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하릴없이 클럽에 나와 있었다. 진서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하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선 자신이 이해도지 않고 있었다. 호경에게 전화를 해놓고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클럽 안을 가로 질로 진서의 방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잠겨 있지 않았다. 컴퓨터 옆에 길가 싸여진 보자기가 세워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그것을 들어내 보자기를 풀어보았다. 조심스럽게 목검의 만져보다 손잡이를 잡아보았다. 동준이 문득 전날 밤이 떠올라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그 사람한테서 물러서요.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그 말을 내뱉던 진서를 떠올려 동준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완전한 내 편을 가진 듯한 착각.
그래서 그랬던가?
작은 너에게 기대서 쉬고 싶다는 이런 기분.....
동준이 목검을 들고 나와 거울 앞에서 휘둘러보았다. TV에서 봤던 것처럼 품새를 잡아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휘둘러 보다 들어서는 호경을 보아 멋쩍게 거두었다.
“어쭈....폼이 재대로 나오는데....요즘 검도 배우냐?
“아냐. 일하는 애...”
“여자애라며. 걔가 해?”
“하는 정도가 아니라..........태수 손목 아작 냈다.”
동준의 말에 호경이 놀라 되물었다.
“응......그게 무슨 소리야?”
“술 떡 되서 칼 들고 왔었다.”
“뭐.....내 그 놈 언젠가는 일 낼 줄 알았다...그래 별일은 없었냐?”
동준이 피식 거리며 무슨 생각을 한 듯 웃음을 흘리며 말을 했다.
“그러니까...그 별일이라는 게.....”
호경이 답답해 동준을 말을 중간에 받아가 남은 말을 대신 했다.
“그래서.....그 놈이 칼 들고 와서 난동핀 걸 그 아이가 이 목검으로 아작 냈다는 말이니 지금?”
“뭐...정리하면 그렇게 되는 거네.”
“야.....정재보다 더 신기한 물건 하나 들어 왔네. 여기 또.”
동준이 다시 진서를 떠올려 빙긋이 웃었다. 이유 없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 자꾸 그렇게 동준을 웃게 하고 있었다.
“그래. 신기하다. 신기하고 재밌는 아이다.”
오랫동안 그를 보아와 동준의 히죽거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던지 호경이 그 얼굴을 유심히 보다 말을 했다.
“너.......이상하다.”
“나도......요즘 내가 이상 해다고 생각중이다.”
“뭐야......그 말은?”
동준이 다시 목검을 휘둘러 보다 혼잣말처럼 흘렸다.
- 이걸 휘두르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섬칫했어. 몇 번이나 봤던 그 꿈....
왜 그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너 요즘도 꿈 꾸냐?
“전처럼 그렇게 자주는 아닌데....요즘도 가끔은 보게 돼.”
“너 잡념 너무 많아서 그래. 머리 좀 비워라.”
호경이 잠시 말을 쉬다 무거운 그것을 꺼내놓았다. 동준에게 드리워진 지윤의 그림자를 알아 할 수만 있다면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끝까지 혼자 해결해보려 버텨낸 일주일 동안 은행과의 사정마저 나빠져 결국 다른 방법이 없고서야 동준에게 들고 왔다.
“동준아!......지윤씨가 장난치는 거 같다.”
금방 얼굴빛이 변한 동준이 굳어진 얼굴로 호경을 보았다.
“무슨 일이야?”
“아직 기간도 안됀 어음들이 한 번에 몰려들어 오고 있다.”
“......얼마나 됐는데...?”
“일주일 넘었다....며칠 못 버틸 것 같은데.....”
“왜.....빨리 말하지 않았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려고 했는데......”
동준이 호경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끝까지 자신에게 말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썼을 것이다.
“그 사람이 장난치고 있는 거면 니가 무슨 수를 써도 못 막는다.”
“미안하다....”
