쉰 불쌍한 아저씬 계속 뭐라고 뭐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잠자던 랑을 깨워서 전화를 바꿔주었다.

"어떤 불쌍한 사람이 어디가 아픈가본데......함 받어봐."

랑 전화를 받더니 얼굴이 갑자기 울그락 불그락한다. 그러더니 옴메~ 스페인어 욕을 아는건 다 거기 쏟아붓는거같다. 그리고 끊더니

"야~ 넌 음란 전화를 그렇게 대꾸하고 있었냐?"

"잉, 그게 음란전화였어?"

거참. 걸은 사람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치.

못알아 먹는 애한테 음란전화 하는 넘이나. 못알아먹는 애나...쩝.

한국에서만 그렇게 장난 전화 오는지 알았는데, 아르헨티나에도 그런 장난 전화가 많은지 첨 알았다. 그 뒤에도 욕을 바가지로 하고 끊는 애들도 있고, 내 생각엔 아마 그런 전화 번호가 따로 있는 듯 싶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사가서 전화번호가 바뀌니깐 그런 일도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한참 뒤에 랑이 여름엔 농장가서 일하고 겨울엔 차를 파는 장사를 했는데, 새벽 신문을 보고 싼 값에 급매가 나온 차를 현찰을 들고 가서 더 싼값에 사와서 되파는거다. 그러면서 역시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 내면서 집 전화번호를 내줘서 주로 내가 그 파는 물건의 답변을 해야했다. 그거 정말 귀찮다. 한 10분마다 오는데 그래도 손님이니 상냥하게 받아야했다.

그들은 항상 차 주인의 이름을 물어봤는데, 한국 사람이다보니 성을 말할 때마다 말하기가 참 힘들었다. 랑은 조씨인데 아르헨티나에선 '초'로 발음된다.
랑은 '쵸리소' 발음의 초라고 자기 성씨를 아르헨티노에게 말해주곤 했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지네들이 흔히 먹는 음식이니 아~ 하고 웃으며 잘 알아먹었다.

쵸리소는 한국의 순대같이 만드는건데 그 길이가 15센티 정도로 만들고 그 안엔 고기와 소기름으로 채우는데 뭔 특별한 양념이 들어가는지 아주 맛있다.

일단 그 날도 차를 사려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얼마에 무슨차에 몇년도식에 어느 엔진에 적어준대로 다 말해주었다. 끝으로 그는 랑의 이름을 물었다. 그래서 랑이 맨날 하는대로 성씨가 쵸리소의 초라고 일러주었다.

그 남잔 아주 흥미로워하며 내게 쵸리소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렇지. 내가 쵸리소를 보통 좋아하냐 말이다. 아주 좋아하지. 그래서 자신있게 대답했다.

"어 무지 좋아해. 너무 맛있잖니."

그 남잔 아르헨티나는 쵸리소가 아주 유명한 나라라고 하면서 여러가지 쵸리소가 있는데 어떤 쵸리소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아르헨티나의 쵸리소는 진짜 여러가지가 있다.

굵은거, 가느다란거, 길다래서 중간에 잘라파는거, 짧은거, 말려서 파는거, 쵸리소 안에 순대처럼 피를 넣어서 만든 모르시야라는거도 있고 종류가 참 많다. 그래도 난 보통 사람들이 주로 즐겨 먹는 굵고 고기가 들어간 걸 좋아한다. 그래서 고대로 대답했다.

그 남잔 굵은거 좋아하냐 가느다란거 좋아하냐 묻는다. 난 굵은게 더 맛있더라고 했다.

물기가 많은게 좋으냐 아님 말린걸 좋아하냐 했다.

속으로 별 이상한 사람 다봤네....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충실하게 대답했다.

"물기가 많은건 쵸리빤할 때 맛있고, 물기없이 말린건 걍 심심할 때 얇게 썰어 먹음 맛있지."

대뜸 그 남자가 물었다.

"너 이쁘냐?"

헉. 뭔말이래.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오지?
그래서 그게 뭔말이냐 차나 사든가 하지 별말을 다 묻는다 하면서 쌀쌀맞게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랑한테 그 얘길 했더니 또 랑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아유 이 멍텅구리. 그 남자가 너 갖고 논거도 모르지?"

"뭘 갖고 논건데?"

"야~ 쵸리소 생겨먹은게 어느거랑 닮았는지 생각해봐라."

"뭐랑 닮았는데?"

"어구 이 바보야. 남자 거시기랑 닮았지."

헉. 어머나.
아공 징그러. 내가 보기엔 한개도 안닮았구만. 왜그런대.
그럼 내가 대답한 그 모든 질문에 그 남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는거 아닌가.
보통 불쾌한게 아니었다.

아유 화딱지나. 신경질나.
그래서 랑한테 화를 풀었다.

"왜 맨날 그럼 쵸리소의 초라고 그랬어! 엉~!! 쵸콜라떼(쵸콜렛)의 초도 되잖아~!!"

"그래 그래. 이젠 그렇게 말해라. 쵸콜라떼의 초라고."

어휴.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그 남자와의 전화통화 내용이 머릿속에서 맴을 돌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한번만 더 전화하면 지랄을 떨어줄텐데...

 

☞ 클릭, 오늘의 톡! 외박 나가며 순찰나간다는 거짓말을?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