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가 윤비서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한가롭게 거실에 앉아 헤이즐넛을 마시며 한창 독서에 빠져있던 중이었다.
이제 슬슬 회사에 나와야 하지 않겠냐며 윤비서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일 모레부터 다시 출근하라고 말했다. 물론 그동안 유미의 안부를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사에 있을 때에도 듬직한 친오빠마냥 유미를 대해주던 그였기 때문에 그의 물음에는 유미도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었다.
그동안 쉬면서 늦잠을 실컷 잔 탓에 그럼 또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으로 미간을 찌푸리던 유미의 모습을 짐작이라도 한 건지 윤비서는 9시까지 출근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쉬었다 나가는 거라고 봐주는 건가?’
언제나 새벽같이 출근했었기 때문에 정규 출근시간인 9시까지 오라는 말이 영 어색하기만 했지만 유미는 그냥 첫날이라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으로 다시 책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눈은 유미의 옆에 놓인 핸드폰을 향했고, 한참동안 핸드폰을 바라만 보던 유미는 핸드폰을 쥐고 주소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원하는 번호를 찾고서 통화버튼을 누르려 손을 갖다댔지만 내키지 않았는지 그냥 문자메세지 버튼을 눌렀다.
아까의 번호를 입력하고서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다시 메시지를 입력했다. 그리고 전송 버튼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그대로 꾹- 버튼을 눌러버렸다.
「내일 모레부터 다시 출근합니다.」
이 문자메세지에 유재욱 사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 * *
아침 8시. 윤비서가 9시까지 출근해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9시까지 맞춰서 출근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유미는 1시간 정도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물론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느긋한 출근 시간이기는 했다.
정확히 열흘간의 휴가 끝에 출근해서 그런지 그 잠깐 사이에 회사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낯설기만 했다. 아니, 정확히는 마치 못올 곳을 온 것처럼 회사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예전에는 본능처럼 아무 생각없이도 걸어들어가졌던 길이었는데 단 열흘 사이 유미의 몸이 예전의 본능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좀 쉬었다고 풀어진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유미는 열흘간의 휴식을 되새겨보았다. 열흘동안 일과 관련된 것은 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있었으니 휴식이라면 휴식이었지만 열흘 간의 저녁 시간에서 반 정도를 유사장과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절대 편안한 휴식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제는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며 아침 나절부터 유미를 찾아와 제멋대로 끌고 다닌 해빈까지...
그래도 해빈과의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잊고 있었던 예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와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 것 같았다. 억지로 짓지 않아도 웃음이 나오고, 언제나 규칙적으로 숨을 쉬기만 하던 가슴이 때로는 빠르게 쿵쾅 거리기도 해서 행복한 것 같았다.
-띵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했다. 유미는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미 몸에 베여있는 익숙함으로 사장실 문을 열려다가 멈칫 했다. 예전 같으면 자신이 제일 먼저 와 있었던 것이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평소 상운의 출근시간을 생각할 때 그는 물론 다른 비서들도 회사에 와 있을 시간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출근에서 오는 어색함에 잠시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문을 두들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유미씨!!"
"오랜만이에요 김비서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미를 발견한 김비서는 좋아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미가 없는 동안 쓸쓸한 점심시간을 보낸데다가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두 남자 - 윤비서와 상운 사이에서 수다를 떨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유미의 출근은 그녀에게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유미씨! 내가 유미씨가 얼마나 보구 싶었다구...."
"아하하하..너무 반기시는 거 아니에요?"
"응..넘 보구 싶었어. 일단 사장님부터 만나고 나와요. 그리고 나서 밀린 얘기나 하자."
"네.."
-똑똑
"들어와요."
유미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상운은 한참 일에 빠져 있었다. 유미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한참동안 서류에 몰입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제서야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이 김비서가 아니라 유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이군."
"..네."
-삐
"윤비서 들어오라고 해."
자신이 오랜만에 회사에 나왔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서류에 빠져 있는 상운을 바라보았다. 열흘 만에 보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상운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저 사람의 얼굴 보는 것 조차 끔찍해야 할 텐데..
'막상 그렇게 까지 저 사람이 끔찍하지는 않아..'
왜 그런 걸까.. 저사람은 절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하는 생각에 빠져있는 도중에 달칵,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윤비서가 들어왔다. 책상 옆에 서있는 유미를 보고서 살짝 눈웃음으로 인사를 해주고 상운의 앞에 서서 서류를 내밀자 상운은 대충 서류를 훑어보았다.