호경을 보내고 곧바로 별장으로 한사장을 찾아간 동준이 정원에서 지윤과 마주섰다. 동준이 찾아온 이유를 환히 짐작하고 있는 그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건데요?”
“나한테 함부로 한 대가야.”
“호경이 일 잘못되면.....당신....정말 용서 못해요.”
“그러니까 나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동준이 싸늘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지윤을 뒤로 하고 별장으로 들어섰다. 창 너머로 동준과 지윤을 지켜보고 있던 한필중의 얼굴에 묘한 경련이 일었다. 한필중이 들어서는 동준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지윤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어쩐 일이냐? 니가 여기까지 찾아오고.”
“경도건설 어음....알고 계시죠?”
“그쪽은 지윤이가 맞아서 하는 일이다. 내가 관여 않는 거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사모님께서 손장난 하시고 계십니다.”
“니가......뭘 섭섭하게 한 모양이구나.”
“막아 주십시오.”
“내 권한 밖의 일이다. 그렇게 급하면 니가 직접 지윤이한테 부탁해봐라.”
“사장님!”
“요즘 지윤이 많이 힘들어하던데.....한번 씩 바람도 좀 쏘여주고 하고 싶어 하는 거 함께 좀 해주지.....니가 너무 무심 했던가 아니냐?”
“클럽에 일이 생겨 좀 바빴습니다.”
“....내 사고가 저 얘 삶까지 함께 말라 들어가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내가 나도 용서하기 싫다. 하지만 하얗게 말라가는 저 아일 그냥 둘 수가 없으니 더 이상 내 신경 쓰이게 하지 마라.”
동준이 한필중의 말을 불편하게 듣고 있다 무겁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 눈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 있었다.
“싫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제가 싫습니다.”
“너한테 그런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유일하게 너를 허락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차라리 그냥 보내십시오. 곁에 두고 이렇게 하시는 거 모두에게 못할 일입니다.”
“건방떨지 마라. 지윤이가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인형이 너일 뿐이다. 싫증나 버릴때까지 내가 놀게 해줄거다. 너한테 다른 권한 없으니 앞으로 함부로 입 열지 마라.”
한필중이 별장을 빠져 나가고 동준이 초저녁부터 술잔을 붙잡고 있었다. 급하게 마셔 돼 희뿌여진 눈앞으로 한 사람의 얼굴이 와 닿았다.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온 심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호경의 미안해하던 얼굴이 어른거려 동준이 남은 술을 심장에 들이부었다.
몇 시간 채 꼼짝도 않고 술잔만 붙잡고 앉은 동준의 주위를 맴돌던 지윤이 엷은 슬랙스 차림으로 그 앞에 마주앉았다.
“내가 말했지. 내가 놓기 전에는 너 나한테서 못 빠져나간다고 ....나한테 함부로 하지말라는 그 말.....너 너무 쉽게 들었어.”
“장난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요.”
“니가 가장 약한 부분이 뭔지....이제 나도 알아.”
“.........”
“제주도 가자.”
동준이 말없이 지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으로 인해 뒤틀려가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돼요.”
“왜? 아직도 나한테 ....자존심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한테 그런 거 없다는 거 몰라요? 있었다면.....개도 물어가지 않을 그 자존심 한줌이라도 남아 있었다면......당신이나 한사장...지금까지 보고 있지도 않을 거 몰라요?”
지윤이 동준의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 싸늘한 눈빛 뒤로 한사람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망이 꿈틀되고 있었다. 그를 괴롭힐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 앞에 가져다 놓고 싶은 집착이 그 영혼을 중독시키고 있었다.
“공손히.....예의 갖춰서 부탁해. 자존심 한줌도 남아있지 않다면 더 이상 비굴해 질것도 없을텐데....니 입으로 직접 말해. 나한테 부탁한다고....”
