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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러브송 < 37 >

나비 |2005.03.15 03:49
조회 5,748 |추천 0


37


“너도 씻을래?”

“나? 어! 나 씻을래.”


나는 황급히 욕실로 들어섰다. 거울 속 나는 꽤 당황하고 있었다.


‘올 것이 오고 만 것인가?’


잠시 욕조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다.


‘장난이었을 거야. 날 놀리려고. 난 깜박 속은 거라고. 지금쯤 놀란 나를 비웃고 있을 지도 몰라!’


그리곤 몸을 일으켰다. 당황함은 조금 가셨지만 이 낯선 곳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샤워를 할까? 아니야. 그건 무언의 동의로 보일지도 몰라. 그래도 키스는 하게 될지 모르니 양치부터 하자.’


양치질을 마치고 나서 바짝 마른 수건을 입에 가져가면서 난 거울 속의 나를 빤히 응시했다. 대체 네 생각은 뭐니? 지금은 누구보다 나의 마음 속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오늘 관계가 급진전되는 일을 겪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여야 했다. 분위기에 어물쩡 넘어가 치러지는 것은 싫었다. 그와 키스를 나눈 순간부터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나름의 마음의 준비도 끝난 상태였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오늘이어도 좋은가?

좁은 욕실의 크기만큼 내겐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 내 마음을 따르자! 행동이 마음을 따르도록 자연스레 놓아두자고.


마음정리를 끝낸 나는 검은 스타킹을 끌어내리고, 치마를 벗었다. 아직 망설임이 남은 채였다. 그 채로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손을 뒤로해 가슴을 답답하게 죄고 있던 속옷을 풀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내 몸에 걸쳐있던 검은 속옷마저 벗어버리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았다.

쏴아-.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나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평소 몸매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는데 오늘 따라 내 몸매가 형편없이 보였다. 


‘허리가 좀 더 잘록해야 하는 건데. 그동안 운동을 좀 쉬엄쉬엄 했더니 탄력도 없는 것 같아. 가슴은 다른 여자에 비해 크다고도 할 수 없는데.’


나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지만 손에 바디 클린저를 따라 거품을 내는 손길은 어느 때보다 정성스러웠다.


다시 옷을 입고 욕실을 나섰을 때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불을 다 껐잖아. 자는 건가?’


사뿐사뿐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침대로 다가갔다. 그가 잠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꽤 조심스러웠다. 그 때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던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 잤어?”


내가 물었다.


“잘 거야. 문희야, 잘 자.”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


“어, 오빠도.”

“응.”


말과 동시에 그의 팔이 내 목밑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레 팔베게를 하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의 팔이 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해서 내 얼굴은 그의 가슴께 머물게 되었다. 난생 처음 해 본 팔 베게였다. 섹스보다 더 좋은 것이 남자의 팔 베게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였던가? 회사 동료였던가? 아직 섹스는 해 본 적이 나였지만 그 누군가의 말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은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베고 누웠다는 것은 모든 힘을 빼고 기댄다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현재의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걸, 송두리째!


어느새 그의 가슴에 기댄 채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그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닿아 있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건지 아직도 컴컴한 밤이었다.


“으음.”


내가 잠이 깼음을 알리는 작은 소리를 냈음에도 그의 입술은 나의 코로 옮겨왔고, 따뜻한 그의 볼이 나의 볼에 맞닿았다. 폭신한 느낌이었다. 부드러운 쿠션이나 인형에 뺨을 대고 있을 때보다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볼인 걸.”


나의 말에 대꾸 없이 그는 내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시작인가? 나는 그에게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 번 시작이 되면 분명 그에게 닿고 싶은 나의 마음이 폭발해버릴 것 같았기에. 힘을 주고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내 턱을 잡고 지그시 눌렀을 때 어느 새 나의 예민한 혀가 그를 느끼고 있었다.


“나 옷 벗을래.”


그의 말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달라는 뜻 같았다. 그의 가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키스를 하면서 그의 단추를 풀려냈다. 이렇게 가까이 입을 맞추며 가까이 있는데도 좀 더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껴들 수 없을 만큼 가까이. 깜깜한 어둠의 틈도 우리 사이에 껴들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고 싶었다. 그의 상의를 침대 밑으로 던져놓고 남자의 가슴이 그토록 섹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섹스어필 광고를 보면 늘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벌인 짓이 분명했다. 그의 까만 젖꼭지를 보자 나도 모르게 입 안에 넣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손으로 마치 빨려들 것 같은 까만 원을 꼬옥 잡았다. 그가 놀라는 기색이 없자 나는 더욱 대담하게 그것에 입을 맞추었다.


“너도 벗자.”

“으, 으응.”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의견을 존중해주겠다는 것인지 가만히 옷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손은 거칠게 몸을 훑었다. 그의 손안에 내 가슴이 머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스스로 옷을 벗어버리고 싶어졌지만 그처럼 과감히 옷을 벗겨 달라는 말은 할 순 없었다.


“답답해.”


