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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야사..<이제 나를 보았느냐...11>

초록물고기 |2004.11.03 23:43
조회 2,650 |추천 0

 

정신을 놓아버린 종현을 누군가 부축해 침상에 누이고 찢기고 터진 상처들을 닦아냈다. 이미 반쯤은 맥을 놓아버린 육신은 손끝 조차도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종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겨우 이승의 문을 찾아 들었다.

"어찌 된 일이냐..."

"깨어났구나....."

"이곳이 어디냐...."

"내가 있는 곳이다......"

 

종현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효원이 그를 만류하며 다시 자리에 뉘웠다.

"그냥 있거라...사흘만에 깨어난 것이다. 몸이 많이 상했다.."

"너는....아무일 없는 것이냐...괜찮은 것이냐.."

"괜찮다...나는 괜찮다...말하지 않았더냐...아무일 없을거라 하지 않았더냐..."

"이제 알아야겠다...니가 누군지..."

 

효원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다 말해 줄 것이다...그러니 먼저 몸을 추스려라...니가 일어나 움직일 수 있을 때 말해 줄 것이다..."

 

다음 날 새벽 종현은 온몸이 통증으로 정신마저 혼미한 육신을 일으켜 효원 앞에 섰다.

“자....이제 말해라....너는 누구냐...."

 "나는 너의 벗 효원이고....숙원 마마의 셋째 아들 아성이다..."

 

효원의 입에서 천둥 같은 한마디가 쏟아져 나왔다. 종현이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나서도 퍼뜩 정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한 순간 힘겹게 버티고 있던 모든 것들이 스르르 흐물어져 내렸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종현의 가슴 속에 폭풍같은 두려움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신분이 천상의 것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있는 그 곳이 그를 헤하려 하고 있다는 그 두려움이 종현의 가슴을 더 서늘케 했다.

 

"이런 분이셨습니까..."

"여기는 아무도 없다...그리고 나는 너의 밤손님 효원이다..."

"저에게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하게 하셨습니다....."

"나를 그리 대하지 마라....... "

"마마...."

"너를 잃을 뻔 했다.... 말하지 못한 연유를 이해해라... 나로 인해 너를 잃을 뻔 했다"

"....왜 처음부터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 했다면 니가 내게 마음을 보였겠느냐... 또 내가 너에게 시름을 흘릴 수 있었겠느냐.. 너 또한 내가 큰 병이 있어 거동조차 못하는 몸이라 들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은 듯 합니다.."

 

효원이 잠시 말을 멈추고 종현을 응시했다. 시름을 풀고 싶은 허허로운 눈빛이 그 속에 머물다 살아졌다. "나는 이리 살아서 움직이나 살아있지 못하고 어디에도 내 보일 수 없다...

 지금부터 니가 그 연유를 보게 될 것이다...

 니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것이니 힘들어도 고개를 돌리지 마라... "

 

종현이 발이 내려진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자신의 초가집에서 화주를 나누던 그가 그곳에 있었다. 어느 새벽 자신에게 찾아 들어 영혼을 나누어 마신 듯 아련한 벗이 되어 한시도 눈에서 때어 낼 수 없었던 그가 그곳에 그리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두렵기는 했으나.....감히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 생각지 마라....나는 니가 알던 효원이고 이곳은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일 뿐 내 집이 아니다..." "마마......" 

 

 서로를 마주한 시선이 데이면 베일 듯 팽팽하게 선을 잊고 있었다. 그 호흡속에 섞인 작은 떨림들이 온 방을 채우고 두사람의 심장에 내려 앉았다. 감히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길고 무거운 침묵이 그 숨소리 마져도 삼키고 있었다. 잠시 후  효원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모든 천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놀란 종현의 시선이 갈 곳을 찾지 못해 고개를 떨구었다.

 

"보이느냐..내가 사람들에게 나서지도 못하고 중병의 환자 인 냥 죽어 살아야 했던 이유다"

 

돌처럼 그리 굳어 숨조차 내 쉬지 못하는 종현을 그가 재촉했다.

"고개를 들어라...

 니가 그리도 나를 원망하며 알고 싶어 하던 것이다..

 너에게 말하지 못해 나 또한 얼마나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니 보아라...

 보고도 참아낼 수 있는지...

 무엇으로 보이는지...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려고도 들으려고도 해본 적 없다....

 하지만 네게는 꼭 나를 보여 그 답을 듣고 싶다...

 그러니 어서 고개를 들어 보아라....."

 

 종현이 숨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얼굴을 들어  떨리는 시선을 효원에게 주었다.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보이는 내 모습이 어떤지 니가 말해보아라 ....

