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중 세째인 저는 성실한 남편에 궁상스럽지 않은 살림으로 그런대로 행복한 편에 속합니다.
천석지기에겐 그만큼의 근심이 있다고 하죠.
저에겐 시댁이나 친정 모두가 근심거리입니다.
시집으로부터는 경제적으로 피곤하고 친정으로부터는 심적으로 피곤하죠.
오빠는 걸핏하면 실업자 생활을 하고 언니는 둘째 낳기 전까지 참도 철이 없어 언니로서 의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남동생 하나 있는 것도 30대 중반인데 아직 연애도 한 번 못해본 놈이 뭐 잘한 것이 있다고 제 바람에 틀어져 그렇잖아도 좁은 친정 작은 방을 혼자 틀어쥐고는 엄마는 물론 다른 형제들에게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아요.
아버진 어릴 때부터 너무 힘들게 살아서인지 남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신 분이죠.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러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만드셨고 돈에 벌벌 떨며 가난하지도 않은 형편에 참 궁상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엄만 친정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을 모두 나와 공유하려고 합니다.
오빠가 실업자가 된 처음 1년 동안엔 거의 매일 아침 엄마의 땅 꺼지는 한숨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들어야 했죠.
좋은 소리도 아닌데 엄만 딸자식이 스트레스를 받든 말든 상관이 없는지 어떨땐 실컷 하소연 해놓고
'알았제?" 하며 끊는데 난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난 그후로 전화만 오면 짜증이 나는 전화노이로제 증세가 생겼습니다.
그 후로 1년이 넘게 더 실업자 생활을 한 오빠는 우리가 책임지고 먹여 살렸기에 그런 전화는 안 받아도 되었지만 그 후로도 잊을 때쯤이면 또 실업자가 되고 그럼 엄만 전화질을 해대고...
내가 정말 엄마에게 화가 난 건 약장사들이 화장지 주고 국수 같은 것 주며 꼬드기는 데서 홍삼엑기스를 샀다던 엄마가 하도 아버지, 동생이랑 나눠 먹으려니 시원찮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큰 맘 먹고 남편 몰래 그것을 한 박스 사주고 난후였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죠.
내겐 홍삼엑기스를 받아 먹은 엄마가 언니에게는 한 박스 사줬다는 사실을.
언니에게는 내게 말하지 말랬다는 말까지 해주는 엄마가 얼마나 밉던지 난 정말 그 때 엄마가 진심으로 미워졌습니다.
언니에게 말하지 말라고 해놓고 나에게 말하면서도 하나 미안해 하지 않는 엄마의 태도 때문입니다.
엄만 항상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리라고 엄마 편한대로 생각하죠.
무엇인가를 요구할 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내겐 항상 헌옷과 양보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항상 칭찬을 들었지만 그 때도 나는 그 칭찬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모든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죠.
결혼 하고 이젠 속에 든 말도 할 수 있을 즈음 어릴 때 서운했던 일들 몇 가지 얘기했더니 엄만 그러더군요. '나는 니가 다 이해하는 줄 알았지'
난 그 말에 더 화가 나고 말았습니다.
어렸던 내가 이해를 하면 얼마나 이해를 하겠습니까?
엄마 편할려고 편한대로 생각해놓고 그걸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겁니다.
내가 전화를 부드럽게 받는다면 엄만 아마 동생이나 아버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엄마의 아픈 무릎 얘기를 매일 같이 내가 알아야 할 의무사항이라도 되는냥 알릴 겁니다.
이제껏 다 이해하고 살았는데 다 늦게 왜 이제서야 그 모든 것이 화가 나고 속상한지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해가 된다더니.
난 정말 친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엄마의 스트레스를 이젠 더 이상 공유하고 싶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