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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대 29살 (20편)

운비 |2005.05.28 23:18
조회 897 |추천 0

"그만 웃어. 기분 나빠질러고 그래"

 

날 보자마자 웃기 시작하는 동욱오빠. 사람 앞에 두고 큰 소리로 웃기는.. 사람 민망하게 시리..

 

"미안하다. 그런데 너무 웃긴다. 한복이라니.. 너한테 이런 면이 있었는지 몰랐어. 귀엽다"

"성인 여자한테 귀엽다라는 말은 욕인 것 알지"

"그건 아닌데.. 정말 귀여워. 18살 소녀같다"

 

기분 나쁘지는 않다.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왜  여자들이 예쁘다라는 말에 약한지 알 것 같다. 너 어려보인다. 섹시하다. 이런 거짓말에 속고 싶어하는 여자의 심리를 알 것 같다. 나도 여자니까.

 

"여기가 너희 집이야."

"외할아버지 집이야."

"외할아버지집에 왜 있어. 집에 무슨일 있는거야"

"그건 아니지만... 지금은 나갈 수가 없어"

"그래도 사람 대문앞에 세워두고.. 이상해. 그래도 차 한잔은 주겠지. 그냥 가라고 하지는 않겠지"

 

조금 망설여진다. 외할아버지한테 들키며 큰일인데..

 

"들어와"

 

에라 모르겠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집이네.  그래서인지 그 한복이 너하고 너무 잘 어울린다"

"자꾸 내 한복 갖고 놀릴거야. 나 삐진다"

 

그 때 정말 드라마처럼 너무 타이밍이 딱 맞게 외할아버지께서 나오셨다.

 

"누구냐"

"안녕하세요"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오빠.  그런 오빠를 유심히 살피시는 외할아버지. 중간에 난처해하는 나.

 

"아는 오빠예요"

"모시고 들어오너라"

 

그래 어쩜 잘된 일이지도 몰라. 나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어쩜 그 어린 녀석과의 결혼은 없는 일이 될지도 몰라. 내가 싫다고 하는데.. 가족들도 어쩔 수 없겠지. 잘된거야

그런데 어찌 오빠의 눈치가 보였다. 오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잠시 오빠를 이용해도 오빠에게 화가 되는 일은 아니다. 잠시 그런 의미만 던져주면 되는 것이다.

 

"안들어가도 돼. 이대로 집에 가도 괜찮아"

"아니 나도 외할아버님 뵙고 싶어. 들어가자"

 

가슴 저 밑밖에서 미안한 마음이 양심을 향해 외치고 있다. ' 그만둬 고민희 그건 나쁜 짓이야. 동욱오빠한테도 가족들한테도 그건 나쁜짓이야. 너 하나 때문에 여러사람한테 거짓말하는 것은 안되는 일이야' 아무리 외쳐봐라 내가 그 소리를 듣나. 나 아무 소리도 안 들을거야.

 

"큰절해야해요"

 

어색해하는 오빠의 행동이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악마적 본능이라고 할까?

 

"그래 민희와는 정확히 어떤 사이인가?"

"좋게 보고 있는 동생입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결혼할 생각도 있습니다"

 

잉~~ 이게 아닌데.. 내 꾀에 내가 밟히는 것 아니야. 잔머리 한번 잘 못 굴리다가 그 잔머리에 내가 당하는 것은 아닐까?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는데.. 설마.. 내가 그 희생양.

 

"부모님은 계시는가?"

"외할아버지"

"허허 너는 가만히 있거라. 집안도 중요한법 어른들이 하는 말에 버릇없이 끼여들다니"

"어머니는 몇년전에 돌아가셨고, 지금은 아버지와 살고 있습니다. 제 밑으로 남동생이 있는데 지금은 지방에 있습니다"

"회사 다니고 있나"

"네 A그룹의 기획부에 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군. 그 나이에 능력도 있고.. 민희를 사랑하나"

"오래전에 제가 민희한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듬직하고 믿음직한 도령이군. 다음에 다시 볼 수 있었으며하는데 자네는 어떤가?"

"저도 자주 외할아버님을 뵙고 싶습니다"

 

흡족해 하시는 외할아버지. 오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시는 걸까? 아님 내가 부족한 아이라서 아무 남자한테 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어째든 내 계획대로 되긴 했는데 영~~개운하지 않는 이 기분은 무엇란말이지..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그래서 인생은 며느리도 모른다고 그렇게 외쳐던가.

