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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강-18

삶의이유 |2004.12.17 11:03
조회 207 |추천 0

애증의강-17

 

7차에 거친 재판이 판결만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2시간 후...

정각 10시가 되면 법정의 문이 열릴것이고 그 문을 밀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밀려들 것이
었다.

지영은 어제 저녁부터 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혜영으로부터 편지도..면회도 없이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처음 지영이 이곳에 들어왔을때. 그를 위해눈물 흘려준 단 한사람.

그런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해하며 보낸 180여일은 태고부터 지금까지 인간이라는 존재
들이 느껴야 했을 외로움에 비견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었다.

한 잠을 잘 수 없었던 지영..

한숨과 뜬눈으로 보내어진 시간....

새벽의 미명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부터 미칠것처럼 지영의 머리를 감싸고 돌던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

기상 나팔 소리와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상들의 몸놀림.

 

[지영아~]

[네]

[너 오늘 판결이지?]

[네]

[법 먹지 말고 그냥가라.]

[네. 밥 생각도 없는걸요?]

[어제 변호사가 머라고 하던?]

지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어제 대충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서 어찌되던 큰 충격을 받지 않으리라고 다짐해둔 터
였기 때문이었다.

[야. 물총 어제 고무신 깨끗하게 닦아두었지?]

배식 반장의 말에 물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영감, 저 놈 입을 옷좀 빨아두었소?]

몇일전 새로 들어온 휜머리가 내려앉은 나이 지긋한 노인을 바라보며 배식반장이 던진 말이
었다.

[네]

아들뻘과 같은 배식반장의 말에 군소리하나 없는 깎듯한 존칭이었다.

사실 이런곳에 나이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누가 몇개의 별..흔히 말하는 전과를 가지고 있는지...누가 얼마나 험악하고 추악한
그래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 또 누가 얼마나 많은 복역을 하게 될런지 그게 그들
의 관심사였고, 그런 이야기가 긴 시간을 쪼개는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틈틈이 새로 신입이 영입되면 그들은 늘상 그들의 삶 속에 존재햇던 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부인이나 애인..혹은 불륜 이런것들이 언제나 귀를 즐겁게 했고, 가끔은 그런 이야기들이 마
치 국가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한 구국청년들의 무용담인듯 침이 튀게 너스레를 떠는 이들
도 있었던 거였다.

지영은 물총과 영감이 내어준 신발과 옷을 입었다.

하얀 고무신과 옷은 새것처럼 보였다. 옷위로 4자리 숫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오늘따라 유난히 커보이는 수번.

 

방문이 열렸다.

모두들 자리이에서 일어나 판결을 받으러 떠나는 지영앞에 섰다.

[재판 잘 받고와라.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기죽지 말고...]

방장의 충고를 선두로..

[재판 잘받어]

[좋은 결과 있기를 빈다.]

..........................

[잘 받고 오세요.]

까지 제 각기 한마디씩을 건넸다.

[네]

지영은 짧은 한마디를 남긴체 서서히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오늘 판결이지?]

[네.]

방문을 나선 지영에게 담당 교도관도 한 마디했다.

[판결 잘 받고 오늘 나가라...]

[그럴수만 있으면 좋겟어요]

교도관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다

[나가라.....]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지영에게 어디 있었으랴...

지영은 교도관에게 처음으로 목례를 했다.

그리곤 따라나선 경교대를 따라 아래층으로...복도로...운동장으로 옮겨갔다.

운동장에 모인 수인은 모두 13명이었다.

몇번 재판을 받으로 가는 사이사이 한 두번씩은 보아왓던 얼굴이라 서로 가볍게 목례를 했
다.

살인범에서 단순 절도에 이르기까지 제 각각의 죄명으로 모인 사람들이 오늘 모두 판결선고
를 받는 날이었던 것이다.

저마다 지영처럼 유난히 하얀 고무신과 깨끗하게 세탁되어진 옷들을 입고있었다.

그들도 왼쪽 가슴에 부자연스러운 듯 4자리 수번이 자리하고 있었다.

빨간색...노란색....파란색...흰색의...............

빨간 수번의 3199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3명씩 4사람이 한데 묶였다.

 

[빨간수번 3199] 지영은 3199의 눈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3199도 지영을 바라보았다. 둘은 한동안 눈싸움이라도 하듯 바라만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
다.

지영이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제서야 3199도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영은 교도관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3199에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고 했다.

 어린 두 자녀를 위해 밤낮으로 일을하고 조금씩 모아서 작은 집하나를 마련한 소위 나무랄
데 없는 그런 충실한 가장이었다고 했다. 일하는 것 뿐이 몰라서...그래서 그의 와이프와 대
화할 시간도 없었는지....예정된 출장기간보다 일찍 돌아온 그는 와이프와 함께 자신의 침대
에서 잠을 자던 남자와 자신의 와이프를 칼로 난자해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교도관들조차 그런 상황이었다면 자신도 그랬을 거라며 동정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이었다.

사형이 예상되는 사람에게만 붙여지는 빨간색 수번........

언뜻보기에도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지영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도시 길가에 줄을 지어있었다.

가을..겨울..그리고 봄...

[그래. 가을이었어...늦은가을...그런데 지금은 봄.]

지영의 머리속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많은 차들이 도로를 가득메웠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비켜서는 차들.

꼭 20분..

차가 많던 적던 지영을 실은 호송차는 언제나 20분이었다.

몇번의 조사와 재판을 받을때마다 항상 20분정도의 시간에 어김없이 검찰청사로 들어선 호
송차.

어쩌면 지영은 오늘 이 차를 마지막으로 긴 두려움의 시간에서 벋어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지하 복도를 따라 줄을지어 법원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말이없다.

교도관들조차 말을 아끼고 있었다.

오늘같이 판결이 있는 날은 교도관들도 조심스러워 했었다.

평소 재판받을때와는 사뭇다른 분위기였다.

지영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왁자한 소리가 문을 넘어 들려왔다.

사람들이 법정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었다.

[전원기립] 법원 정리의 말이 들려온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온 가을 들녁처럼 법정안이 조용해졌다.

문뒤 대기석에 있는 피고인들의 눈빛이 서로를 바라본다.

한사람의 눈과 마주치고 또 한사람과 마주치고.....

 

[3199]

법정안에서 3199를 호명했다.

.........................................

1분이 흘렀다.

5분이 흘렀다.

10분이 되었을까.....

법정과 대기석을 갈라놓았던 문이 열렸다.

3199는 말이 없었다. 눈물이 흐르는지, 수갑을 채운 두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어떻게 됬어?]

교도관 하나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3199를 담당하는 교도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더 이상 말은 없었다.

예상된 결과였다. 사형이었다.

아까보다 더한 침묵이 대기석을 휘감았다.

여기 저기서 침넘어가는 소리가 꼴깍거렸다.

 

[2940] 또다시 호명되는 번호...그리고 10분....그리고 눈물...

[3717] ....10분.....눈물....

불려지는 번호와 어김없이 10분...그리곤 눈물을 흘리며 더런 한숨을 쉬며 들어오는 사람들.

교도관들도 말이없고. 수인들도 말이 없었다.

 

[3133] 지영의 수번이었다.

지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리는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법정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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