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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선택

장현숙 |2005.01.29 00:36
조회 4,492 |추천 0

지율스님의 뜻은 ‘초록의 공명’

 

 

 

△ 지난 9월 28일 지율스님과 함께 찍은 셀프 카메라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취재수첩] 지율스님과 함께 한 7개월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

 

프로메테우스는 2004년 5월 18일 창간했다. 창간 이래 ‘지율스님, 천성산대책위, 도롱뇽의 친구들’의 모든 활동을 집중 취재해왔다. 2004년 7월부터 현재까지 반년 이상 그 취재를 담당했던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의 취재후기를 소개한다.<편집자>

지율스님이 ‘58+’단식을 시작한지 94일이 되었습니다. 날짜를 하루하루 세는 것이 마치 죽음을 세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처음 지율스님을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날 지율스님은 도롱뇽 책갈피를 만들면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날 때, 지율스님은 그 책갈피 하나를 쥐어주셨습니다. 기사를 잘 써달라는 부탁인지, 도롱뇽의 친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율스님과 천성산을 마주한 것이 지난해 7월 1일. 이틀동안 정성스레 쓴 기사는 그 다음날 게재되었습니다. 지율스님 단식은 계속되었고, 도롱뇽의 친구들을 곳곳에서 100만명 도롱뇽 소송인단을 모집했습니다.

‘도롱뇽의 친구들’은 그 뜨거웠던 여름날 모든 토요일들을 ‘도롱뇽의 날’ 행사를 하느라 보냈습니다. 매일 같이 만나서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지를.

단식이 50일이 넘자, 지율스님 곁에는 취재진들이 늘었고 인터뷰를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냥 근처 취재나갔다가 지율스님 얼굴이라도 보고 오노라면 참 마음이 좋았습니다. 지율스님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2004년 10월 지율스님이 시화호로 답사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행했을 때 찍은 사진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단식 57일째 청와대 문재인 수석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문 수석이 언제 올지 모르니 일찍 지율스님이 단식하고 있는 청와대 앞으로 갔습니다. 지율스님은 다른 분과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저를 불러 같이 차 마시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평온해 보이는 얼굴로 말이죠.

그날 저는 지율스님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그렇게 많은 것을 처음 봤습니다. 도롱뇽의 친구들이 행사를 해도 잘 보이지 않던 기자들은 문재인 수석의 말 한마디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 순간 지율스님이 말하던 ‘초록의 공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단식 중단’에 대해서만 촉각을 귀기울였습니다.

지율스님,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

재판결과 때까지 공사 중단을 하고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합의문은 작성되었고, 지율스님의 58일 단식은 끝났습니다. 지율스님은 단식을 끝내면서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단식을 하다보면 주변에 콩나물국 집이 있었는데, 그 냄새가 그렇게 좋았다고 하면서요.

지율스님은 58일동안 참 많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환경문제가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전국순례를 하고, 추워지기 전에 천성산에 아이들에게 자연을 교육할 수 있는 체험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플래쉬 영상을 만들고 싶어하셨더랬죠.

강서희, 지율스님의 선생님이 되다

△ 지난해 8월 25일 당시 청와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이 지율스님을 방문한 모습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저는 우연하게 지율스님의 플래쉬 강좌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몇 번의 수업을 통해 지율스님은 원하시는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너무나도 좋아하셨습니다. 가끔 모르는 기능이 있으면 전화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나중 결과물을 보면서 지율스님이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율스님과 함께 전국순례를 떠났던 적도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시화호에 갔었는데, 갯벌을 걸으면서 지율스님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율스님은 몇 십년 전 오이도에서 살면서 조개를 캐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화호 때문에 죽은 조개들을 보면서 속상해 했습니다.

전국순례를 하던 중간 지율스님은 급하게 ‘58+’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재검토를 하지 않고 협의했던 당사자들 몰래 보고서를 작성했고, 재판부는 공동조사의 약속을 저버리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약속은 또 다시 파기되었고, 그 약속을 지키라면서 단식을 시작한 것이었죠.

부산에서 단식하신 터라 만날 수는 없어 종종 안부전화를 했습니다. 지율스님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더랬죠. 환경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 부산에서 올라온 지율스님은 한 땀 한 땀 도롱뇽을 수놓았습니다.

서울로 온 지율스님은 한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습니다. 대신 ‘초록의 공명’ CD를 제작하는데 혼신을 다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연말에 만난 지율스님은 CD를 건네주며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라 이야기했습니다. 플래쉬를 가르친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단식을 하면서도 매일같이 컴퓨터와 씨름하는 모습이 상상됐기 때문입니다.

2004년 12월 31일, 지율스님은 거리에 나섰습니다. 본인의 힘으로 직접 CD를 나눠주고 싶어했기 때문이었죠. 그날 캠페인이 끝나고, 한 음식점에서 지율스님과 도롱뇽의 친구들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최후의 만찬 같다”

사람들은 ‘지율스님 단식 빨리 풀고, 음식을 드셔야죠’라고 권했지만, 스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꼭 “최후의 만찬 같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율스님은 청와대 앞 거처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17일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지율스님을 찾아갔을 때 취재하기 위해서 동행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단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율스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율스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벌컥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단식 85일째였는데, 지율스님은 “단식 100일이 되면 나오겠습니다”라고 말했더랬지요.

그동안 저는 지율스님에게 “단식 중단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차례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율스님은 그 때마다 웃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21일 거처를 옮겼습니다. 모든 신문에서 ‘잠적’이라는 표현을 쓰며 스님의 행방을 좇았습니다. 거처를 옮긴 사실을 알면서도 기사를 쓰지 못했습니다. 쓸 수 없었습니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힘들어했던 것을 잘 알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첫 기사를 쓴지 벌써 7개월이 되어갑니다. 지율스님을 만난 것이 아마 100여 차례 넘을 것입니다. 지율스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초록의 공명’입니다. 고속철도로 20분 더 빨리가기 위해 천성산을 뚫는 것이 아닌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 지난 해 8월 청와대 앞에서 단식중이던 지율스님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지율스님이 단식한지 94일째가 되었습니다. 7개월전 지율스님과 천성산, 도롱뇽에 관련된 기사를 쓰는 것이 저에게 있어 행복한 일이었는데, 단식이 길어지면서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니겠냐고 하지만, 저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지율스님이 말하는 ‘초록의 공명’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강서희 기자 (heeging@prometheus.co.kr)

                              체리 http://blog.naver.com/rosebud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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