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 안 보이신다는 분들, 전 너무 잘 보이는데 저도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요.... 도구에서
뭐시깽이 고치라고 해서 고치면 대부분 보인다고 하던데... 것두 안되면 저도 몰라용 ! 저 아직
스케너도 쓸 줄 모르는 기계치라고요... 아시는 분이 좀 갈켜 주실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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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는 이스탄불 다음의 첫 행선지 였다. 국민학교 때 하인리히 슐리히만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간 꼭 트로이에 가 보고 싶다고 생각 했었기 땜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무조건 첫 행선지로
잡았었다.
트로이를 가기 위해 챠낙칼레 행 버스를 타고 챠낙칼레에 내리니, 이 챠낙칼레는 에게해변의 항구
도시였다. 부둣가가 마치 강변 공원처럼 꾸며진 챠낙칼레 시내엔 영화 트로이에 썼던 목마가
세워져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영화사에서 트로이를 다 찍고 나서 챠낙칼레 시에 기증했다나…
내가 영화 트로이를 보지 않아서 첨 보는 목마였지만, 생각 했던 것 보다 좀 벌쭘 한 목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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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트로이 입구엔 심지어 모던 하다못해 저런걸 왜 세워 놨을까 싶은 거대한 장난감 목마가
세워져 있다. 진짜 고대에 저런 모던한 목마를 만들었을까??? 무지 의심스럽지만, 아무도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가지고 있던 안내서를 보면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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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트로이는 고대에 아주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는지, 이넘 저넘 다 트로이를 넘보다 보니 트로이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으며 방어하는 과정에서 파괴된 도시를 여러번 재건 한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트로이는 아홉 개 정도의 다른 시대별 도시가 마치 시루떡 얹어 놓듯이 이전 도시 위에 얹혀
건설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전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위에 건설된 유적을 파괴하고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됐었단다.
이러한 발굴 과정에서 내가 위대한 위인이라고 알고 있었던 슐리히만은 유물 발굴이란 미명 하에
실제로는 수 많은 트로이 유적을 파괴한 장본인이며, 뭐, 잘난 고고학자들도 찾지 못한 트로이를
발굴해 낸 점은 높이 사지만, 그는 슬프게도 고고학자이기 이전에 사업가였기에 연구 보단 유물
발굴에 더 열중 했으며 돈 될만한 유물은 깡그리 터키 밖으로 빼 돌리는 등, 터키에서 슐리히만은
그다지 좋은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난 이런 사람을 어릴 적부터 위대한
인물이라고 미화한 위인전을 읽으며 자랐다니... 최소한 위인전 이라면 무조건 미화만 할 것이
아니라 좋던 나쁘던 객관적인 평가는 포함 되야하지 않을까 ? 왕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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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리던 트로이 언덕에 서서 평화로운 트로이 평야를 넘어 에게해를 바라보니
참 인생 무상이 따로 없다. 참... 알수 없는 일이지... 어떻게 다들 차지하고 싶어 안달하던 도시가
어느 순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전설로만 전해져 누구도 그곳을 찾지 못 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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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언덕엔 바람이 무척 거세다. 마치 나같은 이방인을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 거기에 있던
설명에 의하면 그 세찬 바람을 "트로이에 풍요를 가져다 준 바람" 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