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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78. 달팽이일까? 고동일까?

무늬만여우... |2005.01.13 09:04
조회 2,062 |추천 0

양봉하는 이들에게 한창 수확철에 비가 온다는 것은 수확을 못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던 산타페주는 비옥한 토지에 알맞게 비도 오지만 대체적으로 건조한 지대이다.
바로 옆 주인 산티아고 델 에스떼로가 사막지대인걸 보면 우리가 살던 산타페주의 쎄레스란 마을은 지극히 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그 동네가 갑자기 때 아니게 우기가 다가온 것이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루시아 아줌마가 비가 올꺼니깐 빨래를 널지 말라고 한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한점 안보이는데 이 햇볕 쨍쨍한 날에 비가 온다니...
신통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어케 그걸 알 수 있을까?
궁금한 걸 못 참는 난 바로 가서 다시 물어봤다.

한국에선 뼈마디가 쑤시고 몸이 찌부드드한걸로 비가 온다는걸 아는데 넌 어케 아냐.
루시아는 같이 마당가로 나가자며 날 끌고 나가더니 저 지평선을 보라고한다.

지평선에는 검은 구름띠가 허리띠처럼 둘러져있었다.
맑은 하늘에 검은 구름띠는 멋지게까지 보였다.
그 검은 구름띠 위에는 푸른 얼룩무늬 구름이 펼쳐져 있었고 빨갛고 노란 구름들이 햇빛에 비춰서 이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정도의 구름띠는 정확하게 3시간만에 여기에 이른다고 한다. 비도 많이 올 꺼 같댄다.

두 시간 정도 되니까 마당에서 갑자기 후두둑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콩만한 얼음덩어리가 마당에 떨어지고 있었다.

우박이었다. 와~ 신기해라. 이렇게 큰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다니.
어떤 얼음은 도토리 만하고 또 밤만한 것도 가끔 떨어졌다.
윽. 저거 맞으면 머리에 혹이 아니라 빵꾸나기 쉽상이지.

곧이어 바로 커다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훤한 대낮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저녁으로 바뀌었다.
아버님과 랑은 비를 피하며 차를 몰고와서 집 앞에 세우고 얼른 뛰어 들어오셨다.
길에서 우박을 만났는데 차 지붕에서 우박맞는 소리가 꼭 총소리처럼 났댄다.

마당을 뒤덥고 있던 포도나무 넝굴 사이로 비는 마구 쏟아져 금방 시내를 이루었다.

물은 흘러서 갈대밭 쪽으로 흘러갔다.

아들 녀석은 비가 온다고 좋아서 나가 놀고 싶어했다.
우린 유리창을 통해 비를 바라봤다. 참 시원하게도 쏟아지는 비다.
금방 그칠 것 같던 소낙비는 그치는 기색없이 계속 내렸다.

우리가 살던 산타페 지역은 땅이 찰흙처럼 끈덕진데 비가 많이 오면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래서 비가 오면 양봉하는 사람들은 차를 끌고 다니지 못해서 쉬어야한다. 길에서 비라도 만나면 그 비포장도로를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한다.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녁을 일찌감치 해먹고 약간 누그러진 빗줄기를 보다가 아들 녀석과 우산을 받쳐들고 밖으로 나갔다. 윤희는 깡총거리며 좋아했다. 랑도 우산을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지나 다니지 않는 거리엔 어른 주먹만한 돌멩이들이 널려져 있었다.
윤희가 하나를 조준해서 발로 찼다.
어디에서 이렇게 돌멩이가 굴러왔지?
이 산타페 지역 땅의 특성이 또 돌멩이나 자갈 보기가 힘들다는 거다.

헉.
돌멩이들이 움직인다.

"어~ 돌멩이들이 움직여!"

우린 앉아서 돌멩이들을 봤더니 생긴게 참 희한한 고동이었다.
고동인지 달팽인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것들은 끈적한 침을 뱉어내며 길을 점령해 기어다니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수 백 개는 되어보인다.
야~ 희한하다.
저많은 갯고동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숨어있었던거야?

주위 사방에 시내가 없는데 말야.
그렇다고 물이 괴어져 있는 곳도 하나 없다.
이 동네는 호수도, 강도, 시냇물도 없는 그냥 평평한 평야지대인데...
논도 하나없이 그냥 밭만 있는 농장들만 있다.

개천을 보려면 30분이상 차타고 가야 겨우 하나 나온다는데 난 그 쪽으론 쫓아가보지 않아서 구경도 못해봤다.
그 갯고동은 그 개천에 무지 많댄다. 양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산댄다.

난 바닷고동을 생각하며 그거 개천서 잡아다 된장찌개 끓여먹음 맛있겠단 생각을 했다.

이 거리에 널려있는 갯고동도 잡아다 찌개를 한 번 끓여볼까?

집에 가서 그릇을 가져다 저거 줏어다 먹자고 랑에게 제안했다.
랑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거나 잡아먹음 안된다고 싫댄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저렇게 많은 고동들이 숨어있을만한 장소는 화장실의 분비물을 모아두는 정화조가 집집마다 있는데 아무래도 거기에서 살다가 비가와서 이렇게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단다.

잉.
그럼 저 많은 갯고동들이 정화조 벽에 바퀴벌레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살고 있는걸까?

랑 말에 일리가 있어보였다.
끓여놓으면 맛은 있어 보이는구만...사는 데가 그렇다면 못먹지. 찝찝해서 어케 먹나.

고동 껍질은 딱딱했다.
나도 한 번 발로 차봤다.
으헉~ 멀리도 가네. ㅎㅎ
재밌다.

우린 우산을 옆에 두고 누가 멀리차나 내기를 했다.

갯고동들은 여기저기 풀숲으로 우리들의 발길질을 받아 날라댕겼다.
아들 녀석이 제일 신나게 발로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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