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있어서의 박근혜] 덕 좀 보다
근혜와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흔히 하는 말로
'덕 좀 보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 그 시절 내가 받았던 것은 그것은 생각했던
막연한 '덕' 과는 다른 어떤 '영향'이었다. 그것은 그로 인한 물리적인
혜택도 혜택이지만, 당시의 서강의 방향성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결과였다.
당시 우리는 뭔가 계속 새로움 속에 있었다. 우리가 제일 직접적인
정서적 변화와 마주치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교내식당에서
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밥을 직접 줄을
서서 배식 받아 먹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남자들은 특히
나이가 드나 어리나 앞에 놓인 밥상을 받아 먹는 것에 익숙했었다.
그런데 밥먹는 곳이 '식당'이 아니라 '카페테리아'라고 되어 있었고,
누구나 밥을 먹으려면 '트레이'라 불리는 군데군데 패인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밥을 받아 먹어야만 했다.
요즘은 셀프서비스도 흔하고 각종 다국적 혹은 독특한 방식의 식문화가
있기 마련이라 그러한 것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듯 하지만, 실은
식습관 하나가 바뀐다는 것은 의식면에서나, 정서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새로운 흐름을 그만큼 일찍 탔다고나 할까.
당시 그러한 새로움에 어색해하고 어리둥절했던 남학생들은 훗날 참
세련돼졌다는 농을 하곤 한다. 빠르게 여러 분야 각 실험실이 생겨나고,
소수정예를 지향했던 우리 과는 여러 건물을 사용하며 다양한 방법의
수업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학교가 달라진 것은 근혜의 덕이라기 보다는 서강의
서양식 교육방법에 기인된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좀 더
활발히 있게 한 촉매제로 근혜가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소회일까?
세월이 흘러 청년시절, 크고 작았던 특별한 영향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득 근혜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싶어진다.
남녀가 다소 유별하였고, 당시의 시대상황도 상황이라 가까이 가기가
쉽지는 않았었는데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을 찾다보니 한 장의 가장행렬
사진이 있다.
어쩌면 한 빛깔로 기억되는 불안하던 시대, 그 가운데도 우리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추억에 잠긴다...
희미해진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 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식인종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인 우리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깃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근혜의 모습은 꽤나 밝은 얼굴이다.
시커멓고 재미없는 남학생들 가운데 어려울 법도 했건만,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투피스 차림에 밝고 똑똑했던 여학생 근혜는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바르고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보기 좋아 보인다.
근혜도 이 사진 속 추억의 한 때를 기억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