"윤비서가 알아서 해. 바쁜 시점이니까 가능하면 빨리 적응시키고."
"네. 그럼 강유미씨 따라오실까요."
"..네.."
윤비서는 뭔가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유미를 데리고 나와 사장실 옆 윤비서의 개인 비서실로 들어갔다. 쇼파에 자신을 앉히고는 직접 차까지 갖다주는 윤비서의 행동이 어색했지만, 유미는 티를 내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강유미씨. 일단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쉬었어요?"
"네.."
윤비서는 예의 그 부드러운 웃음으로 유미에게 먼저 말을 건네면서 서류를 주었다. 무슨 서류인지 알지 못해서 윤비서를 바라만 보고 있자 그는 서류를 보라는 듯한 제스츄어를 취했고 유미는 그제서야 그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윤비서님. 이건.."
"보셔서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 회사에 상품 무역을 의뢰한 회사들입니다. 유미씨도 우리 회사의 일은 어느정도 알고 있겠지요. 오늘부터 유미씨는 해외 무역부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회사의 상품 분석을 맡아서 하게 될 겁니다. 처음 시작이기 때문에 상품 분석부터 들어가지만 유미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일을 배워야 할 거에요."
"....제가 해외 사업부로 가게 되는 건가요..?"
"네. 이제 예전과 같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래 그 일 자체가 사장님의 뜻과 어긋나있기도 했고...더이상 유미씨 같은 인재를 썩힐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러시는 거죠."
".....사장님께서.. 그러시던가요?"
"네. 사장님의 지시하에 유미씨가 이쪽으로 정식 근무 하게 되는 겁니다."
윤비서의 뜻밖의 말에 유미는 당황스러웠다. 이제와서, 근 2년동안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더니 이제는 제대로 된 일을 시켜준다는 건가....
2년 동안 회사에서 그의 뒷거래의 중심에서 일을 하면서 유미 역시 회사 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쯤 기회가 된다면, 아니 만약 처음부터 이런 인연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쪽 일에 흥미를 보였었지만 이런식으로 정말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기쁜 반면 한편으로는 찹착함도 느껴졌다. 나같은 인재를 썩힐 수 없다고...
여태동안의 상운의 태도를 생각할 때 이번 일도 순수하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회를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과연 무슨 속셈일까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네. 사장님 지시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거겠죠. 그럼 오늘부터 하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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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는 글인데 많이 길지 않아서 죄송하네요..
그동안 기다려 주셨을라나? ㅎㅂ ㅎ;;;;
하하하..얼마만에 올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거의 한달이 된 듯 한데..
제 글은 이제 다 잊어버리셨을 듯;;
그동안 좀 바빴습니다. 추석 연휴와 추석 일주일 뒤 있었던 제사-저희집이 큰집이거든요..;ㅅ;
그리고 여러가지 집안 사정에다가.. 전에 했던 아르바이트도 끝나서 간만에 푹 쉬다가
새로 아르바이트를 구했거든요..
전에 글 썼던 것도 다 아르바이트할 때 주로 썼던 거라서 집에서 오랜만에 쉬다보니까
글이 영 안써지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알바를 시작하면서 틈틈히 글쓰기도 재개했습니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도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아서 앞으로 글 쓰는 여유가 있을 거 같네요..
정말 다행..^ - ^ ;;
누구에게나 -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이제 유미가 회사에서 정식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의 유미는 말랑말랑 흐물흐물한 알갱이를 무지하게 딱딱한 껍데기로 둘러싸고 있는 탓에
생각보다는 좀 둔하고 긍정적이랄까? 그런 면이 없잖아 좀 있어요. 자기는 스스로 똑똑하고
냉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만히 보면 단순한 면이 더 많지요..ㅋ
뭐, 잘 못느끼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작가의 능력 부족..;ㅁ;)ㅎㅎㅎㅎ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유미도 옛날 성격을 되찾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제 유사장이랑은 어떤 관계가 될까요? 유사장은 희번뜩 눈을 뜨고 유미를 주시하는데..ㅋ
이번주내로 한두편 더 올리려고 해요.
여태동안처럼 오랫동안 잠수타지는 않을게요.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p.s. 이멜 보내주신 redfox-pmh님 너무 감사드려요. ㅎㅎ
님의 메일 받고 빨리 써야 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속도 내는 중이랍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