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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야사..<너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4>

초록물고기 |2004.10.27 16:19
조회 2,565 |추천 0

<재생 버튼 눌러야 음악 나옵니다...꼭...들어봐여...^^>

 

종현은 일년에 한번 열리는 관포졸 시험에 참석해 그들의 무예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독학으로 그것을 몸에 익히고 머리에 담았다. 실로는 누구와도 겨누워 본적이 없었으나 목검 수십 자루가 부서져 나가도록 소나무를 치고 깍아 댄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목검의 반 밖에 되지 않는 막대로도 종현을 단번에 제압해 버렸다. 종현의 목검이 채 하늘을 한번 갈라보기도 전에 그의 한 획이 종현의 손에게 목검을 놓게 했다. 종현은 자존심이 상한 것도 그럴 것이지만 그가 하는 모양 세는 관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라 놀랐다. 수없이 그려보았던 자세들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글만 아는 도령쯤으로 생각했는데 무예에도 남다른 재주를 가졌구나..."

"보는 것만 믿으려는 자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면 보이지 않는 다른 것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심약해 보이는 것이 싫어 이를 악물고 수련했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하지 않는 그것이 이상하게도 더 아련하게 들렸다. 그가 가진 알 수 없는 그 느낌을 그도 아는 것일까. 이상할 만치 고호하고 아련한 그 몸놀림이 천상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거추장 스러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달빛이 밝다.... 이곳은 참 편한 곳이다... 니가 편해 보인다 하면 놀고먹는 글쟁이의 푸념쯤으로 들리겠느냐.."

 

그리 말하는 그의 얼굴에 또 다시 깊은 정막이 내려앉았다 사라졌다. 늘 몸에 익어 있는 무게인지 매 순간 그의 몸에서 발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애써 떨쳐 버리려는 듯 그가 종현이 놓아버린 목검을 들어 춤사위 같기도 한 천상의 검술을 펼쳐보였다. 선이 갸날프나 빈틈이 없고 강인해 보이지 않으나 상대의 허를 찌르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종현은 늓을 놓은 듯 그 모습에 빠져들었다. 한 발을 내 딛을 때 마다 휘날리듯 눈이 부신 그 몸놀림에 종현은 자신이 있는 곳을 잊었고 자신의 신분을 잊었다. 한참을 그리 목검을 휘두르던 그가 마당 가운데 우뚝 섰다. 그리고 꼼짝 않고 달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하구나.... 다 같은 달일 터인데...... 이곳에서 보는 달은 그 광채가 어둠을 삼키고 천지를 보듬은 듯 따스하구나... 처음 알았다...밤이 이리 살아 있는지...."

 

온몸으로 달빛을 받던 그가 몸을 돌려 목검으로 종현을 겨누며 말했다.

 

"그림은 많이 그렸느냐..."

"그때 시작한 한점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했다." 부드럽게 손목으로 목검을 돌려 되는 그 몸짓에 귀한 사람의 귀품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궁금하구나...어떤 그림인데 계절이 다 가도록 완성을 못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느냐..."

 

종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잠시 있다 들어와라..."

 

종현은 서둘러 집필묵을 준비하고 붓끝을 내려찍었다. 그의 얼굴에 눈동자가 생겨나고 그곳에 생명이 불어들었다.

 

"다 되었다"

 

그가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 앞에 펼쳐진 그림을 보고 한동안 늓을 잃은 듯 눈을 때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어린아이같이 들떠 있었다.

 

"..나구냐 ...나를 그렸구나..."

"마음에 들면 가져가도 좋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처럼 그림의 얼굴을 한없이 보고 또 보았다.

 

"내가 이리 생겼느냐....나를 그린 건 알겠는데 내 얼굴 모습이 이리 펼쳐져 있으니 생소 하구나"

"사실 너는 이 그림보다 더 선이 부드러운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그리기 힘든 얼굴이다. 자칫하면 여인네의 얼굴이 되 버리기 쉽상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거울을 본 것이 너무 오래 되어 내가 이리 생겼는지 잊고 있었다"

 

다시 그림을 찬찬히 훑어보던 그가 그림을 말아 소매 속에 넣고 갓을 챙겨 썼다. 그가 떠날 차비를 하자 종현이 망설이던 말을 더 참지 못하고 뱉아 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대답도 듣지 못할 질문을 왜 하려 하느냐..."

"혹시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 그것 때문에 괴로운 것이냐...."

 

그가 빙긋이 웃었다. "그리 보였더냐....나는....사람을 보아도 담을 가슴이 없다... 그러니 그것으로 괴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늘....알지 못할 말들만 하는구나....그런데도 그말이 가슴에 담아 괴로운 것 보다 더 서러운 말로 들리니 참도 이상쿠나.."

"그리 들리느냐....모를일이다.....나를 그리 읽어내는 니가 싫지가 않구나..."

 

그가 등을 보이며 방문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서 있다 입을 열었다.

"너는 어찌 살고 싶으냐..."

