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사회
내 나이 스물 다섯..
스물 네 해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내가 여자이기에, 특히나 한국 여성이기에 힘들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을 갖아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 스물 다섯번째 되는 해에 비로소 나는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퇴색해 버릴 내 기억을 되살려 내가 살아온 삶이 과연 올바른지 알고 싶기에 이곳을 이용해 내가 한국여자로써 해왔던 최선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물론 방문자가 있다면, 그래서 기꺼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쳐준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감사하며 새로운 지표를 새워보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나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여권 운동가 라던지 페미니스트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사상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당췌 평등을 이루자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여자가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습득시켜서 여성이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자는건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상에서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는 남자와 여자는 그지없이 평등해 보였다.
여자가 집안에서 청소, 빨래, 설겆이 등등을 한다면 남자는 여자가 들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옮긴다던지 못질을 해준다던지 하는 보기에는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의 역할앞에 충실한 모습을 보면서 평등이라고 여겼다.
남자가 군대를 가서 억울하게 생각한다면, 여자는 출산과 육아의 대부분의 짐을 지고 있기에 이 역시 평등이라고 여겼다.
이런 내가 처음으로 한국여자여서 힘들다는 생각을 한 건 직장에서였다.
어디를 가도 내가 여자여서 남자와 차별 받는 일은 눈에 보이게 명확했다.
어디든 같은 일을 해도 남자를 더 선호하는 오너들이 있었고 권위적인 남자 상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내가 받는 대우에 대해서 여자여서가 아니라 아래 사람이기 때문에 받는 대우라고 위안을 하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기를 일년..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회사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빠른 속도로 진전이 되어 사귀게 되었고, 급기야 결혼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결혼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하기에 바쁠 무렵, 우리 부서 부서장이라는 사람이 잠깐 이야기를 하자며 회의실로 오라고했다.
의아했지만 상사가 부르니 회의실로 따라 갔고, 내가 들은 얘기는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거냐는 이야기였다.
황당하기 그지 없었지만 사내 연애에 사내 결혼을 하려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요? 결혼하면 그만 둬야 하는건가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던지라 나는 원칙을 먼저 따지기로 했다.
"원래 특별한 규정은 없고 이렇게 직접 얘기하지도 않았지만 다들 결혼이 임박하면 사표를 내거나 결혼을 하고 조금 더 다니다가 사표를 냈는데, A씨는 언제까지 다닐예정인가?"
"저는 별 다른 일이 없으면 계속 다니고 싶습니다."
그런 규정이 없다고 하면 내 의견을 확실히 이야기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결혼을 하면 그만 두는걸로 생각하고 있는데..결혼식까지만 다니는건 어떻겠나?"
큰 망치로 머리를 두둘겨 맞은 기분이었다. 몹시 기분 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고를 하시는게 아니라면 계속 다니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그 때까지만 나오고 그만 나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건가..?"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해고 당하면 할 수 없는거고 확실한건 전 사직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겁니다. 원칙대로만 하겠습니다."
처음 있는 일에 너무 원칙만 운운했나 싶은 생각을 안할 수 없었지만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 그만 둬야 한다면 내년 초까지만 이라도 꼭 다니고 싶습니다. "
결혼을 하면서 혼수다 뭐다 드는 돈도 많을 뿐아니라 융자를 얻어 전세값에 돈을 보태 집을 사기로까지 해서 계약도 마쳐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실직이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연말 보너스 200%와 연초 인센티브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 편이었기 때문에 10월 말일까지 회사를 다니다가 마는 것 역시 나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내가 할 도리를 다 하였으나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우스운 것은 연애는 두 사람이 했지만 당연히 여자가 관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만 불러다가 이야기를 한 회사의 입장이었다. 신랑 될 사람은 그 비슷한 얘기 조차 듣지 않았고 그러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신랑 되실 분은 나와 함께 저녁을 거르고 간단한 소주 한 잔을 마시며 내 눈물바람을 다 들어줘야 했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면서 즐겨찾던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내 입장을 올려도 보고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신랑 때문에 회사에 꿋꿋이 남아 있는 것은 도저히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다못해 노동청에 전화를 해 상담을 해도 남자 상담원과 여자 상담원의 말이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랐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여성 상담원은
"사표는 절대 먼저 내지 마시고요, 한 달 전에 해고 예고를 했다면 해고는 가능하지만 사소한 실수나 사내 결혼 등의 이유로 사직을 권고하는 건 불법입니다. 하다못해 하시는 일 자체를 없애신다고 해도 대기 발령으로 다른 일을 줘야 하고요, 만일 그래도 해고를 통보한다면 실업구제신청을 하셔서 회사를 상대로 복직을 요구하셔야 합니다. "
라고 말했지만, 남성 상담원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으로
"그럼 인센티브 받으신 다음에 결혼을 하시죠."
