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 한알이 내게 보내졌답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어찌 저런아이가 내 아이가 되었는지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흑진주를 박아 놓은 듯 눈부시게 빛났고 피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뽀오얀 우유빛. 이마는 대머리가되지 않을까 걱정될정도로 시원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눈부셨습니다.
세상이 저를 위해 웃어주는 줄 착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녀석 여러여자 울리겠구만"하는 말을 들을 때 마다 행복했고 뿌듯했습니다.
그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생후 1개월되는 날 아인 입원을 했습니다. 그 후로 1년을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한달 두달 지나갈수록 아이는 야위어져가고 숱한 검사에 정말 끔찍했습니다. 아이가 6개월이 되던 어느날 병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던중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백일 됐냐고 물어보더군요.
정말이지 콱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9개월되던 어느날 저는 모진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이엠에프로 8개월째 50%삭감된채 월급을 받아오고 있었고 아인 한번에 20ml정도 밖엔 분유를 먹지 못했고 설사를 달고 살고 그나마 먹은 분유는 분수 뿜듯 토해내는지라 아이를 손에서 내려놓지를 못했습니다. 밤에도 아일 안고 앉아서 잠을 자야 했으니까요. 어쩌다 아일 놓치면 온 이불을 헤매고 다니며 토하고 설사가 밖으로 새나와 일주일에 1.2번은 꼭 이불빨래를 해야했습니다. 하물며 화장실 갈 때 조차도 아일 안고 볼일을 봐야 했으니까요 지금생각해도 그 1년을 어찌 보냈는지 기억조차없습니다. 1달에 평균 2회 병원에 입원하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병실 부족으로 인해 1인실 아니면 2인실을 써야했고 돈을 아끼기 위해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보내야 했고 어느날인가는 아이 분유살돈조차 없어 그 여위고 아픈 아이에게 주스를 먹였습니다.
돈이 없으면 밥물이라도 먹이면 되지 않았느냐고 하실 분 있겠지만 아인 절대 거부. 어쩔수 없어 혹시나 해서 온 집안을 뒤져 동전을 모으고 모아 주스를 사서 주었더니 너무 잘먹더군요. 정말 훔치고 싶었습니다. 훔쳐서라도 우리 아이 배불리 먹여주고 싶었습니다. 분유를 훔친엄마의 심정이 너무나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남편이 홀로 계신 아버님 불쌍타하여 남편이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댁에 들러 새벽밥 해드리고 반찬몇가지에 밤을 새워 뼈다귀 고와 놓고 생필품 필요한것 챙겨드리고 뭐 필요하다 하시면 두말 않고 사다드리고 명절.제사 돌보았으나 돌아오는건 니가 한게 뭐있냐? 하는 질책뿐이더이다 .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잠시 머뭇하던 아이의 병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냥 동네 의원에 가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 의사에게 아이의 병력에 대해 상세히 얘기했습니다. 아이의 증세는 더욱 더 심해가는데 의사는 감기라고만 하고 저는 불안해 죽을 거 같았습니다. 생각다 못해 그 주변에 있는 준 종합병원에 갔고 아일 진찰한 의사는 요도염같다고 당장 입원시키라고 했지만 그동안 아일 봐온 제 입장에서는 아이병의 재발쪽으로 온 마음이 향했고 서울 다니던 병원으로 갔습니다.
두 의사 모두 오진이었고 재발이었습니다. 진짜 살의를 느꼈습니다. 내가 그렇게 감기가 아닌 것 같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감기라고만 하던 그 의사 진짜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의사는 입원을 하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어디가서 빌릴곳도 없었습니다.
입원시키라는 의사의 말이 나풀나풀 거리는 먼지처럼 그렇게 흩어져가고 있을 때 저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더이상 어떻게 해볼수 없는 전 죄인이었습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병원문을 나서는데 남편이 왔습니다. 말없이 남편은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남편은 병원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이와 15개월이 넘도록 눈을 맞출수가 없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춘다는 것이 너무나 섬뜩했습니다. 저 자신을 향해 마구 칼로 찔러대는듯한 그 고통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퇴원날 남편은 아주 초췌한 모습으로 내게 왔고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6년이 지난 이날 까지 남편이 그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묻지 않습니다. 기억자체만으로도 고통이었다는것을 아니까
지금도 우리는 몹시 어렵습니다. 2년동안의 남편의 실업 그 후 3년동안의 남편의 사업실패로 인한 빚 1억 5천 이혼도 생각했지만 이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아직도 우리는 한집에 살고 있고 서로에게 상처가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앞으로 이 보다 더한 재앙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시댁과의 일은 남편이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고 저는 남편의 뒤에 숨어 있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구해 출근 시작한지 한달이 되어 갑니다. 비록 많지 않은 월급이기는 해도 저도 벌고 해서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갚아가고 있고 8년후엔 우리도 우리이름으로 된 적금통장하나쯤은 갖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크고 있으니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