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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시간을 지나

양영미 |2005.02.20 20:57
조회 142 |추천 0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신문을 보며 수많은 이력서를 내고 찾은 첫 번째 직장은 영어학습지 영어를 하는 일이였지요.

처음 하는 일이라 뭐든지 배우고 열심히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퇴근 후에도 열심히 일 했답니다.

3개월가량 지나서 나의 적성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쉽게 관두기가 쉽지 않더군요.

어느 날 아빠 친구 분께서 소개해주신다는 화장품 회사의 연구실 쪽으로 이력서를 너 보라고 하시더군요. 꼭 붙게 해주신다는 말만 믿고 과감히 사표를 내었지요.

그 다음날 바로 이력서를 들고 가서 제출한 후 기다려도 연락이 없더군요.

당연히 떨어졌지요.

그래서 전 백수가 되었고 여기저기 또 알아보게 되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적성이 안 맞아 그만 두었다면 좀 떳떳했을 텐데  남의 말만 믿고 사표를 던지는 것은 무모하다는 걸  그 후로 알았답니다.

두 번째 직장도 이력서를 내고해서 수산화나트륨을 제조하는 회사에 화학물 관리사와 식품첨가물 관리사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취직을 해서 집에서도 별로 안 멀고 해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공장과 사무실이 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공장 직원들과 사무실 직원들과 자주 볼 수 있었고 저는 그곳의 유독물 관리사와 식품관리사로 일하면서 사무직까지 병행을 했지요  사무실에는 사장님이 계시지만 실제 운영하시는 분은 아들이신 젊은 이사님이 운영하시고 밑으로 부장님과 과장님 2분 그리고 경리일을 하시는 대리님과 저를 포함한 여직원 3명이 한 사무실에서 일을 했지요

제가 2년여 동안 일을 하다가 경리일을 하시는 대리님이 그만 둔다고 했을 때에 그나마 대리님이 있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는데 그만 두신다고 해서 나도 같이 사표를 내었지요.

잘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 두기까지는 회사 경영을 맛 아서 하시는 이사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말이지 그만 두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리님이 없는 회사를 나닐려니 엄두가 안 나더군요.

이사님이 젊어서 그런지 매사에 나이가 많은 생산직 직원이나 사무실 근무하는 분들에게  너무 예의가 없으시고 정이라고는 10원도 없으시죠.  회식한번 한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예전에 사장님이 직접 경영을 하실 때에는 오손 도손 했다고들 하는데요.

직원들 복리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혹 10원 이라도 더 준 것이 있다면 끝까지 찾아내서 찾아오는 정이라고는 정말이지 없는 분입니다.

한번은 생산직 직원이 일을 하다 트럭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는데 병원에 입원하고 한 달 후에 왔을 때에도 병문안을 가보지도 않고 하물면 급여도 산재 보험에서 나온다고 일한 날짜까지만 계산해서 급여를 주더군요. 더 심한 것은 다 낫지도 않은 그분이 일을 잘 못한다고 일부러 심한 일을 강제로 시켜서 퇴사를 시키더군요.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이사님님 이라 더 이상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더군요.

이뿐만 아니라 회사에 경비를 지출할 때에 자신의 집에서 쓴 외식이나 전기료까지 회사 공금으로 지출 하는 것을 볼 때 비리의 온상에 더 이상 있기 힘들더군요. 그때에 친하게 의지하던 대리님이 그만 두신다고 하셔서 저 혼자 회사에 있기 싫어 저도 대책 없이 그만 두었지요


회사 초년병이었던 그 시절에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온갖 잔행이 두고 보기에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내가 회사를 떠나자"

그 후 한 달 후에 사표를 내었지요. 만 2년 동안 다닌 회사였지만 정은 없더군요.

또다시 백수의 생활

좀 더 공부를 해서 기사 자격증은 딸까해서 학원을 다녔답니다.

3개월가량 학원을 다니고 기사 자격증 1차 시험이 있어서 시험을 보는데 전 역시 이 길도 아니가보더군요

군인이 전쟁터에 총을 안 가져가듯이 저도 계산기를 가져가야하는데 챙겨오지를 못했더군요.

