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부른다. 고구려의 제 1대왕을 동명성왕으로 부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되었다. 주몽과 동명은 엄연히 다른인물이다.
주몽과 동명의 설화를 비교해 가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북이의 탁리라는 나라에 한 시비가 임신을 하여, 왕이 시비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시비는 왕에게 어떠한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임신이 되었다고 말을 하였다. 시비가 알을 낳았는데, 왕이 이를 버렸으나 소와 말이 지켜주었다. 결국 왕은 알을 시비에게 주었고, 알이 깨어졌는데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동명이라 불렀고, 결국 성인이 돼서 나라를 탈출했으나, 곧 추격병에 쫓기었다. 이때 자라와 거북이가 나타나 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너게 도와주었다. 결국 탈출하여 나라를 세웠고 나라이름을 부여라 하였다.[동명설화]
여기서 알 수 있듯 주몽과 동명의 차이점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1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인 반면, 동명의 아버지는 알 수 없다.
2 주몽의 어머니는 수신의 딸인 반면, 동명의 어머니는 시비이다.
그에 반해 공통점도 있다.
1 주몽과 동명 모두 알에서 태어나 신성성을 확보했다.
2 위험이 있을시 하늘이 도와주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동명은 부여의 시조고, 주몽은 고구려의 시조라는 점이다. 또 주몽설화가 동명설화보다 좀더 셰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분을 높였다는 점에서)
그렇다면 부여시조인 동명과, 고구려시조인 주몽이 언제부터 동일인물로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그것은 후세에 오면서. 서로 비슷한 두개의 설화를 하나로 합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스토리의 설화는 비단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널리 퍼진 공통적인 스토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슷한 류의 스토리를 언제부턴가 하나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때부터 서서히 주몽=동명이라는 관념이 형성된 것이다.
끝으로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몽이라 언급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주몽이 아닌 추모라 불렀다. 당시 문헌상엔 주몽이라는 단어가 없고, 추모라는 단어만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