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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교육과 과외 교육에서 교육자의 차이

김수재 |2005.02.25 14:34
조회 337 |추천 0

정규 교육과 과외 교육에서 교육자의 차이

학교 선생과 학원 강사 사이에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은 학원 강사는 얼마나 예상 문제를 잘 찍어내서 아이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가와 얼마나 토플이나 토익 점수를 잘 올릴 수 있도록 가르치는가로 평가를 받고, 학생들이 생각할 때 자신이 이 선생님을 통해서 시험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하면 서로 등록해서 강사의 수입이 늘어난다. 학원 강사들끼리는 경쟁을 해야만 한다. 즉 내가 다른 사람과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학교는 열심히 하든 그렇지 않든 월급이 똑같기에 정말 사명감이 있는 선생님들을 빼고는 생존경쟁 차원에서 교육을 하기 보다는 무사안일적인 경우가 있다. 학교 선생이 학원 강사와 다를 수 있는 하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과 제자는 구별되는데 학생이란 그것이 주입식 교육이든 아니든 배우는 것이지만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 즉 지식이나 출제 예상 문제 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도리 등을 배우는 것이 제자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담임 교사들도 자기 반이 다른 반에 비해서 성적이 떨어지면 교장이나 교감으로부터 또는 동료교사들 보기에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져 어떻게 해서든 성적을 올리려고만 하고 있다. 물론 요즘에는 수행평가라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어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실내장식을 바꾸면 뭐하겠는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는데.. 수행평가는 기존의 평가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도입하였다. 그러나 일제 시대 주입식 교육만 받아 오신 선생님들께 창의적인 사고나 깊이 있는 사고력이 있는 학생을 평가하도록 하는 것은 교사들의 재교육인 연수라는 과정과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무조건 교사들이 난 할 수 없으니까 거부한다고 해서 수행 평가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될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0교시라는 것이 있었다. 원래 수업은 1교시에 시작하는데 그 전에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충이 있었고 말만 자율학습인 타율학습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인 고3때는 정말 새벽부터 자정이 가까워 올 때까지 대학이라는 지점에 골인하기 위해서 앞으로만 달리도록 강요되었다. 그 때 보충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주로 '선생님 수업 하지 말아요! 놀아요!‘라고 했었다.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선생님도 단 몇 만원 더 받는 것 때문에 수업을 하셨어야 했던 거 같다. 아마 선생님도 그깟 몇 만원 안 받고 집에서 편히 쉬고 싶지 않으셨을까 한다. 교사는 강사와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학교 선생님들은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에서 차라리 학원 강사에게 배우라고 자신의 위치를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발전하는 영어 교육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나름대로 제시한 것이 학력을 평가하려 했던 학력평가에서 학습을 얼마나 수행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다. 즉 학교고사 세대에서 수능 세대로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그리고 교육과정도 7차로 바뀌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서울 공대에 입학한 수능 세대 학생들이 공대 교수들이 진행하는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수학 실력이 부족해서 몇 몇 학생들은 학교에서 떠나야 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 조카가 배우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있는 수학 내용과 초등학교 6학년에 나오는 수학 교과서를 보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배운 내용이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이 배우고 내가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우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중학교 내용은 고등학교 때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을 배우나 생각했었나. 그렇다면 수능 세대 학생들이 나처럼 학력고사 세대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고교 교육이 정상화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난 그저 학교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웃에 살고 있는 고2학생과 얘기를 나누면서 요즘에는 고입시험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순간 왜 없앴을까? 혹시 그것 때문에 수능 성적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공대 학생들이 공대에서 요구하는 수학을 잘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미국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인 SSAT가 있고 영국에는 GCSE라는 시험이 있다. 이 모두 고등학교 입학 전에 보는 시험이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선진국으로부터 학문도 수입하고 정신도 수입하는데 왜 이 고등학교 입시는 사라진 것일까? 아마도 내가 외국에 있을 때 생긴 일인가 보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떠올랐다. 학교교육의 정상화! 학교교육의 정상화란 무엇인가? 입시위주의 교육을 지양하는 것? 그렇다 우리의 교육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지향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없애는 것이 과연 한국의 병폐인 입시 위주의 교육을 없앨 수 있을까?

발전하기 위한 교육 1

입시 위주라는 것은 대학이 학생을 선별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별할 때 어떠한 기준으로 뽑는가가 우리나라 사교육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고 왜 그러한 기준을 세울게 되었을까? 일단 대학의 존재 이유를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대학은 학문 중심과 연국 중심으로 가야 하는가?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이나 능력을 교육하는 곳이어야 하는가? 우리나라 대학은 크게 명문대와 비명문대로 구분해서 보았을 때 명문 대학은 학문 중심으로 비명문대는 실용중심 교육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에는 명문 사립대의 경우에는 연구 중심이되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에 중심을 두는 것 같고 성인들을 위한 대학이나 일반 대학들은 연구도 하면서 실용성도 추구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하는 서울대가 세계 100개 대학에 들지 못한다는 것과 김일성 대학이 100개 대학에 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생각을 해 보아야만 했다. 내가 미국에 가기 전 서울대가 세계 100개 대학에 들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러니까 유학을 가야해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미국에서 장애인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봉사 활동을 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추상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큰 나라라는 생각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4시간이 걸리는 한국과 동부에서 서부까지 차로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것을 보았을 때 이렇게 미국과 우리나라가 차이가 나는데 100개 대학에 들지 못할 수도 있지. 예를 들어 100명의 한 명꼴로 교통사고 장애인이 발생하는 나라와 1000명의 한 명꼴로 교통사고 장애인이 발생하는 나라 중 어느 나라에 장애인이 많겠는가? 당연히 확률적으로 100명의 한 명꼴로 나오는 나라이다.

발전하기 위한 교육 2


그렇다면 미국의 대학은 몇백년의 역사가 있고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에는 성균관 대학처럼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대학을 제외하고는 100년 이하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내가 10살인 아이와 20살인 아이에게 누가 밥을 더 많이 먹었냐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잘 산다고 하는 남한이 가난하다는 북한의 김일성 대학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미국의 명문 사립대의 입학전형과 우리나라 명문대의 입학 전형 기준은 약간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똑똑한 사람이 이 사회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위 말하는 지도력이다. 지도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의미한다. 즉 미래 지향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보아야 한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보고 장래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명문 사립대에서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여러 가지를 보지만 학교 재학 시 과외활동(여기서 말하는 과외는 물론 우리가 말하는 과외가 아니다) 즉 어떠한 봉사 활동을 했고 어떤 동아리에서 활동했는지, 명문 사립대에 오려는 동기는 무엇인지, 대학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앞으로 계획은 어떤지를 묻는다. 또한 추천서를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명문대도 미 모양을 약간 본뜨려고 한다. 즉 자원봉사 활동도 보고, 과외 활동도 보고, 지원 동기도 보고, 추천서도 본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보는가이다. 미국인이 생각할 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아는 것만 많은 사람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봉사 활동을 통해서 다른 이를 고려하는 것을 배우고, 과외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소질을 키우고, 지원 동기를 보면서 목적의식을 평가하고, 교사의 추천서를 통해서 학생을 좀 더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명문대에서는 학교장의 추천을 요구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일까 학교장일까? 그렇다면 학생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 사람은 교사일까 학교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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