지윤의 시선이 동준의 심장을 찔러버릴 듯 날카롭게 날아들고 있었다. 지윤이 내려놓은 잔을 끌어와 녹아버린 얼음위에 양주를 가득 채워 동준이 한번에 그것을 비워 내렸다. 굳어진 시선이 술병에 고정된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다 냉냉하고 메마른 말이 흘러나왔다.
“호경이 건드리지 말아요.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하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지윤의 가슴이 아프게 떨려왔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그는 영혼을 모두 죽인 껍질이었다. 처음엔 자신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한사장 때문일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를 알아가면서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자신을 통해서라면 더 많은 것을 움켜쥘 수 있는 그였다. 그런데도 그것마저 거부하면서까지 마음을 주지 않는 그가 용서할 수 없이 미워졌고 또 그만큼 갈망하고 있었다. 그 간절함이 깊어질수록 그를 흔들고 싶은 충동이 더 해져 지윤이 자신도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
“다음에 가요. 남아 있는 일도 있고....클럽도 혼자 맡겨 둘 순 없어요.”
“그 아이한테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거 아냐?”
“다른 얘기 끌어다 붙이지 말아요.”
“나가자. 여기 답답하다.”
별장을 빠져나온 동준이 목적지 없이 달리고 있었다. 굳이 물으려 하지도 않은 채 앞으로 뻗어진 도로위에 차를 올려놓았다.
“너 오피스텔 가자.”
“.......그냥...호텔가요.?
“오피스텔 옮기고 한 번도 안 갔잖아. 가보고 싶어. 차 돌려.”
동준이 대답 없이 그대로 핸들을 잡고 있었다.
“제주도 가는 거 미룰 테니까 오피스텔가자.”
동준의 오피스텔에 들어선 지윤이 거실의 물건들과 침실을 둘러보고 거실에 앉았다. 금방 어둠이 깔려 검은 명암이 베란다 밖으로 몰려들었다. 동준이 얼음을 꺼내 술을 준비하는 동안 지윤이 자연스럽게 걸쳤던 원피스를 훌훌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아홉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시골에서 올라와 클럽에 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마음이 급해지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또 다시 시작된 빗줄기가 동준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거실 탁자로 술과 안주를 가져다 놓은 동준이 침실로 들어가 땀이 베인 윗옷을 벗어냈다. 드레스 룸을 열고 편한 셔츠를 들어내려 할 때 지윤이 그의 등 뒤로 다가섰다. 축축하게 물기가 남은 몸이 동준의 등에 와 닿았다.
자신을 감아오는 그 뜨거운 육체를 동준이 그대로 끌어않았다. 가슴이 없다 해도 이미 남자를 달구고 있는 그 본능을 더 이상 밀어낼 수 없었다. 동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쥔 지윤이 거칠게 동준의 입술을 받았다. 포개진 입술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은 지윤의 혀가 금방이라도 그를 마셔버릴 듯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두르고 있던 타올이 스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동준이 알몸의 지윤의 침대에 눠웠다.
뜨겁게 몸이 달아오른 지윤이 동준의 허리버클을 풀어내고 그에게서 남자의 본능을 불러내고 있었다. 그가 마음을 주지 않는다 해도 이미 자신에게 들어왔던 동준의 채취를 한순간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의미를 두지 않고 배출해 버리는 남자의 본능에 지나지 않다 해도 지윤의 몸에 각인된 그것이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박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고 하고 있었다.
자신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동준을 느끼면서 지윤이 온몸을 전율하며 신음을 토해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아니고서는 자신이 여자임을 확인 할 수 없었고 그 채취에 취하면 거짓말처럼 미움과 원망들이 사라졌다. 서로를 삼켜버릴 듯한 거친 호흡이 땀으로 젖은 온몸을 휘감아 지윤이 그에게서 몸을 때내고도 한동안 호흡을 조절하지 못했다.
