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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강-6

삶의이유 |2004.12.03 08:09
조회 287 |추천 0

애증의강-6

 

저녁기차에 올랐다.

비가 온 후라서 인지 밤 공기는 차가왔다.

쓰러질듯한 지친 몸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여기서 나마저 쓰러져버리면 안되!!]

스스로 몇번이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보낸 그였는데... 가진건 하나도 없지만, 마음 많은 고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수없이 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도데체 어쩌란 말인가!]

역시 시원스런 대답은 떠 오르질 않았다.

기차가 플랫포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기차의 후미가 꾸물꾸물 따라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포기해 버려야하는걸까? 그의 부모도 포기했는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밀려왔다.

창에 머리를 기댄다.

혜영은 지난 몇일간의 일을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혜영의 눈앞에 지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자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하얀피부에 마른 체격. 곱상한 얼굴과 길게 한쪽으로 늘어뜨린 머리

언뜻보기에 3류 연예인처럼 보이기도하는 외모에..적당한 유머와 언변.

여자에게 세심한듯하면서도 은근히 과묵한 매력적인 남자.

진하지않은 은은한 담배의 내음마저도 향기로왔던 그 남자.

술에취해 비틀거리며 비를 맞고 서서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남자.

가벼운 노래로 가슴을 표현하고 그 표현과 더불어 나도 모르는 사랑을 하게만든 그 남자.

그런 남자를 만나게 해준것을 감사하며 살았었다.

여자 관계가 복잡한건 알고 있었다. 이미 희진이를 통해서 듣고 있던 터엿다.

하지만 혜영이 듣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아..........그녀는 누굴까.]

[왜 지영씬 따로 방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나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날 지영씬 나랑 같이 놀아주기로 했었다.]

 

그랬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혜영은 몹시 아팠다.

[지영씨.]

[응]

[내일은 어디 나가지 말고 나랑 같이있어줘]

[왜?]

[그냥 몸이 아파..애들 낼 시험기간이라서 보충도 해야하는데...알았지?]

[알았어.]

 

하지만 다음날의 약속은 깨지고 말았다.

[어디가려고?]

[응 그냥..]

[어제 나랑 같이 있어주기로 했자나]

[그냥 답답해서..나갔다가 올께]

[나 아프다니까...]

[......]

 

지영은 두 말없이 나가 버렸다.

신발을 신고 거침없이 나가는 지영의 뒷모습에서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약을 먹고 있던 유리잔을 던져버렸다.

산산히 부서졌다.

 

주츰...

 

하지만 지영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혜영의 눈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띵했다. 코마져 막혀버렸다. 숨쉬기가 버거움을 느꼈었었다.

[저사람 지금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이미 혜영의 눈 앞엔 그가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그날 지영은 들어오지 않았다.

9시가 지나고 10시가 넘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이제 들어오지 않는걸까?] 불안하기 시작했었다.

11시가 넘어가고 12시가 넘어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교통사고라도 당한건 아닐까?] 초조하다못해 식은땀이 온몸에 흘렀었다.

[왜 컵은 던져서....그 사람 이렇게 떠나면 어떡하지?] 또 다시 눈물을 흘리던 혜영이었다.

문밖을 나가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지나는 낯선 사람들 속에 지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거실문도 잠그지 않았고, 방문도 열어두었다.

오기만하면 와주기만 한다면...다시는 잔소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벽을 기대어 앉아있었다.

 

[따르릉...따.....]

1시...반사적으로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지영씨?]

[여보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다.

 

[여보세요? 거기 김지영씨라고 사십니까?]

[그런데요. 어디시죠?]

[아..예...여기 상대원3동 파출소 인데요....실례지만 전화받으시는 분은 김지영씨하고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저...전 ....그 사람 애인인데요?]

[아...네...]

[동거녀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네]

[잠시만요...김지영씨 바꿔드릴께요]

[.....]

 

어리둥절 했다. 파출소라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자기야?]

[응 ... 혜영씨 잘들어...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지금 나 파출소에 있거든....잠시 와줄래?]

[알았어 지금 바로 갈께...어디 파출소라고 했지?]

[상대원 3동 파출소..]

[알았어 10분 내로 갈께..기달려]

 

주섬주섬 옷을 입었었다. 어느 부분이 앞인지 또 어디에 팔을 넣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뛰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빨리 뛰어본것은 처음이었다.

숨이 차지도 않았다. 아까까지 아팠던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빽빽히 막혀있던 양쪽 코도 뚤려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별일 아닐거야...별일 아니겠지...]

 

파출소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부소장 이라는 사람이 정중하게 물어왔다.

 

[예..김지영씨라고.....]

[아..그 강도상해 용의자요?]

[네?]

 

머리가 아찔햇다.

 

[일단 앉으시죠...지금은 조사중이라 면회는 안되고요,  잠시만 앉아계세요..담당 순경이 나오면 어떻게 된건지 그 분한테 여쭤보세요]

 

목이 말라왔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파출소를 울려퍼지는것 같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출입구로 정복차림의 순경 2사람과 머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여자가 나타났다.

 

[어이 박순경. 병원에서 머래?]

[전치 3주의 다발성 두피열상이라고 하는데요..여기 진단서요,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가져온 옷입니다.]

 

누런색 서류봉투와 면 잠바 하나가 부소장의 손에 건네졌다.

 

[일단 말이야. 이건 봉투에 담도록하고, 저기 김지영 애인이라네..]

