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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부 18막 : 미란(美爛) #01 & #02)

J.B.G |2005.03.14 00:07
조회 135 |추천 0

 

#01

 

용의 황도 미란의 집.

미란은 자신의 저택에서 홀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흐느껴 울고 있었다.

 

‘젠장… 왜 눈물이 나지…’

 

그녀는 계속 혼자 술을 따라 마시고 있다.

 

‘빌어먹을 계집. 감히 나를 협박하다니… 젠장!’

 

그녀는 술주정이라도 하는 듯 혼자서 무엇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적령… 아니… 운향… 그것도 아닌가? 묘령… 그리고, 초란… 무연… 너까지…”

 

그녀는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계속 쉴새 없이 독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어째서 이 계집들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야…? 어째서…”

 

그녀는 이미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계속 자신을 괴롭히기라도 하려는 듯이 들이키고 있었다.

 

“사형…”

 

미란은 갑자기 통곡하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통곡한 뒤 그녀는 술이 다 떨어진 것을 알고 시종을 불렀다. 그리고 시종이 곧 그녀의 명대로 술을 들고 그녀의 처소에 들어서려 할 때 그 곳에 철기주가 나타났다.

 

“이리 주게.”

“…장군님?”

“어서!”

“…네.”

 

철기주는 시종에게 술을 받아 들고 미란의 처소에 들었다. 그러나 미란은 눈이 흐려지고 취해서 철기주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미란…’

 

철기주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미란의 잔에 술을 따랐다.

 

“뭐야? 감히 시종 주제에 나와 대작하자는 것이냐?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뭐…?”

 

미란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눈을 계속 깜빡이면서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자신과 마주앉은 사람이 시종이 아니라 철기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 형?”

“…”

 

철기주를 알아본 미란은 크게 동요하는 듯 했지만, 굳이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난 누구라고…”

 

미란은 들고 있던 술을 마시고 빈 잔을 철기주에게 주었다.

 

“이 사매의 술 한잔 받아요.”

 

철기주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술을 받았다. 그리고 미란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그러자 미란이 안주를 들어 철기주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이 행동에 철기주는 잠시 주춤했지만, 애써 어색해 하지 않았다.

 

“어때요. 나도 괜찮은 여자죠?”

“…”

“왜 말이 없어요. 사형…”

“취했구나.”

“…”

 

철기주의 이 말에 미란은 순간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취했어. 취했다고! 나쁜 자식…”

“…”

 

그녀의 이 욕설과 함께 곧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철기주는 계속 미란의 소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목진을 복속할 계책을 들어보러 왔다.”

“…”

“…”

“…그래… 결국 그런 것이군. 나 같은 것은 그런데 밖에 쓸모가 없으니까…”

“…”

 

또 다시 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탁자 하나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 보였다.

 

“차라리… 차라리… 범부였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미란…”

“미란이라 부르지 말아!”

“…”

 

그녀는 또 다시 눈물을 보였다.

 

‘바보같이… 이게 뭐야? 투정이라도 부리자는 거야? 정말…’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냥 사매라 불러요. 아니면 군사라 부르던지…”

“…”

“미워요. 정말… 사형이…”

 

미란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일인자가 되고 싶었어요. …영웅이 되고 싶었어요. 제국을… 통일하고 싶었어요. 그 길만을 위해 때로는 이를 악물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지금까지 왔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오직, 통일 대업을 위해서… 그런데, 이제 와서 자꾸 그 목표가 희미해져 가요… 자꾸만…”

“…”

“자꾸 내 마음속에서 그러한 것들이 무의미해져 가요. 이제 어쩌면 좋아요…”

 

철기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란을 안아 주었다.

 

“사형…”

 

미란은 그의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흑! 흑! 흑!”

“…”

 

철기주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자신은 미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매 일 뿐이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지라도… 여자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02

 

다음날.

