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외계인..베이비는 외계인..
화성에서 온 외계인..금성에서 온 외계인..목성에서 온 외계인..천왕성에서 온 외계인.."
십만원짜리 수표 하나를 든채, 베이비가 사라진 편의점 문만 멍하니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 베이비는 외계인이 아닐까..
"에이~ 몰라! 한두번이냐! 계산이나 하자구~!"
잽싸게 계산대로 달려가 메모장을 펴놓고, 계산기를 앞에 타악 놔두었다.
"십만원에서 천오백을 빼면 그러니까 구만 팔천 오백원이고,
여기서 전에 그 과자랑 초콜렛 값이 이천 백원이니까 구만 육천 사백원이 남은 거네.."
정말 그 돈으로 냉정하게 모든 것을 계산했다.
처음 봤던 날, 계산 안하고 튀었던 과자값과 초콜릿 값까지 말이다.
그 뿐이게..
베이비만을 위한 계산 장부까지 만들었다.
워낙이 엉뚱한 놈인지라 거금 십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고 나중에 무슨 말을 내뱉을지 모르기에,
만약을 대비해서 이렇게 증거 자료를 철저히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 베이비 장부를 한쪽에 고이 모셔놓은 뒤, 더러운 편의점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정말 계산만 하는 것 같은 서희 덕에 나는 아침마다 청소하느라 바빴다.
물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소를 다하고 나니, 온 몸에서 힘이 쭈욱 빠졌다.
그제서야 정리 정돈이 되어 깔끔한 편의점 내부를 바라보고 있자니, 뱃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래 알았다구, 이놈아~ 밥 주면 될 거 아니야!"
손바닥으로 내 배를 타악 치자, 찰싹~하며 시원스러운 소리가 났다.
무언가 속이 알차게 찬 듯한 소리 말이다.
이 놈의 뱃살은 왜 이렇게 나를 좋아하는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아~"
컵라면 코너를 쭈욱 훑어보다 오랜만에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 오늘은 이화봉님께서 널 먹어주시겠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짜장 컵라면에 물을 붓어놓고, 계산대로 왔다.
넉넉히 잔돈까지 뜯어놓고 있을 때 짤랑~하는 소리가들렸다.
..손님이다!
"어서 오세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바라봤다.
키가 훌쩍 큰 호리호리한 남자.
그것도 아주 잘생긴 남자..
분위기 있어 보이는 눈매가 너무 매력적인 남자.
......가비였다!
"..어? 가비!"
이건..이건 분명 destiny! 운명이 분명했다!
이런 곳에서까지 보게 되다니!
엄청 놀라고 반가워하는 나와 달리 가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를 한번 힐끔 바라보더니, 무심하게도 지나쳐버리는 것이었다!
한순간 뻘쭘해져버린 나..
"그래, 뭐 한두번이냐~"
가비는 천천히 편의점을 한바퀴 돌고 있었다.
마치 사장님이 매장안을 훑어보는 분위기였다.
그런 가비를 나는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놀이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것도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가비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디어 가비가 계산대로 걸어왔고, 고른 물건을 내려 놓으면서 삼천원을 내밀었다.
새우탕 컵라면과 토마토 쥬스, 그리고 새콤달콤...을 고른 가비.
조용히 거스름돈을 건네주자 미련 없이 산 물건을 들고 내가 짜장면을 놔둔 곳으로 걸어가는 가비.
가비는 컵라면에 물을 붓어 내가 짜장면을 놔둔 자리 바로 옆에 컵라면을 내려놓더니,
멍하니 편의점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가비의 옆에 섰다.
가비의 단아한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 한숨이 나오냐..
절대 흑심을 품은 게 아니었다.
이르다고도 할 수 있는 내 점심이 가비 옆에 있어서 간 것이었다.
컵라면 뚜껑을 완전히 벗기고 짜장 양념이 잘 버무려지도록 비볐다.
"가비 너도 이런데서 컵라면을 먹을 줄은 몰랐다, 진짜.
넌 칼질만 하게 생겼는데..아니, 이슬만 먹을 것 같은데 말야.."
내 말을 들을 리가 없는 가비는 여전히 편의점 밖을 바라보고 있다.
면발을 쪼금 먹어보니, 익었다.
나는 맛있게 짜장면을 후루룩~후루룩 먹다가 가비에게 말을 했다.
