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라 부를까요, 탤런트라 부를까요.’
최근 음반시장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가수 출신 연예인들의 드라마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카메오나 단역, 조연 수준이 아니라 주연급으로 대거 발탁되면서 이제는 전업 탤런트들까지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근에 데뷔한 가수치고 웬만한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한 두번 출연하지 못했다면 ‘인기 가수’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얼리의 박정아는 현재 SBS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에 주연으로 열연하고 있다. 신화의 에릭은 MBC ‘불새’에 이어 SBS ‘일요일이 좋다’의 반전드라마에 출연 중이다. S.E.S 출신의 유진도 지난 9월부터 SBS 드라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연을 맡아 탤런트 겸업에 도전했다. 그룹 샵 출신의 서지영도 2년 만의 공백을 깨고 11월부터 KBS 2TV 미니시리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연기자로 변신한다. MBC 청춘시트콤 ‘논스톱’은 그간 장나라, MC몽, 앤디·전진(신화), 이진, 윤종신 등이 출연해 가수들의 탤런트 데뷔 무대로 자리잡았다. 이밖에도 김동완·이지훈·이현우·엄정화·신성우·임창정·김창완 등이 이미 탤런트로 변신해 각 방송사의 드라마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같은 가수들의 연기자 겸업 러시에 대해 시청자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렇다할 스타 연기자가 없는 안방극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음반업계가 불황이니 어쩔수 없다’ 등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주된 이유다. 가수들도 연기력과 무관하게 그간 닦아놓은 인기와 팬클럽의 지원을 활용한다면 연기자 안착이 신인 탤런트들보다 어려울 리 없다. 실제 god의 윤계상(SBS ‘형수님은 열아홉’)과 피플크루 출신의 MC 몽(MBC ‘논스톱 3·4’), 태사자의 박준석(KBS ‘진주 목걸이’)은 가수때보다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 호평을 더 받았다.
비판과 반대도 만만찮다. 드라마 시장의 캐스팅 질서를 어지럽히고 드라마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견해가 주류다. 특히 숱한 무명시절을 거쳐온 전업 연기자들의 반발이 거센 상태다. 이들은 “몇몇 가수가 소속사의 자본과 기존의 인기를 무기로 방송의 모든 장르를 독과점하면 방송 전파가 그들의 사업수단으로 전락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런 지적은 가수의 연기자 변신 러시가 연예기획사들의 마케팅 전략과 방송사들의 안정적인 시청률 확보전략이 맞물려 불거졌다는 데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원대 오미영 교수는 “이런 현상은 기획사들이 만능 엔터테이너를 키우려고 ‘할리우드식 스타시스템’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는 데다 음반시장의 침체가 지속돼 더욱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이기현 박사는 “한마디로 스타덤(stardom)과 팬덤(fandom)의 증폭작용으로 나타나 ‘한류열풍’이 불면서 심해졌다”며 “자칫 연기자도 가수도 제대로 못하는 ‘반쪽 연예인’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모 기획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전 장르를 소화할 신인을 발굴해 키우는 추세”라며 “가수의 탤런트 겸업도 이제 관행화된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KBI 이기현 박사는 “겸업이 고착화되면 우리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며 “하루 빨리 연기자 캐스팅 제도를 가다듬고 방송사와 기획사, 연기자 단체 3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섭기자 lak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