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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야사...<너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3>

초록물고기 |2004.10.27 15:45
조회 2,802 |추천 0

<재생 버튼 눌러야 노래 나옵니다...눈감고 들어도 아주 좋은 음악임다..^..^>


"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름만 가질 수 있는 분의 것입니다...

이름밖에는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어 제 곁에 이 글자만이라도 함께 남기고 싶어 새기는 것입니다..."

 

종현은 문득 벽에 걸린 갓을 보았다. 아마도 갓의 주인일 것이다.

 

"그리 은혜 하는 분이라면 그분께 머리를 올려 달라 하지 않구요..."

 

잠시 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투명한 그 서러움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제가 탐을 내기엔 너무 귀한 분인 모양입니다. 잠시 딴 꿈을 꾸었던 벌로 그 분을 더 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 가슴에 품고 계시면서 다른 이에게 머리를 올려도 한이 남지 않을 런지요..."

"오늘 그분이 올 것입니다....제가 머리를 올린다는 걸 알고 있으니 꼭 와주실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때는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기녀입니다...기녀 따위가 마음하나 바꾸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다..."

 

잠시 후 영월각 안주인 주여홍이 들어왔다. 눈가가 축축한 그녀는 여홍에게 들킬세라 눈가를 훔치고 방을 나갔다.

 

"미친것...저것도 한철이지...잠시만 지내보면 사내들 오장육부까지 훤히 보일 텐데 그때가면 우는 것도 그리울 게다.."

 

 바닥에 펼쳐진 종현의 그림에 여홍은 또 한번 감탄했다.

 

"젊은 년이라 그림도 더 탱탱하고 색기가 흐르네...나는 왜 이리 안 그려 주는 거냐"

"지금도 여전히 곱습니다...그 걸진 입만 빼고는 예전과 하나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래채에 술상 봐 놨다. 내려가 마시고 쉬었다 가거라...새로 온 아이로 하나 불러 넣었다"

 

종현을 보는 여홍의 눈 속에 따듯한 사람의 정이 묻어 있었다. 여홍은 종현을 아꼈다. 그래서 늘 잊지 않고 일을 만들어 그를 불렀다. 그의 그림을 아꼈고 그의 글을 귀히 여겼다. 단지 신분이 그렇지 못해 알아주는 이 없다는 것이 애석하고 아까웠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사내는 그리 흔치 않았다.

 

"술이면 됩니다...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니가 여기 있는 아이들 좋아하지 않는 거 안다.."

"아닙니다...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어쨌든 그 아이는 글도 제법 짓고 배운 것이 남다르다...너와 말이 좀 통할 듯 싶어 불렀다. 술친구를 한든 그건 니 뜻이다..."

"물어볼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이곳의 불문율 인지는 알지만 혹시 들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래 어디 들어나 보자.."

 

종현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효원이라는 이름을 아시는 지요"

 

일순간 여홍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다 사라졌다.

 

"들은 적 없는 이름이다... 간혹 이곳 사내들은 정 나눈 기녀들에게 자신들만의 호를 알려주기도 한다....그런 것들은 다른 곳에서는 써질 않으니 알 길이 없을게다.."

"아까 그 기녀의 정인이라 했습니다...아직 머리도 올리지 않은 기녀이지 않습니까..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터이고 받은 손님이 많지도 않을 것인데 어찌 객주께서 모른다 하십니까...."

"니가 무엇 때문에 그런 사람을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니 말대로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이곳의 불문율 이다..저 아이 때문이냐...부탁이라도 하더냐..."

"아닙니다...제가 아는 사람입니다...꼭 다시 만나야 할 사람입니다..."

 

여홍이 사뭇 놀라는 눈치였다. 아마도 종현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어찌 아는 사람이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그냥 어찌하면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섣불리 다가설 사람이 아니다....아는 것이 있다면 잊고 더 알려고도 하지 마라.."

"알고 계시지요....그렇지요.....누굽니까....그리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와는 연이 없는 사람이다...그러니 혹여 인연이 스쳐 알았다 해도 잊는 것이 좋을 게다....니가 배움에 욕심이 많은 것은 안다... 어쩌면 그의 남다른 학식에 니가 욕심을 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쉽게 만나지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리 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 그에게도 너에게도 해로울 뿐이다.."

"왜 모를 말씀만 하십니까...도대체 누구 길래 그리 말씀 하시는 겁니까..."

"더 이상 나는 할말이 없다...가서 술이나 마시거라..."

 

종현은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보다 더 답답하고 두려웠다. 도대체 무엇이 있어 사람과 사람의 연을 그리 단절시켜야 된단 말인가. 종현은 연거퍼 술잔을 비우고 방에 든 기녀를 물리지도 않았다. 밤이 깊어가고 혼자 자작을 하던 종현의 술잔을 혼로 기다리던 기녀가 비웠다.

