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악마 (2)
카페문을 밀치며 들어서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각선미를 강조한 타이트한 청바지에 허리가 짧은 연푸른색 자켓을 입고
검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뺀채로 스포츠 모자를 쓰고 있었다.
'토요일인데 비가 오네요. 사장님...'
그리고 보니 밖엔 봄비가 촉촉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안녕~ 혜정이 왔구나...근데 비맞고 왔어?.'
'네. 우산이 없잖아요. 히히...'
저런...난 그녀가 눈부셔 그냥 바보처럼 웃어 주었다.
그녀는 카페 유니폼을 쪽방에서 갈아 입고 나오더니,
'사장님 여기서 주무셨죠? '
그녀가 널부러진 이브자리 하며 너저분한 흔적을 발견했나 보다.
게으른 나는 아침은 커녕 아직 세수도 못했다.
'사장님 댁에 안들어 가셨어요?'
'아줌마 아직 안 나오셨네... 으잉~ 지저분해라..'
그녀는 주방에 들어가더니 신통하게도 달그락 소리를 내며 설겆이를 한다.
간밤에 마신 소주병치우는 소리..
수돗물 소리와 더불어 라면남비, 김치접시 딱는 소리가 난다.
그래..어제 새벽에 소주을 혼자서 마셨지...혼자 먹고 싶었거든
물론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는 아니지.
네가 보면, 어머!! 언니 너무 이쁘네요~할만한 여자들이랑
밤을 새우며 마실 수도 있고, 날 귀찮게하는 오빠들도 있지.
하지만 혼자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
이유는 없어. 그걸 알지 못하니 이유는 없는거지.
넌 아직 어려서 남자가 새벽에 혼자 마시는 술맛을 모를 거야.
쌉싸름한 풀잎같은, 비릿한 바닷내음 처럼 슬픔과 고독에 침잠 되고싶은 감정의 사치를
느끼고 싶을 때가 있는거야.
'저 커피 마셔두 돼요?'
주방 쪽에서 그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서툰 걸음걸이로 트레이를 받혀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검은색 트레이 위에 하얀 커피잔 두개와 또 다른 컵에 날계란 노른자 두알이 마치
쌍동이처럼 빛난다.
'오호~ 내꺼 까지? 날 계란 내가 좋아하는거 어찌알구?'
난 일부러 날 계란을 좋아하는 척 해본다.
'아침 안드셨죠? 히히'
토요일이지만, 손님이 들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다.
더구나 봄비가 추적거린다.
주방 아줌마도 11시는 되어야 나오니, 적어도 이 어린여자와
30분은 느긋하게 차 마실 수 있는거다.
난 카운타겸 오픈 뮤직박스 안쪽에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내 자리에 앉았고
그녀는 커피 한잔 달랑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 한모금을 마신 그녀는 내쪽을 올려다 본다.
나를 보기보다는 내 뒤쪽 진열된 음반들과 뮤직시스템들에 관심이 가나보다.
그녀는 박물관에 온 초등학생처럼 시스템 구석구석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예의 철부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사장님! 음반이 몇장이나 돼요? 어머나! 그렇게 많어요?
음악소리가 너무 좋은데 얼마짜리 시설이예요?
와~ 스포츠카 한대 값이예요? 멋있긴 한데 수염은 왜 길러요?
집에 안들어가셔두 사모님이 뭐라 안하세요?
저만할때에 모 하셨더랬어요? 그때두 디제이 하셨어요?
뭐 이런식에 중구난방 질문의 연속이었다.
난 대충 심드렁하게 성의 없이 대답해 주다가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했다.
그건 '저 만할때 모했더랫어요?' 이 질문 때문이었다.
'성혜경이 너 스무살 맞어? 맞다면...그때 아저씨는 여자만 생각했어...
너만한 여자랑 어떻게 하면 잘수있나 ...그것만 생각했어. 하하하'
난 웃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때 나를 지배한 생각은 내 또래 여자애들이랑 자는 생각 뿐이었다.
'에이 야해라...엉터리...킥킥'
'넌 지금 나이에 무슨 생각하니?'
