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반대가 끌리는 이유 (3)그녀가 본 그 사람

瓚禧 |2005.02.18 21:05
조회 1,727 |추천 0

   

반대가 끌리는 이유

 

 

 


(3)그녀가 본 그 사람




“왜 이렇게 늦게 다니는 거니?”



채련의 엄마인 희숙이 소파에서 일어나 채련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



“우신 오빠랑 데이트 한다고 했잖아요.”

“너 좀 앉아봐라.”



희숙의 말에 채련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희숙은 채련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딸이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자리에 나간건지 알 수 없었다.



“너 정말 그 우신이 계속 만날 거니?”

“그럼요!”



우신의 어머니인 한경과 희숙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얼마 전 한경의 방문에 한경이 채련을 보고 우신과의 선 자리를 제안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친구지간이지만 솔직히 기분이 좀 나빴던 희숙이었다. 우신의 사회적 지위나 그 모든 것들이 채련보다는 나은 편이었지만, 자신에게는 금쪽같은 외동딸이었다. 이렇게 팔리듯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대놓고 거절하는 것 보다는 채련이 직접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채련에게 넘겼던 희숙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거절할줄 알았던 채련이 흔쾌히 한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니?”
“엄마 예전에 어머님 네랑 이웃사촌이었잖아요.”

“어머님이라니!”

“어차피 결혼 할 건데요. 뭘.”



희숙은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철없는 것을 봤나…….



“근데 근처에 살았던 거랑 무슨 상관이니? 넌 어려서 기억도 잘 못할 텐데.”

“아니요! 나 기억나요. 우신오빠가 놀이터에 있던 나한테 알사탕 준 것도 기억이 나는 걸요?”




사실 채련의 입장에서도 한경의 제안은 뜻밖이었다. 자신의 나이 이제 19살이고, 고 3인 지금의 위치에서 선 자리는 당치도 않았다. 그런 채련이 한경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다른 곳에 있었다. 한경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이다. 한경의 말에 의하면 우신오빠는 많이 변했다고 했다. 내정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렇게 잘 웃고 이야기도 잘하던 오빠의 상처를 자신이 보듬어 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새로 이사와 친구들 하나 없이 외톨이였던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오빠였다. 그런 오빠가 그렇게 냉정한 사람으로 변했다니, 그런 오빠의 상처를 감싸주고 싶었다. 어렸을 적 채련에게 우신은 단 하나의 남자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우신과 결혼해야지 다짐하고 다짐했던 채련이었다. 그래서 우신에게 다가갔던 채련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는 많이 변해있었고, 더군다나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사실 우신오빠 그때부터 좋아했었어요."

"채련아. 사랑과 좋아함과는 다른 거잖니. 알만한 애가 왜 그러니. “

“우신오빠랑 결혼 까지 갈지 못 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우신 오빠 곁에 내가 있고 싶어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서 잘 할게요.”


희숙은 철부지지만 당찬 채련을 믿었다. 자신의 딸이지만 자신도 가끔 놀랠 킬만큼 똑똑하고 현명한 아이었다. 하지만 가슴 한쪽에 쌓인 불안감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온 채련은 교복을 벗어놓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일지도 몰랐다. 엄마의 말처럼 너무 자신감만 앞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틀린 결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신오빠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채련은 불안감 속에서도 확신이 있었다. 변해버린 그 사람 내면에 옛날의 성격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다음날 학교에 간 채련에게 짝인 유현이 다가왔다.



“어제 데이트 잘 했어?”

“응. 그럭저럭.”



책상위에 책가방을 내려놓는 채련의 옆에 의자를 꺼내 앉고는 말했다.



“너도 참 별나다. 첫 남자가 10살도 넘게 차이 나는 아저씨라니.”

“정확히 14살이지.”

“진짜 별종이야. 바로 교문만 나서도 앞에 있는 대건고 남자애들이 쌔고 쌨는데, 도대체 노땅 아저씨가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넌 모를 거야. 그 사람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또 나왔다. 선생님 같은 말투.”



유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채련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모르는 게 있음 나한테 물어봐. 공부는 네가 선수인지 몰라도, 연애는 내가 선수니깐 말이야.”

“알았어.”

“근데 그 아저씨는 아직도 네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응. 전혀 모르던걸?”

“어쨌든 잘해봐.”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유현을 향해 채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과 후 채련은 우신의 오피스텔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전화번호조차도 몰랐다. 채련은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중얼거리면 그의 집으로 향했다. 남자에게 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던 자신이 이렇게 쉽사리 그를 향해 마음을 열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를 안다는 사실은 숨길 생각이었다. 그가 서서히 자신을 인식할 때 까지, 그에게 비밀로 해야지 다짐하는 그녀였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그를 그의 오피스텔이 있는 층으로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채련은 굳게 닫혀있는 우신의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이렇게 닫혀있는 그의 마음속으로 자신이 들어갈 날이 있으리라. 채련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었다. 고3인 그녀로써 공부에 소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낮은 구둣발 자국 소리가 텅 비었던 복도를 울렸다.