동준이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젖히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깨와 옆구리에 상처 자국이 있었으나 땀이 젖어 구릿빛으로 빛나는 나신이 어디 한곳 흠잡을 때 없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지윤이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입을 열었다.
“사랑해....!!”
“........”
동준이 담배를 반쯤 태웠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그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어 조금은 의아해하며 바지만 챙겨 입고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누구 십니.....”
문밖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확인한 동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호경이 반바지에 민팔셔츠 바람으로 서 있었고 그 뒤에 머리가 축축이 젖은 진서가 서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어떻게 둘이 같이.....”
“야...전화를 왜 그렇게 안 받냐. 진서씨 시골 다녀오면서 열쇠 안가지고 와서 클럽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밖에서 이러고 있었다는데.....”
호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윤이 안방에서 나왔다. 동준의 셔츠와 반바지를 헐렁하게 걸치고 현관 앞의 세 사람에게도 다가왔다. 호경이 하던 말을 멈추고 놀라 엉겹결에 인사를 하고 동준의 시선을 맞추었다.
“어.....안녕하세요...지윤씨 와 있었네요”
“들어오세요. 왜 문밖에서 그러고 계세요.....그 당돌한 아가씨도 왔네.”
호경과 진서가 얼른 들어서지 못하고 있자 얼굴이 굳어있던 동준이 메마르게 말을 건넸다.
“그래. 들어와라.”
동준이 한 번도 진서와 눈을 맞추지 않고 있었다. 당혹스러워 하며 진서를 보지 못하고 있는 동준의 모습이 지윤에게 그대로 읽히고 있었다. 불편하게 거실로 들어선 호경과 진서가 소파에 앉자 지윤이 안주인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을 맞았다.
“이 시간에 어떻게 두 사람이 여길 왔어요?”
동준이 방으로 들어가 셔츠를 입고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호경이 그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거야....”
“내가 묻고 싶은 거다.”
“너 연락이 안 되서 이층 누나가 나한테 연락했더라. 진서씨 몇 시간 째 이집 찾아 혼자 해맨 모양이던데...여기 지리가 낯설어서 결국 못 찾고 다시 레스토랑에 갔었던 모양이더라.”
동준이 소파에 앉아있는 진서를 돌아보았다. 마주앉은 지윤의 시선을 애써 외면 한 채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그 얼굴이 동준의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 지윤이 커피를 끓이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와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하지 말아요. 내가 할게요.”
“그래. 그럼 난 들어가서 좀 씻어야 갰다.”
지윤이 거실에 앉은 진서를 흘낏 한번 본 후 욕실로 들어갔다. 거실에 혼자 남겨진 진서가 동준에게로 다가왔다. 집에 들어서 처음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가볼게요. 열쇠 주세요.”
호경이 불편한 그 자리를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 진서의 말에 곁살을 붙였다.
“어....내가 태워줄게요. 나도 가볼게...얘기는 내일 하자.”
“...그래....그래라.”
동준이 무슨 말을 하려다 말을 삼켰다. 종일토록 붙잡고 있던 생각들이 결국 다시 가슴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아니에요. 택시타고 가면 되요.”
동준이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자신조차 혼란스러워 하며 퉁명스럽게 진서에게 말을 건넸다.
“타고가....또 길 잃고 해매지 말고.”
진서가 아무런 말없이 현관문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차라리 차갑고 냉냉한 한마디라도 내뱉길 바랬다. 그러나 그 무심함이 동준에게 아무런 의문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돌아나가던 진서가 욕실에서 나오는 지윤과 마주섰다.
“왜 벌써 가려고....같이 술이라도 한잔 하지.”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진서에게 지윤이 비아냥거리듯 말을 뱉었다.
“아..참...그때 그랬었나...불편한 사람과는 자리 안 한다고...”
자신의 말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현관문을 나서는 진서를 보고 있던 지윤이 불쾌한 목소리를 그대로 들어내며 동준을 돌아봤다.
