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화를 내?
효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스완은 왜 여기 와 있는거야?
-몇번이나 말해야해? 그냥 들렀다니까!
-그냥!
레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냥이라구? 이 시간에?
-왜 그래, 당신 정말. 날 의심하는 것 같잖아.
-누가 당신 의심한데? 나도 남자야. 남자는 남자가 더 잘알아. 나 스완 못 믿겠어!
레오는 말을 내뱉고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스완씨는 그냥 친구야.
-그냥 친구? 당신이 생각하기엔 그렇겠지.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생각하겠지! 당연한 거 아냐?
-뭐가 당연해!
레오는 화가 나 못 참겠다는 듯, 핸들을 두어번 때렸다. 효은은 레오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봤다.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슨 일인데?
-미란다가.. 천 장이 넘는 자료를 다 분석해서 모레까지 내래요. 아직 절반도 못했어. 그것 때문에 깜박
잊고 있었어. 정말이야. 미안해.
효은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레오는 담배를 창 밖으로 휙 던지고 창문을 올렸다.
-화내서 미안해.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 중요한 자리였고 우리 가족들도 다들 당신 기다렸어.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고의는 아니었어.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나 일하러 갈게요. 정말 미안해, 오늘일은.
-괜찮아. 전화할게.
효은이 차에서 내리자 레오는 급출발했다. 다시 신호등과 차선을 무시하고 음악회장에 도착한 레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란다를 찾았다.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미란다 어딨어?
-사장님!
요한센이 그를 끌고 조용한 휴게실로 갔다.
-이러시면 어쩌자구요? 지금 얼마나 중요한 자린지 아시잖아요?
레오는 화가나 못 참겠다는 듯 발을 쿵 소리가 나게 굴렀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다 어린애가 되죠. 그렇지만 사장님은 지금만큼은 그로스베너 그룹을 대표하고 계십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요한센! 오늘 내 기분, 내 가족들의 기대, 다 망쳐버린 게 미란다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나신 거겠죠! 하지만, 사장님! 여기는 지금 음악회장입니다. 눈이
많아요.
-담배나 한대 주게.
요한센이 담배를 한대 건넸다.
-저도 한대 피우겠습니다.
-그래.
둘은 조용히 담배만 피웠다. 레오의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미란다가 천장이 넘는 자료를 효은이에게 맡겼대. 모레까지 해 놓으라고. 그러고 저렇게 촌스러운 드레스를 걸치고 여기 나타난거야.
-그랬군요.
요한센은 조용히 맞장구만 쳤다.
-왜 아무말도 않는거지?
-제가 무슨 말 한다고 해서 사장님 마음이 풀어지시겠습니까? 혼자 삭히십시오. 참고 삭히는 법도 배우셔야지요.
-자네는 정말..
레오는 이럴때마다 요한센이 자신의 형 같다고 느꼈다. 레오는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났다.
-들어가지.
요한센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음악회장은 만찬회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
적대는 가운데 기자들도 열심히 사진기를 눌러대고 있었다.
-자기.
미란다였다. 미란다는 웃음을 띄며 레오의 팔을 붙잡았다.
-손 대지마.
레오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눅이 든 미란다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왜 그래?
-니가 잘 알잖아.
-아, 그 애가 여기 안왔다구 그러는 거야?
레오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어디서 다른 남자라도 만나는 지 어떻게 알아?
순간, 짝-하는 소리가 만찬회장에 울렸다. 레오가 보기좋게 미란다의 뺨을 때린 것이다. 요한센이 급하
게 달려왔다.
-사장님!
-이 뻔뻔한! 니가 꾸민 일이라는 거 모를 줄 알아? 요한센, 이 여자 당장 끌어내! 당장! 앞으로는 우리
그룹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윈즈버그 가문은 초대하지마! 절대로!
레오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요한센에게 소리쳤다. 레오가 너무 화가났다는 것을 안 요한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그로스베너 공작 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띄며 다가왔다.
-에드워드. 이게 무슨 짓이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레오는 공작부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음악회장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미란다는 눈물이 글
썽이는 눈을 크게 뜨고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 절대로!
-아가씨, 가시죠.
요한센이 미란다 옆에서 속삭였다. 미란다는 요한센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음악
회장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죄송합니다, 사장님께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십니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할테니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센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레오는 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요한센을 멋쩍게 쳐다봤다.
-미안해.
레오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의 이미지가 추락했어요. 이게 무슨 경웁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 오늘은 너무 기분이 안좋았어. 알잖나, 자네도.
-기분에 따라서 행동하는 분이셨습니까?
-미안하네. 정말로.
레오는 요한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요한센은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아무데서나 고개 숙이는 버릇, 좋지 않습니다.
-정말 미안하네.
-됐습니다.
-음악회는 잘 끝났나?
-그럭저럭 끝났습니다. 아니, 솔직히 대 성황이었죠. 그렇지만 내일 신문에는 사장님이 윈즈버그 양 따귀를 때린 것만 실리겠죠.
레오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도 내가 이해가 되질 않아. 왜 이러는 지.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아가씨를 너무 갖으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아가씨를 소유하려고만 하시니 그러는 겁니다. 자유롭게
놔두세요.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레오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나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 오늘도 그래. 그래, 일이 있을 거다. 일이 있어서 못 오는거다. 인정해 줘야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안더구만.
레오는 창가로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내가 이해가 안돼.
-아가씨를 사랑하시는군요.
요한센이 조용히 말했다.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더 괴롭네. 사실, 아까 화를 내 버렸어. 화를 내면 안되는데. 그녀를 믿는데.
레오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알 수 없는 긴장감, 그리고 분노, 혹은 괴로움, 알 수 없는 마음이 힘들기만 하다. 요한센이 다가와 레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은 그만 댁으로 가셔서 쉬십시오.
-그래야겠어.
레오는 벗어놓은 수트를 집어 들었다.
차를 운전하던 레오는 핸들을 돌려 효은의 집을 향했다. 효은의 집은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시동을 끈 레오는 담배를 한대 입에 물었다. 어째, 연애를 시작한 뒤에는 담배만 느는군. 레오는 피식 웃으며 밖을 바라봤다. 순간, 레오는 담배를 떨어뜨릴 뻔 했다. 효은이었다. 그녀는 다정하게 스완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너무나 친근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레오는 가서 둘을 갈라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효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자기?
-아, 나 집 앞이에요.
-그래?
-네. 지금 집에 들어가려구요.
전화를 받으며 효은은 스완에게 인사를 했다. 스완은 웃으며 차에 올랐다.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
-음, 아니요.
-그래?
레오는 차 시트에 몸을 기댔다.
-음악회는 잘 끝났어요?
-그럼. 빨리 집에 들어가.
-알았어요.
효은은 아파트 문을 열렀다. 전화를 끊고 조금 뒤, 효은의 아파트 불이 켜졌다. 레오는 전화를 조수석
에 던지고는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레오는 화가 나서 핸들은 힘께 주먹으
로 때렸다.
다음주 예고![]()
깊어져만 가는 오해. 레오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날마다 효은의 짐앞에 찾아가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는 레오.
그는 우울한 기분으로 들어간 집에서 뜻밖에도 미란다를 만난다.
노골적인 미란다의 유혹에 흔들리는 레오..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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