“아저씨다.”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채련은 그의 발소리를 구별해 내는 자신이 신기했다. 애써 기억해야지 한 것도 아니었는데, 채련의 예상대로 우신이었다. 우신은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 앉아있는 채련을 보고는 서버렸다. 채련이 그를 보며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일찍 오시네요?”

“항상 늦는 건 아니야.”

“그래요?”
“무슨 일이지? 분명 연락하고 오라고 했을 텐데?”



채련이 자신의 집 앞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그였다. 오늘도 빈 복도를 돌아 그의 집 앞에 있는 채련을 보았을 때 화보다는 반가움이 앞서는 우신이었다. 그런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 싫어 애써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채련은 자신이 무뚝뚝하던 말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맹목적인 호감을 내보이는 여자였다. 그런 호감은 없다고 생각하는 우신의 생각을 바꾸어 놓고 있는 여자였다. 채련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신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쳤다. 우신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채련이 말했다.



“이렇게 앉아서 누구 기다려 본적 있어요?”

“아니.”

“해봐요.”



같이 덩달아 앉기엔 무리수가 있었다. 같이 털썩 주저앉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더군다나 오늘 입고 온 옷은 어제 세탁소에서 찾은지라 더럽힐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며 방긋 웃는 채련을 보니 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신은 조심스레 몸을 굽혀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좋아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쿡쿡. 확 잔뜩 난 고양이 같아요.”

“고양이?”

“네! 털을 잔뜩 세우고 가르릉 거리는 고양이 같아요!”



채련의 표현에 우신은 자신도 모르게 쿡 하고 웃어버렸다. 당돌한 여자였다. 자신을 향해 여태껏 그 누구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런 우신을 향해 채련이 이어폰 한쪽을 넘겼다.



“들어봐요.”

“이런 부류의 노래 난 좋아하지 않아.”

“그건 편력이라고요! 한번 들어봐요. 의외로 좋을지도 모르잖아요?”



우신은 이어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시끌벅적한 댄스곡을 생각했던 우신이었지만, 노래는 예상외로 잔잔한 발라드였다.



“왁스 노래예요. 왁스가 누군지 모르죠? 그건 몰라도 되요! 궁금하면 네이버 지식 검색을 하던 지요. 근데 이 노래 요즘 참 좋더라고요. 욕하지 마요 예요. 제목이......”



종알종알 말 많은 여자였다. 하지만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노래도, 텅 빈 복도에 털썩 주저앉아 벽의 냉기를 느끼는 일도, 옆에 앉은 여자의 쫑알거림도 왠지 좋았다.



“매사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호감 적인가?”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그렇지요.”

“난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야.”

“아니요!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좋은 사람. 내가 증명해 보이고 말거예요. 아저씨 나쁘다는 사람 있으면 내가 가서 증명해주고 올꺼예요. 아저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말이예요.”



채련의 기세가 마치 자신의 자식을 보호하려고 발톱을 내미는 사자 같았다. 어머니인 한경에게서 조차 느끼지 못했던 맹목적인 사랑을 지금 옆에 앉은 철부지 꼬마 계집아이에게 느끼려 하고 있었다. 조금씩 우신도 채련에게 마음을 열려 하고 있었다. 한참 노래를 듣고 있는데 우신이 입을 열었다.


“근데 무슨 일로 날 기다린 거지?”

“아! 까먹을 뻔 했다.”




채련은 정말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허둥지둥 교복 마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우신에게 내밀었다.



“전화번호요! 전화하려고 했는데 번호를 모르네요?”



채련의 말에 우신은 거절치 않고 자신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곤 채련을 향해 내밀었다. 채련은 빠른 속도로 핸드폰에 글자를 입력시켰다.




“아저씨!”



채련의 부름에 우신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순간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후레시가 터졌다.




“뭐하는 짓이야!”

“화내지 마요! 사진 한 장 찍은 거니깐. 이렇게 해서 저장시켜 놓음 아저씨가 저한테 전화할 때 마다 아저씨 얼굴을 볼 수 있단 말이예요.”




종알종알 설명을 하면서도 기가 잔뜩 죽은 얼굴로 말했다. 이런 감정 표현을 온몸으로 폴폴 풍기는 계집아이에게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우신은 어이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 작은 꼬마아가씨에게 점점 흥미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음악이 하나 다 돌아가자, 채련이 가방에 책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다음주 토요일이 제 생일이에요. 며칠동안 못 올지도 몰라요! 토요일 날 올게요! 선물 주셔야 해요!”



그러면서 뒤도 안돌아 보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채련의 발자국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시끄럽게 울렸다. 그 뒷모습이 마치 12시가지나 도망가는 신데렐라 같이 보여 우신은 빙그레 웃었다.

 

 

--------------------------------------------------------------------------

 

내일 못 올릴꺼 같아서 오늘 2편 올려요. 좋은 밤 되세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