“뭐야...왜 저렇게 건방지고 재 멋대로야...쟤?”
호경이 진서를 따라 나가며 지윤에게 불편한 인사를 건넸다.
“지윤씨 그럼 우린 가볼게요.”
“다음에...같이 술 한 잔 해요.”
“예. 그렇게 해요.”
두 사람이 돌아가고 동준이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그 침울함이 지윤의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러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듯 했다.
“왜.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니?”
“나......못 데려다 줄 것 같은데...”
지윤이 좋지 않은 예감을 하면서도 동준의 굳어있는 감정에 더 이상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그에게 끝까지 캐물어 두려운 말을 듣게 될 것이 지윤을 두렵게 하고 있었다. 진서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동준의 시선 속에서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이의 떨림을 보았었다. 그 낯설음이 지윤의 심장을 서늘하게 하고 있었다.
지윤이 돌아가고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신 동준이 창을 내려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취해버린 정신 속에서도 한 가지 생각이 가득 차 도저히 잠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몸부림을 치다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오피스텔을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클럽에 도착해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철문을 두들기다 인기척이 없자 진서의 이름을 부러 대며 새벽 속에 빠져있던 건물을 깨웠다. 잠시 후 안쪽에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동준이 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손에 목검을 든 진서가 놀라지도 않은 표정으로 동준을 보고 서 있었다.
“아직 안 잤었니?”
“지금 3시 20분인데....새벽에만 미팅을 하네요....우린.”
“아까....말야...”
“나....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
사무실로 들어선 두 사람이 잠시 말없이 서먹하게 앉아 있었다.
“커피.......한잔 마실래요?”
“그래.”
“술 많이 마신 것 같은데....나한테 할 말 있어 왔어요?”
“모르겠다. 이상하네. 니가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으니....내가 왜 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
말없이 커피를 타던 진서가 동준의 흐릿한 시선을 맞받았다. 아무런 동요가 없는 침착한 표정 속에 동준의 흔들림을 가라앉히는 편한 웃음이 스며 있었다.
“내가 궁금해 하지 않는 게 이상하면....그래서 할 말 못하는 거며....바꿀게요. 궁금해요. 그 여자 거기 있던 것도 궁금하고 또....당신이 여기 온 것도 궁금하고...나한테 할 말도 궁금해요. 그러니 해봐요.”
“너.....지금 나 놀리니.”
“.........”
“나 어떤 놈인 거 뻔히 알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런 얼굴로 보는 거....”
동준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들어내고 있었다. 진서를 보면서 자꾸 불편해지는 그 마음이 싫어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있었다.
“차라리 싫은 거 들어내고 구제불능 나쁜 놈이라고 그렇게 말이라도 하던지...”
“내가 그렇게 하면...그 마음이 좀 편해지나요?”
동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진서를 보고 있었다. 선명하게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면서도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오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자신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그 편한 얼굴이 도리어 자신의 감정을 우습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관두자.”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요. 그거 알아서 지금 이렇게 화나고 나한테 미안한 거 아닌가?”
“너....도대체....”
“계속....투정부리고 열 낼 거면.....나 들어가 잘 거예요.”
동준이 멍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자신에게 투정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진서가 너무도 생뚱맞고 어이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에 남아있던 불편했던 감정들을 밀어내 주었다.
“투정부린다고 했니 지금.”
“커피 마시고 가요. 4시 넘었어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툭하고 내뱉는 진서의 말에 동준이 힘이 빠져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불편했던 긴장을 놓아서인지 한꺼번에 몰려오는 술기운에 그 하루의 피곤이 함께 더해지고 있었다.
“나 그냥 여기서 자야겠다. 잠깐만 있다 너 들어가서 자라.”
진서가 빙긋이 웃으며 동준을 보았다. 초점이 흔들리는 시선 속으로 그 부드러운 미소가 와 닿았다.
- 너 왜 그런 얼굴로 나를 보는 거니...??