"편의점 밖에 무슨 예쁜 여자라도 지나가냐..적어도 너랑 나랑 아는 사이인데..
아니지~ 어떻게 보면 친밀한 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적어도 한번은 날 봐줘야하는 거 아니냐구..
진짜 무심하기도 하지~~
내가 이쁜데는 없지만 그래도 볼 데는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많은 걸 가비 넌 왜 모르니..
면적부터가 내가 다른 여자애들 두배잖아..
참, 나는 왜 그래도 너가 좋게 느껴지는지 몰라.
혹시..큐피드의 화살이라도 나한테 쏜 거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남자보기를 돌같이 하는 천하무적 이화봉이의 마음을 어떻게 빼앗냐구.
너무 튕기지만 말고 한번만 봐주면 덧나나..쳇쳇!!"
괜시리 섭섭한 마음에 혼잣말을 궁시렁궁시렁거리며,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며, 가비의 옆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런데 갑자기 가비가 고개를 돌려 정말 날 바라봤다!
"우우..욱~!!켁켁..~!"
갑작스러운 시선에 놀라 면발이 목에 걸려버린 나.
한참동안 기침을 하다보니 숨막힘이 겨우 가라앉았다.
..아씨~ 쪽팔려!
가비는 웃지도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동요없는 눈동자로..
내 얼굴은 분명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눈물까지 글썽글썽.
흘러내리면 안되는데..
"봐주랄 땐 안 보고 왜 이제 돌아봐서 사람 놀래키냐구.."
목에 걸린 면발 때문에 많은 기침을 해서 지금 내 목소리는 뭐랄까..
쉰 목소리라고 해야할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굉장히 괴물같은 목소리였다.
가비가 이런 괴물 목소리를 못 듣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가비가 계속 멍하니 날 바라본다.
면발 다 익었을 것 같은데..
라면은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내 얼굴만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이래도 좋다! 나는 그렇게 느꼈으니까!
가비의 검은 눈망울에 윤기가 좌르륵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쳐다봐.. 내 얼굴이 그렇게 이뻐?"
장난스레 말도 해봤다.
내 말에 가비의 표정이 좀 묘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가비가 못 듣는다고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릴 했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들을 수 있는데 이런 말 하겠어~!
여전히 가비는 날 뚫어지게 바라봤다.
뜨거운 그 눈빛에 엄청엄청 무안했다.
가비 도대체..도대체 애 저러지~?
가비가 한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뭐하려는 거지?
가비의 손가락이 내 눈언저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뭐..뭐야!!
내 눈언저리를 쓰다듬던 가비가 손을 띄더니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나도 덩달아 가비의 손에 시선이 갔다.
가비의 손가락에 있는 희미한 물기.
..내 눈물이었다.
목에 걸려 기침을 엄청나게 해댔더니 눈물이 핑 돌았었는데..
가비가 고개를 들어 다시 나를 본다.
..머쓱..머쓱..
가비가 나에게 또 손을 뻗친다.
이젠 가비의 손길이 무섭다!
이번엔 가비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내 입가를 어루만지는 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뿌리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도 이상하고~! 미치겠네~!
하지만 내심 마음 한켠에선 그런 가비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소중한 무언가를 어루만지는 듯이 부드러운 손길에 따스한 눈빛까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안절부절 못하며 가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가비의 눈빛은 굉장히 따스했지만, 왠지 모르게 멀게 느껴지는 눈빛이라고 해야할까?
몰랐는데..가비가 희미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니 들릴 리가 없었지만 분명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라는 걸까.
"가비, 너 왜 그래..."
아주 조그맣게..말을 했고, 갑자기 가비의 손길이 멈췄다.
무슨 회상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빛이 달라졌다.
가비는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나에게 한 행동에 대해서 지금 당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가비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가비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가비의 손가락이 까맸다.
짜장면을 먹다 입에 묻혔었나 보다.
그걸 가비는 직접 자신의 손가락으로 닦아주었고..
그런데 내가 닦아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비 스스로 자진해서 그랬으면서 한대 맞은 듯한 저 표정은 뭐냐구~!
옆에 놓여있던 티슈를 뽑아 손가락을 닦더니, 나를 힐끔 한번 바라본 후 편의점에서 도망치듯이 나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나.
..뭐야! 난 아무 짓도 안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