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곳엔 처음 글을 올립니다.
동갑, 서울 처녀, 부산 머스마,
어렵싸리 양가 부모님 허락 하에 많은이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했읍니다.
처가(서울) 근처에 신방을 차리고 둘다 열심히 살았읍니다.
첫 애기을 낳고, 저의 친 동생이 일순간에 사고로 하늘 나라에 가고
우리는 부산 본가 근처로 이사을 왓읍니다.
남 부럽지 않은 회사에 다니면서 둘째 애기도 낳고,
IMF 때 저는 회사 인원 조정에서 자발 적으로 나와서
회사을 창립했읍니다.
처음엔 진짜 힘들게 시작 했지만 날로 회사가 번창 하여서
직원이 10명이 되었읍니다.
사장으로서 모든 근면, 성실한 모습만 보였기에 젊은 나이에
신망이 두터웠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모임에서 여자을 알았읍니다.
그 여자는 애들 엄마 보다 더 아름답고 우와 하고 배려가 깊었읍니다.
내 자신 스스로가 비교을 하게 되었지요.
애엄마는 전혀 모르고 나는 그여자랑 사이가 더 깊어 져만 갔읍니다.
잦은 서울 출장 외국 출장에 핑계꺼리는 충분 하였지요.
그러는데 회사는 아주 더 잘 되어 갔읍니다.
하나의 나에 대한 미신적인 합리화 였읍니다.(그 여자로 인해서 일(?)이
더 잘 되어가고 잘 풀린다)-란 식의 합리화
작년 5월과 8월 화물연대 총파업 아래 저희 회사는
불가피하게 부도아닌 부도을 내야만 했읍니다.
나의 정신적 심리는 극해 달하여서
애엄마 때문에 일이 이지경까지 되었다고 생각 했읍니다
그래서 얼마의 돈을 가지고
그 여자랑 외국으로 도피을 하였지요. (지금 생각 하면 진짜 못난 생각이였음)
외국에 가서 둘만의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제가 생각한 꿈과 이상은 아니였읍니다.
모든게 잘못 되어 간다고 생각 한 쯤에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말았지요
그래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 와 보니...
저희 가정은 엄청난 시련과 곤욕을 치르고 있었읍니다.
어떻게 수습을 하기 조차 힘든 상황이였읍니다
지금 전 부산에 애들과 애엄마는 서울(처가집에 지하방에 얻쳐삶)에 있읍니다
부부간에 엄청난 앙금이 있읍니다.
용서을 구하고 있지만 어렸읍니다.
아직 우리 가족을 건재 할만한 일도 못 하고 있읍니다
재기을 하고 싶어도 막연 합니다
이제 가족들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자신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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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왔습니다...
내 남편한테 이 글을 읽어라 하고 냉장고에 커다랗게 뽑아서 붙여놓고 왔습니다
잘해주던 못해주던... 열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 라는 말이 괜히 생긴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