빌려보려고 해도 빌릴 곳이 없어서 시험을 쳤는데. 당연히 낙방했답니다.

그 후 더 이상 공부할 여력이 안 되더군요

집안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서 쓰는 형편이었는데.

경제력도 안 되고 해서 진로를 바꾸었답니다.

 

나의 전성시대는 이제부터지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갔기로 했지요 그때 나이가 27살 이었답니다.

남들은 시집갈 나이라고는 하지만 전 결혼에는 별 로 관심이 없던 차에 나 자신만의 직업을 갔기 위해 교육 쪽으로 알아보았답니다.

화학과를 나온 탓에 바로 취직이 되더군요.

세 번째로 들어간 곳이 아이들 집에 가서 한 시간씩 그룹으로 과학 실험 도구와 재료를 가지고  실험하고 관찰 하면서 나중에는 보고서를 쓰는 것을 가르치는 직업이었답니다.

한마디로 과학교사지요

직접 아이들과 실험하면서 체험하는 거라 아이들도 흥미 있게 수업을 받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능동적인 수업이라 저도 재미가 있었고 아이들도 1시간이 모 자르 다며 더 실험하지고 보챌 정도로 재미있어 하더군요.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의 친분도 두터워지고 아이엄마들과도 끈끈한 정을 쌓을 정도로 친숙해지더군요.

한해 두해 갈수록 전 노아후가 생기고 해서 매년 방학 때마다 회사에서 전국적으로 과학실험을 해서 보고서를 제출하는 대회가 있답니다.

실험주제도 정해야하고 보고서도 작성해서 연구하는 것이라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2년의 경력을 믿고 한번 도전을 해보기로 했지요

아이들마다 각각 하는 실험이라 가리키는 모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어서 3명만 엄선해서 각각 실험 주제와 연구 과정을 정하고 실험 과정을 사진 찍고 하면서 근 한 달을 실험했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그룹은 25그룹정도 이었고 이중에 3그룹 중에 혼자 하는 아이만 과학 탐구를 하고 그 외 그룹은 종전 되로 진도를 나갔지요.

3명을 과학실험을 각각 진행하다보니 시간은 없고 저녁 10시까지 아이와 함께 연구하고 실험 보고서를 쓰고 정말 힘들더군요.

방학이 끝나고 해서  3명의 아이들 보고서를 본사에 제출 했지요

전국적으로 하는 대회라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답니다.

제 경험도 쌓고 아이들마다 성취감과 직접 자신이 연구 실험 했다는 것에 만족감을 가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했으니까요

두 달 정도 지나서 사장님이 저를 부르더군요.

이번 과학 실험 대회에서 금상 2명에 동상 1명이 당선 되었다고 하더군요. 3명 모두 당선이 되어서 전 잘못 들은 지 알았답니다.

최우수상은 한명만 주고 금상은 3명 정도 주는 건데 그중에 금상을 2명이나 당선된 것이지요.

우리 지사이레 처음으로 금상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2명이나 당선이 된 것이라더군요

저도 기뻤지만 우리 사장님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시상식도 있어서 아이들 3명과 아이들 가족분 들과 우리 사장님해서 20명은 간 것 같더군요

시상식은  에버랜드 에서 시상식을 해서 식도 참가하고 가족들과 같이 놀라고 표도 공짜로 본사에서 주더군요.

너무 좋아서 시상식에 참가하고 상장과 부상을 받고나서 대회 관계자분이 그러시더군요.

조금만 더 자세히 했다면 금상 중에 한명 작품이 최우수상 감이었다고 ~

그 소리를 듣고 보니 좀 아쉬웠지만 처음 참가한 대해에서 제 실력도 발휘 할 수 있었고

이 직업이 제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았답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 낳기 직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금은 아이를 양육 중이지만 좀 더 후에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답니다.

만 5년간의 아이들과 과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공부보다는 노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나도 모르는 실험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공부하는 자세로 배우고 가르치고 수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지금도 복귀 할 날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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