 

부서장의 턱끝이 혜영을 가리키고 있었다.

매섭게 생긴 눈초리의 박순경이 혜영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김지영하고 애인이라고요?]

[네..지금 동거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사건 내막은 이래요..]

 

박순경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저기 저여자가요...집에서 배가 고파서 빵을 사려고 나오는데 김지영이가 뒤에서 덤벼들더래요.

한손에 과도를 하나들고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돈내놔라 안그러면 넌 죽는다. 그러더래요]

 

믿을수가 없었다.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니까..과도로 머리를 내리찍었어요...무식한 새끼. 거기다가 강간까지 하려고 했나봐요. 바지를 벗기더래요. 머 피해자가 어리고하니까 돈지갑을 건내주고 바지 벗는척하고 방심한 틈을 타서 도망나와서 신고를 했고, 저희가 출동해서 잡은거구요. 보아하니 둘다 아직 어린데 저런놈 믿지 말고 정신차려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퀴벌레 한마리 잡아달라고해도 징그럽다면서 잡지못해 결국 혜영이 잡았었는데 그 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럼 인제 어떻게 되는건가요?]

[어떻게되긴 머가 어떻게 돼 이 아가씨야...당신 애인은 오늘로 인생 종친거지...정신차려...]

부서장이 혜영을 바라보며 불쌍하다는 듯이 툭툭 거렸다.

 

[저기요..그럼 지영씨를 만나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이 박순경 조사끝났나? 잠시 만나게 해줘....]

박순경이 지영을 데리고 나왔다.

아침에 나갈때 입었던 옷 그대로 였다. 아침에 나갈때 보던 그남자 그대로였다.

미동도 흐트러짐도 없이 양손에 수갑을차고,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는거 이외에는 조금도 변하지도

달라지지도 않았다. 혜영이 바라보기엔 뭐가뭔지 그 자신도 모르고 있는듯해보였다.

 

[지영씨 어떻게 된거야?

[뭐가?]

[자기가 한거 마져?]

[지금 미쳤어? 그런소리 할려면 가버려]

[알았어 조금만 참아. 내가 알아볼께]

[혜영씨..이 옆에가면 소라피아노라고 있어 거기가서 원장님 만나봐 그럼 알꺼야]

[소라피아노? 알았어]

순경들이 낚아채듯 지영을 끌어당겼다.

혜영의 눈동자가 끌려가는 지영의 등 뒤에서 떠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경황도 없었다.

 

[피해자라는 사람이 저 여자 인가요?]

혜영의 눈이 부서장과 마주앉아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네]

[순경아저씨. 저, 저여자하고 이야기 나눌수 있나요?]

[단둘이는 안되요...할말있으면 지금하세요.]

혜영은 부서장과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20살의 앳딘 여자다. 적당히 여드름을 가진 전형적인 20대 초반의 얼굴이다.

 

[저기요..아가씨..혹시 뭔가 착각하고 계신거는 아닌가요?]

[아니 이여자가 지금 무슨소리 하고 있는거야? 당신눈엔 이게 안보여요?]

[그게 아니라..뭔가 오해할 수도 있는거니. 잘 생각해보라는거죠..]

[시끄러워요. 부서장님 저 집에좀 데려다 주세요..무서워요]

 

부서장이 저리가라고 손짓을햇다.

[아가씨....내일 아침에 본서로 넘어가니까. 아침에 본서로 가세요.]

 

 한대의 경찰차가 도착했다. 여러명의 순경이 지영을 애워쌌다. 그리곤 지영은 그렇게 경찰차와함께 본서로 호송되었다. 여전히 지영은 눈길하나 주지 않았다. 혜영은 호송되어가는 지영과 함께 파출소를 빠져나왔다. 지영이 일러준 소라피아노로 발길을 돌렸다. 소라피아노는 조그마한 건물에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후 잠옷차림의 부시시한 눈을 부비며 40대 여인이 나타났다.

[김지영씨라고 아시나요?]

[네 그런데 아가씬 누구세요?]

[전 김지영씨 애인되는데요...]

40대 여인은 놀란 토끼눈을 하며 자기 앞의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일단 들어와요.]

[네]

[아니 근데 이 새벽에 무슨 일이고..아가씬 또 뭐고.....]

40대 여인은 끝말을 흐렸다.

[다른게 아니라요.............................]

혜영은 지금 까지의 상황을 하나 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영이 여기를 가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일단 잘 왔어요...나도 한번 알아볼테니...일단 돌아가요...그리고.....]

[?]

[아니에요. 나중에 이야기 하죠.]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요...지금은 그런 말 할때가 아니니까. 내일 이야기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찾아뵙도록하죠.]

혜영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걷고 있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를 1시간이 넘도록 걷고 있는거였다. 몇번째 똑같은 길을 돌고 돌고 하는 거였는지 모른다. 흡사 정신나간 아낙네처럼 머라고 중얼 거리며 걷는데...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대문은 열려있었다. 거실문도 방문도 활짝 활짝 열려있었다.

거실 옆 안쪽 구텅이에 강아지 한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혜영이 들어오자 강아지가 달려가 혜영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 오르려했다.

혜영은 허리를 숙여 강아지를 안아주었다.

그리곤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피이~~~]

기차가 정거장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대전..대전...이 열차는 이곳 대전에서 약 20분간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용무가 있으신분은......]

굵은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어둠이 역사주변네 내려있었다. 한줄로 길게 늘어선 불빛들이 오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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