 

"저도 한잔 주십시오"

"미안합니다...누구와 이리 있는 것이 익숙치 않아..."

"아닙니다....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이렇게 뵙고 보니 들었던 대로 좋은 분인 듯 합니다"

"부탁이 있습니다....어려운줄 알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부탁드립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 제가 그림을 그렸던 기녀가 있습니다...머리를 올린다고 하던데...."

"예 알고 있습니다...단향이라는 기명을 받았습니다...."

"은혜한다는 분이 오늘 찾아오실 거라 했습니다....제가 그분을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잠시 후 이곳을 나가야 합니다...큰길 옆 주막에 있을 것입니다... 부엌일 하는 억동이에게 연통을 좀 보내주시면 안될 런지요....꼭 부탁드립니다..."

"저는 송화연이라 합니다....걱정 말고 가 계십시오....오시면 곧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종현은 술잔을 비우다 화연에게 집필묵을 부탁했다.

 

[한 여인의 방에서 갓을 보았다.

 혹여 내 짐작이 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화연이 말없이 서찰을 받아 곱게 접어 소매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종현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방을 나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사람의 오장육부를 말리고 피를 짜냈다. 새벽을 한참 지나 첫 닭의 울음소리가 그 숨 막히든 정적을 깨고 있었다. 결국 종현은 연통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부질없는 기대를 한 모양이다.

무엇 때문에 이리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종현이 어느 듯 집 앞에 멈춰 섰다. 순간 심장이 요동을 치며 눈을 의심케 했다. 자신이 없는 방에서 불빛이 세어나고 있었다. 새벽을 죽이며 기다리던 사람이었건만 종현은 한달음에 들어서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방문을 열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

 

종현이 머뭇거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어찌.."

"그리 서 있지 말고 들어오너라...니 집이 아니냐.....술을 가져왔다"

 

비단으로 곱게 싸여진 팔각의 함 안에 화주와 기름진 안주가 들어 있었다. 종현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음식들이었고 술병과 술잔 또한 예사의 그것들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종현이 함을 열고 잠시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그가 재촉하며 농을 보냈다.

 

"뭘 하느냐...마시지 않고 그리 보기만 할 참이냐..."

 

종현이 서책을 내려놓고 반상에 술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작게 웃으며 말을 건냈다.

 

"너 같지가 않구나....그때 나를 호통하고 노려보던 너는 힘이 넘치고 펄떡였는데.... 오늘 너는 그날의 니가 아니구나"

"그냥 좀 지쳤을 뿐이다.." 종현이 술병을 들려하자 그가 먼저 술병을 들어 종현에게 받으라 했다.

"혹여 기다렸드냐..."

 

종현은 그가 자신의 서찰을 보았는지 아니면 그냥 들렀는지 알 길이 없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가끔 생각은 했다..혹시 또 다시 어디서 밤도망을 치고 있지는 않는지..."

"새벽까지 어딜 그리 다녔는냐...한참 기다렸다...보지 못하고 그냥 가나 했다"

"가끔 밤에 그림을 부탁하는 곳이 있다..."

 

그가 술잔을 비우며 입 꼬리를 시원스래 올리고 웃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온몸을 조여 오는 긴장감 속에서도 아주 오래 알아온 사람처럼 따사로웠고 많은 말을 보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로를 그리 느끼고 있음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종현이 빤히 그의 얼굴을 보았다. 굴곡이 없는 부드러운 선이 꼭 여인네의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리도 그리고 싶어 몸살을 알았던 그 눈을 한참 그렇게 보고 있었다. 종현이 그렇게 깊이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 못내 어색했던지 그가 먼저 눈을 돌리며 물었다.

 

"이제 내 질문에 답을 해줄 요량이냐...그래서 그리 보는 것이냐"

"늘 글만 읽는 얼굴이라 그런지 병자처럼 희고 맥이 없어 보인다"

 

또 다시 그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할 답은 아닌듯 싶구나....너는 내가 한 질문의 뜻을 분명 알고 있다....그러니 그 답 또한 분명 찾을 것이다"

"어찌 아느냐...또 내 속이 보이기라도 한 것이냐.."

"보이는 것과 그 실체가 같지는 않다.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 니 앞에 앉은 나는 여인네처럼 희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병자처럼 맥없어 보이지만 니가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여전히 무뢰하고 오만하구나.."

"확인하고 싶다면 그리 해 줄 의향이 있다. 이 잔을 비우고 저 목검으로 덤벼 보아라..니가 내 옷자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이틀 뒤 다시 다른 화주를 맛보게 해줄 것이다"

 

 종현은 그가 다시 오겠다는 말에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검을 들었다. 뒷마당으로 나간 그가 주위를 둘러보다 적당한 키의 막대 하나를 들었다. 달빛에 비친 하얀 도포가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덤벼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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