 너는...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

 

종현은 눈을 뜨고도 앞에 있는 효원을 눈에 담지 못했다. 이미 마비된 듯 사고를 잃어버린 머릿 속이 눈으로 드는 시안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을 가지지 못했으나 여인의 성을 가졌고 여인 같지 않은 큰 키와 어깨를 가졌으나 채 남자가 되지 못한 몸은 가녀리고 섬세했다. 그는 모두를 가졌고 또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 새벽 해연사에서 그리 몸을 녹여 오열했던 그 비통함이 효원의 몸에 그대로 내려 앉아 있었다.

 

[어찌하면 좋으냐...

도대체 내가 너를 어찌해야 하느냐...

이런 고통이였느냐...

혼로 견뎠을 그 긴 세월이 네게 얼마나 비통했을지 나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두렵다..

너를 보는 내 가슴이 피를 역류시킨다.

어찌해야 하느냐...

태산을 부수고 천지를 뒤업어도 그 고통 한점도 들어낼 수 없는 지금을....

내가 어찌해야 하느냐..

두려웠다.

이리 될 것이 두려웠다.

너를 알아 얻어지는 그 고통들이 내가 가진 무엇으로도 들어지지 못할 것이...

너를 보는 내내 나를 두렵게 했었다.

 이제 알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나를....

 내가 어찌 해야 하느냐...]

 

종현이 몸을 일으켜 효원의 어깨 위로 비단 천을 감쌌다. 온 몸의 진동이 여전히 그 손에 남아 있어 어깨를 스치는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기다렸습니다...한시도 그 기다림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니가 보고 싶었고 내게 오기를 기다렸다..

그것 뿐이다....

내가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내 심장이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리도 니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산에서 그리 내려와 한시도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나는 감히 눈물조차 보일 수 없구나...

평생을 지니고 왔을 이 칼날 같은 고통위에 어찌 내 가볍고 천한 눈물을 보이겠느냐..]

 

술잔을 채우는 종현의 눈 속에 보이지 못할 서러움이 밀려 들고 있었다. 슬픔이었다. 참으려 들수록 가슴을 조이는 비정한 슬픔이었다. 가슴을 채운 그 불덩어리가 금방이라도 목을 타고 넘어올 듯 심장이 아리고 저려왔다.

 

"지금 제가 이리 아픈 것은 그 몸이 달라....눈으로 본 놀라움이 아니옵니다..

늘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가슴에 숨겨두고 보아야 했기에 더더욱 목이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 보낸 시간들이 서러워 아픔니다..

왜 저를 그리 두셨습니까...

그리도 아까운 사람을 왜 앞에 두고도 숨겨보게 하셨습니까..."

 

 종현의 입가에 두려움을 거둔 미소가 고이고 있었다. 잠시 놀랐던 가슴은 이미 그 형체를 찾아 그를 다시 맞을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너를 본 것은 내 눈이 아니었다...

내게 왔던 그 새벽 이미 내 가슴이 너를 먼저 보아...

나도 모를 그리움이 생겨나고 있었다.

보이는 것을 말하라 했느냐...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너는 처음부터 눈으로 보아지는 사람이 아니였으니..

어찌 그것을 입으로 내 뱉겠느냐..]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 가진 그 가슴속이 이미 지옥과 다르지 않을 것인데도 한점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그가 효원을 더욱 아프게 했다.

 

"종현아..."

 

자신을 부르는 효원의 시선을 흔들림 없이 그대로 받아냈다. 이제 그 눈은 더이상 다른 것을 보지 않을 비장함을 담고 있엇다.

 

 "내게 왔던 그날 부터...내가 너를 은혜했다...

 말해라...이제 두려움없이 들을 것이다..그러니 한 점 남기지 말고 모두 내게 버려라"

"너를 이리 한번 부르지 못하고 떠나게 될 것이 두려웠다. 얼마나 좋으냐...

 이리 앞에 두고 나를 열어 보일 수 있으니 나는 더이상 애통하지 않다.."

 

효원이 술을 따르며 다른 이의 얘기를 하듯 멀게 흘려 말했다.

"먼 길을 떠날 듯 싶구나...이틀의 말미가 남았다...너와 할것이다..

 돌아가 있거나...내일 진시에 너를 찾을 것이다.."

 

종현이 궁을 나가고 혼로 남은 효원이 침상에 눕지 못하고 밤을 밝혔다.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시옵니까......"

"...더이상 나를 읽으려 들지마라..."

 

한시도 효원을 떠나지 않는 도진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이미 그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리는 못하시옵니다..제가 그리 두지 않을 것이옵니다......"

"천금같은 시간이다...내가 살아낸 평생보다 귀한 시간이다..그러니 나를 막을 생각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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