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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부 14막 : 순간의 평화 #01 & #02)

J.B.G |2005.02.24 00:51
조회 106 |추천 0

 

#01

 

제국력 1334년 천하가 3국으로 재편되고, 잠시 동안의 평화가 지속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휴전은 더 큰 전쟁을 위한 준비에 불과한 것이었다.

 

철기주는 황도에서 조금 떨어진 한 마을에서 농사를 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무연이 동행하고 있었다. 철기주도 이제는 더 이상 무연을 막을 수 없어 마음을 열지 않을 뿐 그녀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었다.

 

모를 심고 있던 한 노인이 철기주에게 물었다.

 

“자네는 농사일에 아주 익숙한 듯 하이”

“소시 적에 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 헌데 같이 온 처자는 농사일이 서툰데다 피부가 곱고 비단옷을 입었으니 틀림없이 귀한 집 여식인 듯 한데, 사연이 뭐요? 평민이 귀족의 여식과 함께라니…”

“네… 그게…”

“혹시, 정분이 나 도주라도 한 게요?”

“네?”

 

노인의 농에 그만 옆에서 이를 듣던 무연이 더욱 놀랐다.

 

“놀라는 것을 보니 사실인가 보구먼”

 

그러자 다른 농부들이 모두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고, 철기주도 이에 호응에 웃어 주었다.덕분에 무연 만이 얼굴이 붉게 홍조가 되고 말았다.

 

“재상의 여식께서는 전시가 아닌데도 대장군의 호위를 하는 것입니까?”

 

어디선가 들려온 미란의 이 목소리에 호탕하게 웃던 백성들이 모두 적막이 흐르듯 조용해 졌다.

 

“이런, 저희가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장군님!”

 

백성들이 농사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엎드려 예를 표하자 철기주는 그만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무연도 침묵했다.

 

“오늘은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소인들이야 말로 영광입니다. 이렇게 대장군님을 뵈었으니…”

“그럼… 저는 물러갑니다.”

 

철기주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피했고, 무연도 철기주를 따랐다.

 

용의 황도 진양.

세 사람은 말을 타고 진양의 동문에 들어섰다. 철기주와 미란이 나란히 앞서 가고 무연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직도 제가 화가 났어요?”

“…”

“사형”

“무슨 일이냐?”

“꼭 일이 있을 때만 사형을 찾아야 하나요?”

 

미란의 이 물음에 철기주는 그만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꼭 그런 뜻은 아니다만…”

“진흙을 뭍치고, 벌레에 피를 빨리며 하는 농사일이 재미있나요?”

“왜 그런 것을 묻지?”

“전장에서 단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아까는 제가 놀랄 정도로 호탕하게 웃고 있어서요.”

“태양에 피부를 그을리고 진흙을 무치며 허리가 저려올 정도로 일을 해야만 대지가 소산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수확의 이치를 물은 것이 아니에요. 나는 지금 왜 즐거운가를 묻고 있어요.”

“일 자체보다는 백성들과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전 잘 모르겠어요. 그들은 농민이에요. 사형과는 신분이 너무 달라요.”

“신분이라… 그것이 서로 마주보며 웃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난 본시 천민 출신이라 그런가 보구나.”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 알면서 왜 그래요?”

 

미란의 부정에 철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 사실 사형이 천민 출신이라는 거… 믿지 않아요.”

“어째서?”

“누가 사형을 천민의 씨라고 믿겠어요. 천민 출신이 천하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틀림없이… 사형의 조상은 라 제국 시절의 제후였을 거예요.”

“제후라…”

“…”

“난 그런 신분이 싫어”

“왜죠?”

“미란, 넌 사람의 목숨에 경중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이죠. 황제와 농민의 목숨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어요.”

“…”

“사형은 동의하지 않는가 보군요?”

“너는 어찌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간단한 논리로, 지금 황제가 없다면 이 나라는 큰 혼란과 정쟁에 빠질 거예요. 하지만, 농민 하나가 죽었다고 이 나라가 어찌 되지는 않아요.”

“많이 들어본 논리구나…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위치가 그를 그리 만든 것일 뿐… 그 목숨의 가치의 경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황제가 죽으면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듯… 한 농부가 죽어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는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거야 말로 많이 들어본 궤변이군요.”

“그리 생각하느냐?”

“네…”

“미란 아!”

“사형! 나는 지금 사형과 이런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요.”

“…”

“나도 지금은 전쟁과 정치를 떠나 쉬고 있으니… 오늘은 내게 시간을 내어줘요.”

“시간?”

“네. 낚시를 갈까 하는데…”

“폐하도 같이 가는 것이냐?”

“아뇨. 나와 둘이서 가요. 폐하는 국사에 바쁘시니…”

“…그렇게 하자.”

“그럼, 저녁에 저희 집으로 와 줘요. 그리고 수행하는 수하는 필요 없어요.”

“…알았다.”