"상여금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이 없습니다. 사직서를 본인 손으로 쓰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으니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회사와 잘 얘기를 하시지요."
라고 해고를 권하는 듯한 말투로 그만 둬야한다는 아무런 희망적인 느낌이 없는 이야기들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여기저기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 뭘까 알아보면서 시간이 지났다.
그 날 이후로 계속 안좋은 분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부서장과 한자리에 마주 앉게 되었다.
"어떻게, B씨랑은 얘기를 해봤는가?"
"네? 대화를 했지만 저희는 결혼을 조금 미루게 될지라도 회사는 내년 초까지 다니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
"회사에서는 이미 자네가 결혼 후엔 안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자네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것이 유독 결혼 문제는 아니네만.."
부서장은 뒷말을 흐렸다.
"제가 뭘 크게 잘못했나요..?"
"A씨는 목소리도 크고, A씨가 걸어다니면 발소리도 유독 큰 것같고.."
업무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인하여 내가 그만 둬야 한다고 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모두 주관적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는 일이기에 반박의 여지도 찾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눈물이 치솟는걸 꾸욱 참고 말을 이었다.
"저는 솔직히 결혼을 위해 빚도 조금 지었고, 상여금과 인센티브 등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회사를 조금 더 다니기 위해서 할 수 있다면 어려워도 원칙대로 할 의향도 있습니다."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음을 느낀 내가 쥐가 고양이를 무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강경하다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보도록하지"
부서장이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면 순순히 그러겠다고 수긍을 하여 사표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강경하게 이야기 하니 다른 방법을 간구하기로 한듯이 보였다.
그 때가 퇴근 시간이어서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짐을 챙겨서 퇴근을 하고 차에 올랐다.
순간 복받쳐 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황급히 따라나온 신랑을 뒤로하고 혼자서 한 시간 가량을 서럽게 울어댔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귀가를 하자 가족들도 나를 다그쳤고 가족들 조차도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울분을 터뜨리며 그 사람도 자식이 있을터인데 사람을 면전에 두고 일을 못해서도 아닌
발걸음 소리가 커서라던지 하는 걸 이유라도 대냐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성격이 매우 불같으신 아버지는 딸을 위해서 부서장을 죽이고 싶은 생각까지 드셨다니 더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싶다.
이 일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가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이 회사에 소개시켜준 지인이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리게 되었고 상황은 급속도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회사의 오너인 회장님은 이 사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으며, 월급 사장 이하의 간부들이 여자가 당연히 그만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했던 일이고 내가 잘 아는 지인께서는 회사에 조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이었으므로 부서장을 불러 이 일을 자세히 회장님이 아시면 일이 커질 것이라며 대략 이정도에서 마무리를 짓고 다음 해 초까지만이라도 다닐 수 있도록 다른 간부분들께 잘 부탁해 보라고 권하였다.
이에 일이 잘 못되었을 경우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감안한 부서장은 다시금 나를 불러 앉혀서는 회사에서 특별히 생각해서 원하는대로 다음해 초까지만 다닐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겠다고 말을했고, 지금 나는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두어달 남짓 남기고 아무런 책임감도 의욕도 없이 조용히 회사 업무에 임하고 있다.
그 일이 있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 모습이지만, 회사에서 어느정도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책임'이라는 말이 나오면 무섭우리만치 서로 회피를 하려고 드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재 무역부서에서 하고 있는 일중 통관 업부는 제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총무부 업무 처리의 지연 원인을 해결하고자 함이니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자처해서 다른 부서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우리 부서에서 해야할 책임을 느끼고 해보겠다고 말한 적이 수없이 많았으나 부서장은 그로인한 책임이 우리 부서에 따라 올까봐 두려운 마음에 이야기 해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항상 묵묵무답이었다.
이제는 내가 관두면 내 자리에 새로 올 사람이 그 책임을 질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과 설사 내 자리를 없애려던 처음 의도대로 실행한다면 남은 우리 부서 사람들이 나눠갖아야 할 내 일들이 너무도 많아서 지금은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답답하면 답답한대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 남기 힘들다.
누구의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국의 악습이 낳은 결과물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방법은 무엇일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를 않고 가야 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무릎 꿇고 물러나 다른 여성들 처럼 주부로 남을 것인지 어떻게든 이겨 내 사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을지 그 끝을 위해 이 곳에 서 있을 뿐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확신지을 수 없으나, 내가 남긴 흔적과 자취가 모여 한국 사회의 여성이 살 수 있는 길을 다 같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