"무슨 말이냐...."

"염원이 있을 것 아니냐.. 말해봐라...지금보다 더 낳은 삶..가슴에 품은 꿈..명예와 권세...무엇이라도 있을게 아니냐...궁금하구나 이런 곳에서 달을 받고 쏟아지는 별을 보는 너는 어떤 욕심을 가졌는지"

 

그가 무슨 뜻으로 묻는지를 알 지 못했지만 종현에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가 그 집에 있는 동안은 세상의 모든 것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듯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자신 또한 그리된 듯 풍요롭고 귀하게 느껴졌다. 그가 가진 그 존귀한 기품이 주위의 모든 것들을 그리 만들고 있었다.

 

"지금의 내 염원은......"

 

종현이 잠시 말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퍼졌다.

 

"너의 옷자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했지만 이틀 뒤 다른 화주를 맛보게 해준다면 지금의 내 염원은 이뤄지는 것이다...그것뿐이다.." 그가 깊은 눈길로 종현을 응시했다. 그리고 말없이 방문을 열고 나섰다. 종현이 방에 있던 그의 신을 가져가 마루 밑에 무릎을 조아렸다.

 

"그러지 마라...."

 

종현이 그의 발에 신을 신겨주며 말을 받았다.

 

"니가 나와 다른 신분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신을 신고 다시 여기 서길 바라는 내 마음을 보이는 것뿐이다..."

 

[나와 다른 신분을 가진 이가 나를 알아봐 준 것에 대한 연모인가...

아니면 그 알 수 없는 모호한 느낌이 주는 아련함인가...

그와 마주하고 있을 땐 모든 것을 잊는다...

그가 가진 기품도 내 신분도 아무런 벽이 되질 못한다.

그가 나를 미천한 신분의 그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내가 알고 있다.

오직 한 인간으로서 나를 보아주는 그를 내가 어찌 섬겨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한다.

타고난 문무를 한껏 갖추고도 내게 보이는 그 시린 느낌이 나를 더 목 메이게 한다.

간절히 답을 바라는 그 눈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고동쳐 온몸이 떨린다.

그가 내게 기품 있다 했다.

내가 가진 학식이 가치 있고 귀한 것이라 했다.

분명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며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으로 다른 세상을 가져 보았다.

지금 내가 그리워하는 이것을 도대체 무엇이라 해야 하느냐...]

 

그가 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종현은 그 이틀을 그를 맞이하는 일에 쏟았다. 표 나지도 않는 방안을 수없이 닦아내고 마당을 치우고 큰 장까지 나가 잘 익은 귀한 술을 구했다. 그러고도 덧없이 남는 시간들을 먹을 갈아 댔다. 한자도 적어 내려가지 못한 종이위에 자꾸 한사람의 모습만 그려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고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열렸다. 그리고 종현의 숨이 막바지에 다 달았을 때 쯤 그가 문밖에서 인기척을 했다.

 

"있느냐..."

 

종현은 반가운 마음도 접고 방에 그대로 앉아 그를 맞았다.

 

"혹시 해서 술을 준비했는데 혼자 마시지 않아도 되겠구나..

" 그의 얼굴에 홍조가 들이워져 있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술을 한 모양이었다.

 

"벌써 어디서 술잔을 기울인 모양이구나..."

"니가 나를 찾아낸 곳이 그곳이 아니드냐..."

 

종현이 불현듯 그 기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길고 막연한 기다림이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종현의 가슴에 작은 서운함이 밀려왔다.

 

"많이 마셨구나...."

"부어라...."

 

종현이 술병을 들지 않자 그가 손수 술을 따라 단숨에 마셔 버렸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른다...."

"왜 여홍에게 끝까지 묻질 않았느냐..."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니가 누군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진정이냐..."

 

 종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모두 들어내는 것이 두려웠다. 그가 다시 한잔을 따라 단숨에 비워버렸다. 홍조는 더 짙어져 그 눈이 촛점을 잃고 있었다.

 

"두려우냐....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

"왜 이리 마셨느냐..혹 그 기녀 때문이냐..."

 

그가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종현의 가슴이 싸하게 저려 왔다. 그의 절망이 무엇인가 알지 못하면서도 그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따라가고 있었다.

 

"원하면 품으면 그만인 것을 그깟 기녀 따위가 무엇이 간데 내 술잔에 내려앉겠느냐"

"오늘은 니가 너 같지 않다...여기 와서도 편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긴 숨을 쉬었다. 그리고 종현과 눈을 맞추었다.

 

"미안하다....피곤하구나....괜찮다면 잠시 쉬고 싶구나.."

 

종현은 이부자리를 깔아 그를 뉘웠다. 어린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 그는 그저 작고 가녀린 한 사람이었다. 종현은 잠이 든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그 얼굴에 손을 가져가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치웠다. 그렇게 종현은 단 한순간도 그의 얼굴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도대체 너를 보는 내 눈에 무엇이 담긴 것이냐...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니가 보이는 그대로의 너인지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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