 

미란의 이 요구는 무연을 배제해 달라는 요구였고, 철기주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미란은 먼저 말을 몰고 돌아갔다. 그리고 뒤에서 따르던 무연이 조용히 철기주를 따랐다.

 

“연 장군!”

“네”

“이제 곧 나도 집에 도달할 것이니 장군도 그만 집에 돌아가시죠.”

“…”

“…”

“저…”

“할 말이 있나요?”

“그 낚시에 저도 참석하면 안 될까요?”

“난 이미 혼자 가겠다고 했소. 그래도 동행하고 싶다면 미란 사제에게 물어야 할 것 같군요. 사매가 날 초대한 것이니…”

“알겠습니다. 소장은 이만 물러갑니다.”

 

연은 쓸쓸히 멀어져 간다.

 

 

 

#02

 

목진의 황도 선루에서 얼마 멀지 않은 논에서 역시 적령이 농사를 거들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논에서 모를 심으면서 논두렁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꾸지람 하는 부모와 그래도 혼이 나고 돌아서면 금방 잊고 또 연신 말썽 피우기에 정신이 팔린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깊은 회상에 잠기고 있었다.

 

“비야…”

 

그녀가 그렇게 과거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그녀를 회상에서 끌어냈다

 

“저… 부인”

“네?”

“저기… 손님이…”

 

그녀를 무위와 군사 위창소가 찾아왔고, 어느새 모두 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적령은 금새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저는 이만 실례를 해야겠습니다. 그럼…”

“살펴가십쇼. 장군님.”

 

말을 타고 선루로 가면서 굳은 얼굴의 적령에게 군사 위창소가 물었다.

 

“장군께서는 항상 저를 놀라게 하는 군요.”

“뭐가 놀랍다는 거죠?”

“장군의 과거를 알 수는 없으나 학식으로 보아 분명히 제후가문의 자재이고, 또 전장의 귀신이 틀림 없을 텐데… 아이들을 보고 웃으며, 또 농사라니…”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만…”

“논일에 대해서는 남편한테 들었어요. 직접 배운 건 밭일 뿐이지만…”

 

남편에게 배웠다는 말에 위창소가 다시 물었다.

 

“부군께서는…”

“출신은 천민이었어요.”

“…”

“그리고 제국이 붕괴되면서 평민으로 신분이 승격되었다더군요.”

“네…”

“이상한가요?”

“네?”

“군사의 예상대로라면 제후가문의 딸이… 산속에 은둔하여 살면서 천민이었던 평민과 혼인한 것이…”

“이상하다기 보다는 드문 일이라…”

“군사께서는 신분계급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죠?”

“…”

 

위창소가 아무 말이 없자 적령이 되물었다.

 

“제 친구인 초류향의 기녀를 만나 보셨겠죠?”

“네”

“그 아이가 기녀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 까요?”

“…”

“그 아이의 총명함은 두분 다 이미 경험하셨을 터… 그러나 그 아이는 평생 그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펴 보지도 못한 채 지는 것이죠.”

“장군께서는 신분제도를 부정하는 것입니까?”

“제가 먼저 한 질문인 것 같은데요.”

“타국은 몰라도 우리 목진에서는 신분의 상승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쉽지는 않죠. 이 사회에는 편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신분상승의 기회가 균등한 것 또한 아니죠.

“균등한 기회라면…”

“대부분의 평민은 교육의 기회가 없습니다.”

“…”

“군사의 뜻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제상을 비롯한 문무의 제후들은 겉으로는 황제의 정책에 따라 신분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하지만, 실상은 그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시죠? 황제는 제후국 중에 유일하게 천민이라는 계급을 타파했습니다. 노비를 근본적으로 없앤 것이죠.”

“하지만, 노비나 천민이라는 말만 사라졌을 뿐 그들은 엄연히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노비가 아니면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그들의 형편이 그대로 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토지를 장악하고 있는 제후들이 그 출신성분에 따라 분배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 말에 계속 황제를 변하던 위창소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장군은 모든 면에서 정말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실은 폐하께서도 그 문제로 고심이 크십니다. 혹 장군에게 묘안이 있습니까?”

“태어나서부터 익혀온 편견을 어찌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음 세대에나 기대해 볼 밖에…”

“…”

 

위창소의 기대와 달리 적령은 더 이상 지혜를 빌려주지 않았다. 사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갑자기 적령은 자신이 복수자가 아닌 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적령은 더 이상 이런 논쟁 자체가 짜증이 났다.

 

“헌데 어쩐 일로 절 찾은 거죠?”

“무위장군을 우연히 만나 동행한 것 뿐입니다. 장군을 찾은 것은 제가 아니라 무위장군입니다. 그럼 전 이만…”

 

그렇게 위창소가 멀어졌지만, 여전히 무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쩐 일이죠?”

“실은 장군과 낚시나 할까 해서 찾은 것입니다.”

“…”

“장군?”

“그리하죠. 제가 저녁에 찾아 뵈겠습니다.”

“기다리죠.”

“그럼…”

 

적령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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