왜 뭐든 다 받아 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건지...
도리어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그 시선이 불편하면서도 놓고 싶지 않다.
내 거친 감정을 삽시간에 무너뜨리고 있는 그게 도대체 뭔지...??
“지금....작업 거는 거예요?”
“작업 걸기엔 그 차림 너무 난해한거 아닌가?”
“....이제 그런 말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데....효력 떨어진 거 아직 모르는 모양이네.”
목이 널어진 반팔 셔츠에 허리를 질끈 묶은 품이 큰 바지가 헐렁하게 그 몸에 걸쳐져 있었다. 저녁에 비를 맞은 채 그대로 마른 머리가 평소보다 한층 더 삐줏거리며 솟아 있었다. 동준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다 탁자위에 놓인 목검에 시선을 주었다.
“지금까지 잠 안자고 저거 가지고 놀았니?”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가지고 노는 거 아니에요. 맘먹으며 상당히 위험한 무기도 되는건데..”
동준이 피식 웃었다. 술기운이 번지면서 계속 그렇게 웃음이 세어나고 있었다.
“그래...그건 인정하지. 아마 그 자식 손목 한동안 고생 좀 하지 싶다.”
진서가 얼핏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불 같다 드릴게요.”
“됐어. 그냥 둬.”
“그럼...주무세요.”
진서가 문 쪽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동준이 다급히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서 자신을 보는 진서에게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서야....!!”
“.........”
“......가지마라. 잠깐만......잠깐만 그냥 여기 있어.......가지마........”
동준이 그 말끝을 흘리며 스르르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았다. 말없이 사무실을 나온 진서가 자신의 방으로 와 얇은 홑이불을 꺼내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작게 코를 골며 금방 깊은 잠속에 빠져 버린 듯 소파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가져온 이불을 그 위로 펴덥어 주던 진서가 조용히 그 앞에 마주앉아 잠든 동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 당신한테 화가 나.
그런데도 화를 낼 수가 없어.
다른 사람 불편한거 다 참기 싫은데.....
당신에게만은 그러고 싶지가 않아.
나한테 미안해하는 그 마음도 싫어.
내 앞에서만은 아이처럼 웃고 불편한 어떤 것도 느끼지 마.
한줌 바람처럼 자유롭게 흘러.....
쏟아지는 햇살만큼 눈부시게 웃어.....
그게...당신이었어!!
가고 나면 오지 않을 사람처럼 무정하구나.
서운함조차 내보일 수 없는 내 무력함이 얼마나 싫은지아느냐.
벗이라 하나 찾아오는 너를 반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지치는 구나.
좋은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모자란 모양이다.
귀한 사람 곁에 두어 내 세상이 달라진 듯 마음을 채우고 나니.
이리 또 다른 욕심이 키를 세우는 구나.
너무 긴 무심함에 내가 서운한 모양이다.
내 세월의 한 끝을 너와 했을 뿐인데
혼자 앉은 이 집이 너무도 낯설어
자꾸 문 앞을 서성이게 되는구나
- 비익조 중 종현의 그리움-
주말의 끝에 앉아 못올린 소설을 몇줄 정리해 봅니다. 응큼한 물고기 오랜만에 좀 질펀한 베드씬을 한번 올려봤습니다...예와 범절이 깍뜻한 물고기를 알고계시던 님들 놀라실라...가끔 야한 상상의 세계로 써핑도 하지요..물고기(@..@)..음..밝히자면 사실 야헌거..즐겨라 상상하지요...(부끄럽다..후후)
출근해 월요일 아침에 보시는 님들도 있을 터인데....이 뭐꼬....하실라^^
월요병 두려워 마시고 가는 시간 널널히 보내시고...
월요일 아침 꿈틀거리는 정렬로 시작하소서...
그 정렬이라 함은 방향 털면 다른곳에 쓰이는 것도 아시지여...에헤라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