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 역사’는 해방 후까지 살아 있었다
(1930~46년 일본정부 발행 ‘독도는 한국땅’ 지도 다수)
***저는 소설《대조선인 안용복》의 저자 김래주입니다. 소설 집필차 수집한 자료 중 현대독도사(史)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매우 중요한 사실(일본 지도)이 있어 지난 6월 언론사에 보도문으로 전했으나 지도 사진이 생략된 채 요약 보도되었기에 여기에 원문을 올립니다. 다만 이 란의 이미지등재 갯수가 제한된 관계로 사진자료는 저의 블로그(http://blog.empas.com/laejoo)에 올려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은 8,9월 중에 MBC-TV(부산MBC 제작) 다큐로 방영될 예정입니다.
300년 전 일본에 건너가 ‘독도가 조선땅’임을 국서로 확약받은 안용복의 활약은 한?일 사이에 독도 문제를 문서로 분명히 한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독도사(史)에서 중요하다. 실제로 일본은 안용복에게 국서를 내준 이래 독도 도해(渡海)에 소극적 입장을 취해왔고, 그 영향으로 자국의 지도에도 독도를 조선땅으로 표기해왔다.
일본이 자랑하는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만든 1785년의 ‘삼국접양지도’(독도를 포함해 조선은 황색, 일본은 녹색 표시), 1876년의 ‘태정관(太政官) 결정서’(명치시대 총리부가 남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문서) 등 10여 점이 넘는 지도와 자료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다가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편입 고시(告示)를 기점으로 태도를 바꿨다. 또 현재도 시마네현 고시를 독도영유 주장에 대한 큰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안용복에 의해 국가간 약속으로 기록된 독도 바깥을 경계로 하는 한?일간의 해양국계가 일제시대는 물론 해방 후인 1946년까지도 일본의 정부급 지도에서 통용되고 있었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 드러나 관심을 끈다.
일제시대는 일본이 한국을 자국의 일부로 인식했을 때인 만큼 땅에 관한 한 가장 솔직한 속내를 보였을 시기. 섬의 원래 소속을 밝히는 데 무리가 없었을 때이며, 나아가 1946년은 패전으로 어수선해 그 연장선 위에 있을 시기였다.
그런 까닭에 이번 자료들을 함께 보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시마네현 고시보다 안용복 라인을 우선해 사용
특히 관심을 모으는 건 일제말과 해방 직후 일본정부 부처가 발행한 지도들. 1933년의 일본 해군성이 만든 ‘조선연안수로지’, 1936년 ‘일본육지측량부 발행 지도구역일람도’(※지도 1), 1945년 7월 조선총독부가 판매용으로 만든 ‘해동지도’(김옥성 씨 소장), 1946년 ‘일본내무성 지리조사소 발행 지도일람도’와 동년 제작된 일본지도주식회사의 ‘신분현(新分懸) 지도-시마네편’(※지도 2, 3)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 ‘육지측량부 발행 지도’는 당시 일본에서 육도(陸圖)에 관한 한 가장 높은 정확성과 공신력을 인정받던 참모본부 직속 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것으로,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일제의 점령지역을 원래구역별로 정확히 나누어 표시하였다. 그중 독도(竹島로 표기)는 울릉도와 함께 대한제국의 영토였던 것을 점령한 곳으로 분류했고, 그 바깥을 검은 선으로 구획해 한반도의 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해동지도’는 경상도편에서 울릉도 옆에 그린 작은 섬에 ‘竹’(죽도, 즉 독도를 의미)이라고 써서 울릉도의 부속섬임을 밝히고 있다.
해방 1년 후인 1946년 일본에서 발행된 두 점의 지도 역시 크게 주목된다. 특히 일본 내무성 발행 ‘지도일람도’는 독도박물관에 소장돼 있었음에도 찾는 이가 없어 묻혀 있다시피 하던 것으로(최초 공개), 두 지도 모두 시마네현 고시로 획득했다던 독도를 자국의 지도에서 스스로 제외, 패전과 함께 반환되어야 할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패전 일본, ‘독도, 반환해야 할 섬’ 인식하다 태도바꿨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울릉도 독도박물관의 김하나 학예연구사는 “독도 문제에서 그간 주목되지 못한 부분으로, 이제라도 부각되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독도 연구가 주로 국제법적 관점에서 접근되어 일본의 의도에 말리는 감도 없지 않은데, 이번처럼 역사적 관점에서 독도 문제를 보는 연구가 더 전전돼야 한다”며 공감을 표했다.
이번의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비교적 현대인 일제말기까지도 안용복의 활약으로 정립된 한?일간 해양경계(안용복 라인)가 일본정부 부처에서 상용됐었다는 점이다. 이는 1905년의 시마네현 고시를 무색케 하는 일로, 한국을 자국의 일부로 인식한 특수시점이 일본의 진실을 드러나게 한 시기라 하겠다.
둘째, 그 연장선에서 한국해방 후 일본은 독도를 반환해야 할 섬으로 인식하다가 이후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을 확인케 한다는 점이다. 이는 1946~47년 일본이 연합국을 상대로 독도소유를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2월 27일 보도) 시기와 갈림점에 위치하는 자료다.
셋째는, 일본의 독도영유 음모에서 1946년 이후 역사의 중대성이다. 시마네현 고시 때만이 아니라 해방 직후 일본 내에서 독도와 관련해 무슨 결정이 있었는지 추궁되고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이에 대해 지금의 일본 정부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
(사진자료 협조 : 독도박물관)
***위 사실에 대한 공론화 문제는 언론이 할 일이겠으나 보도문을 접한 어느 기자도 제대로 알아보는 이가 없는 듯했습니다. 독도 얘기에서도 우리나라 언론은 유행(?)이 지나면 무심으로 돌아서더군요. 딱한 일입니다.