 

"그럼 민희 데리고 가게"

"다음에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렇게하시게나"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조심해서가게"

 

오빠 덕으로 난 외할아버지 집을 나갈 수 있었다. 어째든 오빠한테 고마웠다.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

"뭘"

"내가 널 그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안 궁금해"

"그냥 외할아버지 앞이라서 그런말 한것 아니야"

"아니야. 외할아버님 앞이라서 그런 말 한것 아니야. 들을 준비는 됐니?"

 

무슨 준비.. 날 정말 사랑한다고 말 할 참인가? 그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듣고 싶은 말인지.. 아닌지..

 

"솔직히 오빠와 이런 대화 어색하고 이상해.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어"

"인생은 아무 예고도 하지 않고 덜컹 일이 닥치고 말아. 사랑도 그래 아무 예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대형사고처럼 크게 다가오지. 넌 그때 22살이었고, 난 25살이였어. 지금 넌 29살이고, 난 32살이야. 둘다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 책임감도 그 만큼 더 많아졌지. 그 책임감만큼 우리가 선택해야할 폭도 좁아지고, 더 신중해지지"

"오빠, 정말 그때부터 날 쭉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예전에 오빠가 사랑했던 여자가 아니라 날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그렇다고하면 믿어줄래. 니가 믿어주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백번 그렇다라고 하는것보다말이야"

 

 

오빠의 말이 맞다. 아무리 오빠가 그때부터 날 사랑하고 있었다고 해도 내가 그 말을 믿지 않으면 그건 또 하나의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래도 쉽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정말 거짓말같다.

 

"지금은 니가 들을 준비가 안 된것 같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고, 다음번에는 우리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자."

"오늘 고마워 오빠"

"내가 오히려 더 고마운데.. 민희의 가족을 만나게 되서 말이야"

"잘 들어가"

"너도..."

"내 차는 어떻게 하지"

"대리운전 불렀어. 곧 도착할거야"

"고마워"

 

섬세한 면도 있다.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완벽한 남자. 오빠는 완벽한 남자일까?  모든 여자들이 오빠같은 남자를 원할 것이다.

능력있고, 외모도 그 정도면 괜찮고, 말도 잘하고, 섬세하고, 배려심도 있고, 매너도 좋고, 집안도 괜찮고, 어느하나 빠지지가 않는다.

그런 남자가 그런 완벽한 남자가 왜 날 좋아할까?  이런 무수리적인 극성이 몸에 아주 붙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난 무수리과지.. 공주마마 과는 아니다.  알 수가 없네.

 

"아줌마"

 

그 녀석이다. 또 무슨 일인가?

 

"어디 갔다 오는길이야. 엄청 전화 많이 했어"

"외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했잖아"

"나와의 약속은.. 잊은거야"

"잊지는 않았지만 굳이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진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그럼 전화라도 주던지.. 한참을 기다려잖아"

"누가 기다리라고 했냐. 괜히 기다리고 그래"

"아줌마 지금 말 안된다는거 알지"

"알아"

"마술에 걸리기라도 했어"

"마술 무슨 마술"

"여자가 한달에 한번 걸리는 마술"

"헉.. 너는 여자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면서.. 나한테는 왜 그러는건데.. 내 마음 좀 읽어보지"

"아줌마 마음은 너무 큰 콘크리트 벽에 갖혀있어서 좀 힘들어. 내가 그 벽에 삽질하고 있잖아"

"삽질해서 좋겠다"

"이 안에 아줌마 있다"

"허허허허.. 웃기냐"

"이동건 같지 않아"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내가 또 밥해줄까?"

 

날 따라오는 이 녀석.. 어떻게 해야하나.. 열심히 열심히 도망은 가고 있는데.. 저 녀석의 걸음이 너무 빠르다. 그래서 언제나 내 옆에 와 있는 이 어린녀석.. 이 녀석 말대로 자주보면 정이 드는 걸까? 이 녀석이 하는 말들 행동, 표정까지 조금씩 조금씩 편해지면서.. 익숙해진다고 해야하나. 그리워진다고 해야하나. 그런 감정들이 그런 감정들이 날 숨쉬지 못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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