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범인의 게임에서 살아나온 여자는 말한다. 그에게 감사한다고. 범인 덕분에 그녀는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팔뚝이 새파래질 정도로 꽃아넣었던 마약도끊게 되었다. 그녀는 교화됬다 유일하게. 그녀는 그저 범인이 시키는 대로 다른 사람의 배를 산채로 갈라 자신을 살렸을 뿐이다.
Saw
평소와 다름없이 숨쉬고 옷을 입고 컴퓨터를 켜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동안에도 문득 힘겨움을 느낀다. 껌처럼 붙어있는 세상에 대한 저주스런 윽박지름과 한탄들. 작은 괴로움에도 견디지 못하고 타인과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향해 손가락질 한다. 이게 아니더라도 그저 인정할 뿐이다. 그냥 사는거지 뭐. 내가 발악한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게 있겠어. 어차피 인생은 팔자야. 아니꼽고 치사하지만 그냥 져 주는 거라고. 젠장, 젠장할.
행복은 다른 대상과의 비교를 통해 얻어진다고 했던가. 내가 그래도 좀 낫지.. 부끄럽지만 필자도 종종 이런 방식으로 극약처방을 하곤 한다. 팔다리 멀쩡한게 어디야. 사지 제대로 붙어있는게 어디냔 말이야. 어렸을 적부터 크고 작은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던 적이 몇번 있었기에 제대로 숨쉴 수 있음이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잘 잊지 않는다. 신체가 평범하지 못할 때 그 당연함에서 벗어나게 됬을 때 느끼는처참함은 그러지 않을 때 느끼는 괴로움과는 차원이 틀리니까.
범인은 심판하지 않는다. 심판받도록 조종할 뿐이다. 마치 '세븐'의 연쇄살인마 처럼 그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하나둘씩 스스로를 죽이게끔 한다. 현재의 삶에 감사하지 못하고 죄를 범하는 이들에게 신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의 흔한 심리. 더러워진 세상을 신을 대신해 정화시키려는 사도라도 된 것처럼 느낀 것인지.
희생자들은 다들 범인의 게임 안에서 살아남으려다가 패스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불을지르고 난도질을 한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것은 범인의 목소리뿐이다. 범인이라 여겼던 이는 범인이 아니고 가장 멀다고 느껴졌던 대상은 범인으로 돌변, 영화의 마지막까지 전율케 한다.
큐브(Cube)와 익스페리먼트(Experiment), 그리고 세븐(Seven)을 섞어 놓은 듯한 구성, 스피디한 비쥬얼 변화와 음울한 사운드가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다. 어두운 붉은색과 푸른색의 배치도 빠지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추리게임. 과거는 연결되어 있고 현재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지하감옥 일뿐이다. 더럽고 침침한.
문제는 범인이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침착한 심장과 곧은 결단력을 지닌 주인공들도 결국 놀이개 였을 뿐이었다. 그들은 끝내 놀아나고 피를 부르고 자멸한다.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살아남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생지옥. 범인은 범인이 아니었고 피해자들은 모두 범인이 아닌 서로의 손에 쥐어 죽어나간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범인은 그저 게임의 위너(winner)가 아닌 개최자로 멍석을 깔아주고 관망했을 뿐이다. 결과는 모두 그 안에서 저질러졌을 뿐. 악의 토대를 마련해줬을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라나 서로의 목을 조르도록 움직였기에. 공포와 두려움이 시간을 덧입어 주인공들의 혈관에 또아리를 틀고 서서히 잠식해가며 조종해나간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어둠은 점점 팽창해가고 끝내 범인이 의도했던 자해와 살인으로 벗어나려 하지만 다시 갇혔을 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악은 순환되고 공포는 끝나지 않는다. 어두움은 다시 모든 것을 뒤덮는다.
감독은 범인의 입을 빌어 전하고 있다. 자신이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행복에 겨워 죄를 저지르는 영혼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범인은 아직 죽지 않았고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