'전 신델렐라 생각해요. 멋진 스타가 되는 생각을 매일 매일 해요.
인기 가수가 되는 꿈을 꾸죠, 히~ '
하마터면 '나도 너보다 더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꾸었었지...' 라고 말할 뻔 했다.
어린아이에게 그런 말 하면서 맞장구 쳐주면 한없이 물고 늘어진다.
거의 생떼 쓰다시피 매달리면 골치 아프다.
거머리보다 질기도록 끈질기게 공격해오면 정말 대책 안선다.
난 그냥 웃어 주었다. 가수는 아무나 하냐? 이 순진아...
너 보다 어린 시절 나도 한때 가수에 꿈이 있었지. 춥고 배고픈 시절이니,
학원에 갈 수도 없었고, 혼자서 기타를 치며 독학으로 가수에 꿈을 키우다가
난 결심했었지..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된다. 그래 부딪혀 보는거야.
난 엉뚱한 상상을 했었다.
그건 패티김 차에 일부러 받히는 거였다. 그녀는 당시 최고의 가수였다.
그러면 그녀가 날 병문안 한번은 올 것이다. 그때 가수 시켜달라고 말하는 거야.
난 내 친구랑 둘이 그녀의 집 입구 전봇대 뒤에서 쫄쫄 꿂어가며
패티김이 탄 차가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나타나면 우리 들은 차앞으로 달겨드는 거다. 설마 죽기야 할까.
다리는 부러져도 좋으니 기타치는 손만 안 다치면 된다.
그러나 삼일이되어도 패티김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집을 잘못 안거였다.
난 잠시 옛 생각에 잠긴채로 멍청히 그녀의 실루엣을 바라 보았다.
내가 말이없자, 그녀는 무료한지 자기 손톱을 매만지고 있었다.
가름하고 하얀손가락에 분홍 매니큐어가 이쁘다.
난 불현 그녀의 집이 부산인 걸 기억했냈다.
부산에서 가수되려고 서울왔나? 숙소는 어딘가?
난 갑자기 그녀 주변이 궁금했다.
'손이 이쁘구나..근데 집이 부산이라며 서울에 친척이 있니?'
그녀는 잠시 눈을 내리 깔더니.
'친척은 없구요. 잠시 친구 집에서 지내요.'
'그래..그럼 부모님은 친구랑 같이 있는거 알어?'
'네..근데 친구집에서 나오려구 그래요. 싸웟거든요. '
'그럼 어디서 지내려구..'
'...........'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주방아줌마가 카페 문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섰다.
그리곤 뒤이어 두남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혜정이가 빨딱 일어서며 첫 손님을 맞았다.
그들은 들어서며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보냈다.
여기 음악 들으러 오는 단골 매니아들이다.
'너들 어제 밤 샛구나? 흐흐~ 너덜만 재미 보냐?'
'이제 해장하고 옵니다....엉? 새로온 언니네..'
이 넘들이 혜정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형님 재주 좋으십니다. 헤헤'
뒤이어 학생 커플족들이 들어오며 토요일 오후는 흘러갔다.
그래 비오는 토요일 <호세 펠리치아>도 좋겠지...
난 분위기있는 비트가 있는 곡으로 몰아갔다.
수지는 토요일이라서 좀 일직 나왔다.
그녀 둘이 오래 된 자매처럼 곰살궂게 지내는것이 보기 좋다.
7시가 넘었는데도 혜정이는 집에 갈 생각을 안했다.
퇴근하라는 내말에 마자못해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곤 내 옆으로 오더니 머뭇거렸다.
'뭐 할 말 있니?'
'저...당분간 여기서 지내면 안돼요?'
'잘 때 저 방에서 지내면...'
'안돼!!!'
난 잘라 말했다.
그녀는 잠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 저 갈께요. 안녕히 계세요.'
'참 사장님 껌 씹으세요'
그녀는 내손에 껌 하나를 쥐어 주고는 카페문을 향해 걸어간다.
내손에 스친 그녀의 손가락 감각이 간지럽다.
'혜정아~ 우산 가지고 가라.'
그녀 등에 매달린 조그만 룩샥이 앙징스럽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