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혜(天惠)의 음식
지금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나는 충청도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라는 곳에서 한 삼년을 살았다.
공기 맑고 인심 좋은 산골이었다.
아직도 그 곳 동네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며칠 전 울타리를 맞대고 살던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를 바꾸어 주니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내의 통화 하는 모양을 보니, 아주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아내의 눈 사위도 볼그스래 붉어져 있다.
인정이란 이렇게 끈끈한 것이다.
아내가 수일 내 한번 다니러 가겠다기에 그리하라고 했다.
아내는 읍내에 나가서 피대기 오징어 몇 축과 과메기 몇 두름, 그리고 소라고동을 사왔다.
스치로폼 상자에 포장을 해서 차에다 실어 주었다.
동행이 없는 홀가분한 여정은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키며 삶에 부드러운 충전이 되리려니 했다.
사실 나는 요즈음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장거리를 다녀오기엔 다소 무리이기도 하기에 아내 혼자 다녀오라 한 것이다.
1박 2일간의 여행을 마친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집을 들어섰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 역력하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가 풀어놓은 여행보따리에는 흔히 보지 못하는 집장이 들어있었다.
나는 얼른 손가락으로 폭 찍어 맛을 보았다.
아른거리는 그 맛, 입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아스라한 그리움의 맛을 느꼈다.
장은 종류도 많지만 예전 우리 조상들은 초봄에는 담북장, 여름에는 집장·생강장, 가을에는 청태장, 겨울에는 청국장 등 계절에 맞게 개발했고 그 만드는 방법도 각기 달랐다.
이 장들은 된장류에 속하며 장 중에서도 된장은 단백질이 풍부하다.
집장과 된장의 차이는 담그는 방법은 물론 다르지만 형태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서로가 머금고 있는 수분 함유량이 3:7의 비율이라면 집장은 거꾸로 7:3의 비율 정도 되는 죽 비슷하게 걸죽한 된장류이다.
이 집장의 맛은 담그는 집마다 특유의 맛이 있어서 어떤 집은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서 매콤한 맛이 나기도 하고, 보리 쉰밥처럼 시큼한 맛이 나는 집도 있으며 때로는 달콤한 맛을 내는 집도 있다.
가래의 비법이 서로 다르게 전수된 것이다.
항아리에 묻어놓은 작년의 묵은 김장김치도 보내왔다.
그 시원한 맛이 냉장고에 보관된 김치와는 벌써 향과 맛이 다르다.
농약 살포 없이 우렁이와 미꾸라지로 유기농 재배한 쌀도 두어말 보내왔다.
그 날 저녁은 집장과 땅에 묻어 속속들이 삭힌 김치와 기름진 쌀밥으로 먹었다.
고소한 쌀밥 속으로 베어드는 집장의 매콤한 맛이 섞여지고 잘 익은 김치의 시원하고 심심한 맛이 어우러져 내 입맛은 오랫만에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이 깃든 감동을 느꼈다.
우리의 전통음식은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경험 끝에 영양을 공급하거나 신체의 리듬을 이용하는 데 합리성과 균형성을 이루며 만들어 진 것이다.
여름과 겨울, 더위와 추위를 이용하여 생산된 쌀과 보리는 열량과 지구력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된다.
식품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쌀밥 · 보리밥에서 열량을 얻는 한편, 이 주식에서 얻을 수 없는 아미노산을 된장이나 젓갈에서 얻었고, 여기에 김치를 개발하여 비타민 A와C, 철분 등을 섭취하여 영양의 균형을 찾았다.
밥과 된장과 김치 이것이 우리의 기본 식품이다.
우리의 가장 간단한 식탁은 3첩반상으로 바로 밥과 국과 김치이다.
밥은 단맛이 위주가 되고, 된장국은 구수한맛을 내며 김치는 시고 달고 짜고 맵고 또 차갑고 시원하고 상큼한 맛을 낸다.
이 세 가지 음식에 모든 맛과 영양이 골고루 들어있는 천혜(天惠)의 음식이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보면 “장이 좋으면 고기가 없어도 무방하고, 장이 없으면 고기가 있어보았자 좋은 음식이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 식생활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음식이다.
김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아이들은 김치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전래에, 우리의 풍토와 기후에 맞게 개발된 천혜의 영양이 가미된 우리의 음식을 멀리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기본적으로 밥에 된장이나 김치만으로도 균형 있는 영양관리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오래된 옛 시절도 아니건만 점점 서구화 되어가는 우리 식생활의 패턴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인정의 따뜻한 봇물을 느끼며 참으로 오랜만에 구수하고 소박한 별미의 맛을 느끼며 포만감을 푸지게 즐긴 저녁이었다.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