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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창조한 맨유 ‘7번의 전설’

오징어 |2007.01.20 09:06
조회 484 |추천 0

우연이 창조한 맨유 ‘7번의 전설’




[JES 최원창] 전통은 우연이 만들기도 한다. 차범근(현 수원 삼성 감독) 하면 떠오르는 11번의 등번호. 하지만 그는 원래 고려대 시절 9번이었고 우연찮게 달게 된 11번이 모든 공격수의 선망이 됐다.

불행한 숫자라고 누구나 꺼리던 ‘4번’은 1980년대 ‘컴퓨터 링커’로 맹활약하던 조광래를 통해 영특한 수비수의 전유물이 됐다.

60~70년대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를 다투던 김정남과 김호는 베켄바워의 상징이던 ‘5번’을 두고 경쟁했지만 5번은 김정남 감독의 차지였다. 황선홍과 홍명보는 남은 번호가 없어 18번과 20번을 달았지만 이제는 서로 달고 싶어하는 영광의 넘버가 됐다.

▲맨유 ‘7번 전설’의 발원지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는 ‘7번의 전설’이 있다. 68년 맨유에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안긴 조지 베스트부터 시작해 브라이언 롭슨(현 웨스트브롬위치 감독)-에릭 칸토나-데이비드 베컴-호날두에게까지 이어졌다.

베스트는 “사실은 10번을 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달았던 7번에 더욱 애정을 느낀다”고 말했다.우연하게 시작된 7번의 전설은 ‘7번이 단지 10번을 위한 정거장이 아닌 완성형’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9번을 둔 치열한 전쟁

9번은 스트라이커의 상징이다. 97년 브라질의 호나우두(현 레알 마드리드)가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오자 칠레 출신의 사모라노는 자신의 9번을 호나우두에게 넘겨줘야 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결국 1과 8 사이에 +를 집어넣어 결국 ‘1+8’의 번호를 달았다. 이후 인터 밀란에는 터키의 스트라이커 하칸 쉬퀴르가 새 둥지를 틀었다. 그 역시 9번이었다. 그는 54번을 달며 ‘5+4=9’의 이미지로 자존심을 지켰다.

2000년 피오렌티나에서 AS 로마로 이적한 바티스투타도 자신의 고유 등번호인 9번을 달 수 없게 되자 ‘18번’을 단 적이 있었다.

유독 9번에 대한 집착이 심한 이탈리아 세리에A이지만 정작 대표팀에서는 ‘스트라이커=9번’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던 스킬라치는 19번. 크리스티안 비에리는 21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82년 스페인월드컵에 출전하면서 22명의 선수 이름의 알파벳 순서대로 등번호를 매긴 적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야 유럽식 등번호 매기기 방식을 도입했다.

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참가한 가나 대표팀의 15세 사이몬 아스도는 세 번째 GK로 등록돼 있었다. 가나는 스페인과의 준결승을 앞두고 공교롭게도 주전과 후보 GK가 모두 다치고 말았고 어쩔 수 없이 아스도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유니폼은 미처 준비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주전 GK의 유니폼 등번호 1번 옆에 매직으로 2를 그려넣어 ‘12번’을 달고 출전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탈리아는 스트라이커에게 특이한 등번호를 달게 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부상 징크스

자신의 고유 등번호를 달지 않을 경우 부상으로 이어지는 희한한 징크스도 있다.

홍명보는 와일드 카드로 뽑힌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자신의 20번 대신 14번을 달고 뛰다가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고. 2004 아테네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뽑혔던 김남일도 자신의 5번 대신 8번을 받았다가 역시 부상으로 도중 하차하는 불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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