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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강-21

삶의이유 |2004.12.20 13:34
조회 209 |추천 0

애증의강-21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연거퍼 술만 들이키는 혜영을 규현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왜? 무슨일 있었어?]

[아니요. 그냥요.]

[술 그만 마셔...어제도 많이 마셨는데...술하고 웬수진 사람도 아니고....]

[왜요..좋자나요. 술마시면 아무생각 하지 않아도되고....취하라고 마시는 술인데 취해야죠]

[그렇긴한데..생각해보면 이선생 첨부터 학원에 와서 거의 술마시지 않은 날이 없자나.]

[그랬던가요?]

[한동안 안마시나 했더니 요며칠 또 계속 술이네..]

[규현씨. 날 사랑하나요? 피하지 말고 대답해봐요]

[음...]

규현은 곤혹스러웠다.

사실 규현도 혜영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혜영을 처음 알게되었을때..그녀의 가슴속엔 다른 남자가 너무깊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사랑도 쟁취하는거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었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구치소라는 곳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고난 이후엔 더 조심스러웠었다.

또 혜영이 어떤이유로 과외를 그만두었는지, 그녀가 왜 저렇게 많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었는지 알고있었기에 선뜻 사랑이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싫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따금 술에취해 사랑하냐고 물어올때면 내심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을때도 종종 있었으나 은근히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또 그녀가 물어오고 있는 거였다.

[날 사랑하냐고 물었어요. 아무말이나 좋으니까 대답해봐요]

[모르겟어]

[하하하..그쵸? 모르겠죠?]

[.....]

[저도 그래요. 제가 원장님을 사랑하는건지 어떤건지..저도 잘 모르겟어요]

한잔의 술이 거침없이 혜영의 목으로 넘어갔다.

[원장님 덕분에 그래도 많이 추스리고 살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해요.]

[고맙기는 뭘...]

[그래도 난 여자에요. 그래서인지 기왕이면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그런말 듣고 싶은거였거든요]

[사실....]

[아니요. 아무말도 하지마요. 들어서 뭐 하겟어요.]

또 한잔의 술이 부어졌다.

[나랑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규현도 술잔가득 술을 따랐다.

[오늘 무슨 일 있는거지?]

[무슨일이라뇨? 무슨일이 있었으면 좋겟는데요?]

[아니 그런뜻이 아니고, 다른 때하고는 사뭇 달라보여서...]

혜영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사람...나의 사람...오늘 판결있었어요.]

[그랬구나 어떻게 되었어?]

[3년6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데요.]

[재판에 가지 않앗자나.]

[갈 수가 없었어요. 잊어야하는데........]

[이제 어떡하려고?]

[어떡하냐구요? 뭘요? 저를요? 아님 그사람과 나와의 관계요?]

[그것도 그렇고...앞으로 너의 생활 ..뭐 그런거 있자나.]

[모르겟어요. 될데로 되라죠. 술이나주세요]

규현이 잔 가득 술을 따라주었다.

숨도 쉬지않는듯 혜영은 벌컥이며 술을 들이켰다.

[저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데로, 잊혀지면 잊혀지는데로 그렇게 살꺼에요.]

[음....]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겠죠. 그래도 안되면 생각하면 되구요.]

[그런데 눈물은 왜 흘리는거야? 별 의미없는 사람처럼 이야기하면서?]

그랬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 순간도 혜영의 눈물은 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장님은 그냥 나랑 같이있어주면 되요.]

[왜?]

[싫으시면 지금 가세요.]

[뭘 세삼스럽게 같이있고 말고 해]

[나가요 그럼]

[어디갈껀데?]

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술도 많이 마셧는데 어디가서 쉬고가자.]

[어디요?]

규현은 혜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평상시와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모란.

호텔을 능가하는 모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

형형색색의 네온이 밤 거리를 수놓으며, 지나는 연인들을 쉴새없이 손짓하며 부르는 곳이었다.

지금 규현은 혜영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거였다.

규현은 가장 세련된 불빛으로 장식한 그랜드를 바라본다.

제법 커다란 규모의 모텔이었다.

모텔입구에 침실의 사진도 호텔의 그것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규현은 조심스럽게 혜영을 바라보았다.

이미 풀려버린 눈동자...

입에 물린 담배를 바닥에 내팽게치고 발로 짖이겨 버렸다.

 

[여기요. 방 하나 주세요.]

[203호로 올라가세요.]

규현은 열쇠를 받아들고 혜영의 손을 끌어당겼다.

모텔 안은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늑한 실내와 은은한 조명은 누가 들어서도 쉽사리 매료될만한 것이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시트며, 샤워부스...

혜영은 방안을 빙 둘러보았다.

그러나 웬지모를 씁쓸한 미소가 입안가득 뿜어져 나옴이 느껴졌다.

[먼저 샤워해.]

규현은 아무 거리낌없이 턱으로 샤워부스를 가르켰다.

[.....]

[내가 먼저 할까? 아니면 같이 할래?]

[아니요. 전 그냥 가야겠어요. 제가 뭔가 잘못 생각했었나봐요]

[왜그래 여기까지 따라와서는...]

[제가 하고 싶은건 SEX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됬어요. 어쨋든 오늘은 아니에요.....저 먼저 갈께요.주무시고 오세요]

혜영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로 모텔을 빠져나왔다.

규현 또한 그렇게 가는 혜영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항상 힘이 들었다.

특히나 오늘처럼 술이 많이 들어간 날은 더욱 숨이 가빴다.

닫힌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언제나 그랬듯 화장대 앞에 앉았다.

혜영은 조심스럽게 서랍 속 지영의 사진을 꺼내어 들었다.

지영의 사진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지영씨. 이제 나 놓아줘. 나 이제 자기에게 아무것도 해줄것이 없어]

사진속의 주인공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혜영의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사랑햇던 사람. 언제부터인지 내 가슴에 너무 깊숙하게 자리메김
을 해버린 사람. 그래서 지금 나를 너무 괴롭히고 있는 이 사람...]

혜영은 사진을 그녀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보고싶다...보고싶어....]

 

싸늘한 새벽 공기에 혜영은 눈을 떳다.

[집이구나 !]

부시시한 두 눈을 비비려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사진을 발견했다.

혜영은 손 위의 사진을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서랍속에 깊이 넣었다.

창문을 열었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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