어전에서는 황제 적룡과 문, 무 대신이 모두 집회를 하고 있었다. 이 전략회의에서 제상 무린이 말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 제국의 통일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태는 우리 용국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대면한 그 어떤 국가보다도 가장 강력한 적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간에 목진의 군사와 장군 적령이 반목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으나, 지난번 적령이 대담한 황제시해를 시도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다시금 군부에 복귀되었다 합니다.”

“허나, 그가 그런 무모한 사건을 벌여 공을 얻어 복귀한 것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가 호전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쩌면 더 벌여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번 연국의 실수를 거울삼아야 합니다. 군사 위창소와 장군 적령은 서로 반목하여 연을 방심시킨 후에 연국을 침범해 황도를 유린하고 연의 수군을 둘로 갈라놓은 장본인들 입니다.”

“그럼, 제상께서는 이번에도 그 두 사람이 책략을 부린 것이라 보시는 것입니까?”

“확신할 수는 없사오나, 어찌 되었든… 우리 용은 방심을 했고, 그로 인해 또 다시 황도에 적의 칼날을 들여놓았습니다.”

 

이 같은 대신들의 논의를 묵묵히 듣고 있던 미란이 말했다.

 

“장군 적령이 우리 용이 방심한 틈을 이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그것은 그녀의 단독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위창소와 적령의 계책이었다면, 보다 날샌 군사를 소대 단위로 파견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에 전쟁 영웅을 혼자서 사지로 보냈다는 것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군사께서는 이 일로 위창소와 적령이 더 소원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녀가 복귀했다고는 하나, 용을 더욱 방심시켜 큰 것을 취하려 했던 위창소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이번 행동은 뼈를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시킨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허나 황도를 침략해서 우리에게 큰 수치심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목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용의 여러 장수를 시해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장수 중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지금 목진은 수십만의 대군을 쓰러뜨릴 수 있는 계책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우리 용은 다시 긴장했으며, 용의 백성과 군사가 수치심을 가지는 만큼 우리 군사의 사기를 높여준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녀를 왜 다시 군부에 받아들인 것입니까?”

“그건… 적령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만약,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그녀를 이번에도 내친다면, 목진은 백만의 군사를 잃는 것과 같은 해를 입는 것이니까요…”

“군사는 적장 적령을 너무 두려워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적장 적령이…”

“…”

 

그녀의 이 말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러한 태도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문, 무 대신들을 경각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우리가 저들과 같은 계책을 사용할까 합니다.”

“저들과 같은 계책이라니…”

“약점을 드러내서 적을 방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적이 사용한 계책을 그대로 사용하다니… 과연 적중할까요?”

“어찌 되었든 위창소와 적령이 반목하고 있고, 지금 적령이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다면, 분명 알고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어전회의는 길어지고 있었다.

 

미란의 저택.

밤이 깊었는데 미란과 철기주가 함께 담소하고 있었다.

 

“요즘 너무 자주 날 찾는 것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귀찮은 것이냐?”

“순수한 방문이 아니니 반가울 리 없죠?”

“…”

“걱정 말아요. 적장 적령처럼 사지로 뛰어들지는 않으니까.”

 

그녀는 지금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사실 철기주는 내심 두려웠다. 미란이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해 무너져 내리는 것이… 그리고 미란은 그러한 철기주의 근심을 불식시켜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림에 간다고?”

“네.”

“적령장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냐?”

“…”

“그가 초류향에 있다는 정보라도 얻은 것이냐?”

“왜요? 사형이 만나보려고요?”

“…”

“그녀를 만나서 왜 그리 무모한지 사연이 듣고 싶은가요?”

“글세…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철기주는 침묵했고, 미란은 철기주의 예상을 부정했다.

 

“아니에요.”

“뭐가?”

“적장 적령에 대한 정보가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는 지금 목진의 황도에 있다는 정보에요.”

“그래… 그럼, 무슨 일로 가는 것이냐?”

“크게 달음질을 하려면 땅을 잘 다져놓아야 하니까요. 땅이 굳어있지 않으면, 발이 빠져 멀리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중림에 가려는 거예요.”

“…”

 

그들은 너무나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은 미란도 환하게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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