그의 손이 재빠르게 블라우스를 벗겨냈다. 문제는 캐미솔이었다. 머리 위로 캐미솔을 벗을 땐 머리가 다 헝클어졌다. 이건 낭만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캐미솔이 얼굴을 쓸고 지나갈 때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지금의 상황이 계면쩍어지는 것이었다. 옷 벗는 것은 낭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연습과 연습을 거듭한 스트립 걸 뿐일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이런 광경 따위 볼거리 없다고 과감히 삭제를 하거나 아니면 거듭 촬영을 해서 가장 보기 좋은 장면을 골라내는 것만 같다. 브래지어 호크에 머리카락이 걸려 나도 모르게 소리라도 지르게 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다행히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불 켤까? 너무 어두워.”

“아니. 아니.”


아니라고 말했건만 그의 손은 스탠드로 향했다. 그런 그를 말리기 위해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창피하단 말이야.”


불을 켜지 못하게 한 보상을 받으려는 듯 그의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왔다. 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양 무릎을 붙이고 힘을 주었다. 그의 손은 그 무릎 사이로 점점 파고 들어왔지만 나는 절대 힘을 빼지 않았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처음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행위였던 것 같다.


“우리 문희, 긴장 많이 했구나.”

“아니야.”


강하게 도리질을 쳤다.


“너 심하게 떨고 있어.”


그의 손이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간지러운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은 맞닿아 있는 상태였다.


“오빠 이러고 있으니 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진 기분이야.”

“무슨 소리? 네 마음이 어디 있어? 이제 네 마음은 내꺼 잖아.”

“뭐야?”

“문희야! 내 위로 올라올래?”

“위로?”

“네 마음이 내 마음 위로 오게. 이리로 와.”


난 그의 위로 올라 누웠다. 두 손으로는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가까이서 보니 못생겼다.”


아니다. 거짓말이었다. 조명이 없이 실루엣만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지나치게 잘 생겨 보였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절대 질릴 것 같지 않았다.


“넌 화장 지우니 다른 여자 같아.”

“다른 여자라 좋지?”


순간 그의 남자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쟤가 좋다고 하네.”


그의 농담에 얼굴이 화끈거린 것과 그의 몸짓이 빨라진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스커트는 곧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의 바지 역시 차가운 바닥 신세가 되었다.


“아, 아!”

“아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돼?”

“우리 문희 아프구나. 알았어. 가만히 있을게.”


격렬했던 그의 움직임이 점점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못 견디겠는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아주 느리게.

마치 리듬을 타는 행동 같았다. 그 리듬에 맞추어 약한 신음을 뱉고는 나도 서서히 그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 그 규칙적인 움직임은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을,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마저 모두 지워버리는 행위 같았다.

더는 참을 수 없어 그의 어깨를 꽉 쥐었을 때 몸 안으로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였다.


그의 움직임이 멈추자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남자들은 이미 소유한 것에 관심이 없어진다던데 내가 싫어진 건 아닐까? 서서히 주변의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비교적 사물을 인식해 낼 수 있었다.


“오빠, 바닥이 축축해.”


손으로 만져 보니 빨간 혈흔이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는 척 있어야 하나? 아님 욕실로 가야 하는 건가? 좀 더 태연하게 굴기 위해서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같이 씻을까?”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기에 그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넌 먼저 욕실 가있어. 내가 뒤처리 할게.”

“싫어. 내가 할래.”

“괜찮아. 네 몸에서 나온 건데. 이젠 내 꺼기도 해.”


그는 큰 타월로 내 몸을 감싸주었고, 난 종종 걸음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그의 따뜻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


간단히 샤워를 마친 우리는 추위로 인해 서로의 체온이 필요한 사람처럼 꼭 붙어있었다. 특히 오빠가 코를 뺨에 부벼올 때가 제일 좋았다. 행복한 기분이었다. 포만감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이 내 안에 꽉 찬 느낌이었다. 

그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두 눈, 검은 머리카락, 구부러져 있지만 귀여운 새끼손가락, 거만해 보이지만 단정한 콧구멍, 얇지만 부드러운 입술. 그는 남자가 갖춰야할 모든 걸 갖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발가락 하나에도 감사하고 싶은 내 마음은 그는 알까?


“오빠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 뭔지 알아?”

“······?”

“이 눈썹뼈야. 눈썹뼈! 여자는 이런 선이 쉽게 나오지 않는단 말이야. 볼 때마다 그 눈썹뼈가 난 남자다라고 말해주는 거 같아.”

“고마운 눈썹뼈네. 그럼 다른 남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

“응. 오빠만 그렇게 보여.”

“음. 말하는 눈썹뼈를 가진 건 나 하나뿐이라는 거군.”

‘맞아. 내게 남자로 보이는 건 오빠뿐이라고.’


창밖으로 새벽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날밤이 끝났음을 알리는 그 빛에 섭섭한 마음이들었다. 하지만 아쉬움보다 더 큰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남겨져 있었다. 사랑, 신의, 믿음, 친밀감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그 무엇이 마음속에서부터 흐르고 넘쳐 온 몸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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