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걱정되는데 화재현장 출동에 야간당직 하라니…”
일부는 하혈에 유산아픔까지… 홈피 비난글 빗발
경기도 A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대원 김명자(가명ㆍ32) 씨는 아직도 유산의 아픔을 씻지 못하고 있다. 작년 5월 임신 5주차에 계속되는 야근과 현장출동으로 하혈을 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끝내 뱃속 아이를 살려내지 못했다.
현장 구급요원인 김씨는 “내가 빠지면 대체할 사람이 없어 빼달라는 말은 엄두도 못 냈다”며 “여성 소방관에게는 건강한 출산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다”고 말했다.
아내가 충남 B소방서에서 근무한다는 유창훈(가명ㆍ37) 씨도 밤샘 근무를 하는 임신 5개월의 아내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2003년 첫아이를 가졌을 때도 계속된 야근으로 하혈하고 입원까지 했었다. 유씨는 “아내가 근무하는 소방서에만 임신한 소방관이 3명이나 된다”며 “남자도 힘들다는 화재 진압에 배가 남산만 한 임산부를 투입하는 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씨는 소방방재청장과 면담까지 신청해 놓은 상태다.
25일 헤럴드경제의 취재 결과, 소방방재청과 전국 소방서에 근무하는 1300여명의 여성 대원은 임신 중에도 화재 진압과 구급 처치 등 남성도 하기 힘든 현장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야간 당직근무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1주일에 3, 4회씩 24시간 근무에다 유독가스가 가득한 화재 현장과 유혈이 낭자한 사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임신 중인 한 여성 대원은 “뱃속 아이에게 치명적인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대기하고 있으면 저절로 긴장이 되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근로기준법 제68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산부 근로자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에 해당하는 야근 근무를 시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화재, 구급 등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신 여성도 근무에서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을 무시한 처사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지만, 소방당국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방청 홈페이지의 실명 게시판에는 ‘화재 현장에서 임산부를 봤다. 어떻게 새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를 사지로 내몰 수 있나”며 준법과 시정을 요구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황경숙 씨는 “경찰도 3교대로 근무하는데 임신까지 한 여성에게 2교대 근무는 너무 하다”고 말했다. 게시판은 스스로 여성 소방대원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임신 중 격무로 인한 유산, 하혈 등의 고통을 주고받는 글로 도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소방청은 소방 인력이 크게 부족한 현실에서 2교대가 불가피한 데다 구급 전문인력의 경우 원칙적으로 순환근무 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일선 소방서의 소방대원들은 소방청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소속이어서 관리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소방청 관계자는 “임신한 요원이 야간 근무를 서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수행 지침을 매년 일선 소방서에 내려보내고 있다”면서도 “이행 여부에 대한 감독권이 지자체에 있어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진택ㆍ김태경 기자(tae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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